노벨상 수상 작가 한강의 아버지이자 본인도 소설가인 한승원씨가 지난 11일 언론 인터뷰에서 “(딸이)‘러시아, 우크라이나,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전쟁이 치열해서 날마다 모든 죽음이 실려 나가는데 무슨 잔치를 하고 기자회견을 할 것이냐’며 기자회견을 안 할 것이라고 했다”고 전했다. 이 전언은 한승원씨의 창작 혹은 과장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나 같았으
노벨상 수상 작가 한강의 아버지이자 본인도 소설가인 한승원씨가 지난 11일 언론 인터뷰에서 “‘러시아, 우크라이나,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전쟁이 치열해서 날마다 모든 죽음이 실려 나가는데 무슨 잔치를 하고 기자회견을 할 것이냐’며 기자회견을 안 할 것이라고 했다”고 전했다. 이 전언은 한승원씨의 창작 혹은 과장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나 같았으면 당장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왜 주책없이 쓸데없는 말씀을 하세요”하고 타박했을 것이다. 그러나 한강씨는 아버지를 이해해야 한다. 자식이 노벨상을 탔는데 냉정할 아버지가 어디 있나. 더구나 과장과 창작은 소설가에게 흉이라고도 할 수 없다. 만약 한강이 실제 그렇게 말했고 그런 차원에서 기자회견을 하지 않는 것이라면 그 범인류애적 감수성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고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겠노라며 범생물학적 감수성을 보였던 그의 대학 선배 윤동주가 생각난다.
아쉽게도 한강의 문학적 성취를 기뻐할 수는 없다. 민망하게도 나는 그의 글을 한 줄도 읽은 적이 없다. 한권이 아니라 한 줄이다. 그것이 무슨 죄는 아니지만, 그리고 지금까지는 아무 부담 없이 살아왔지만 그녀가 노벨상 작가가 된 지금은 ‘문학적 문맹’이라는 비난이 두려워진다. 내 또래 중에서는 서정주나 김수영의 시를 한 줄도 읽지 않고 살아온 사람이 거의 없는데 한강이 그들의 명성을 압도하게 된 지금은 ‘한강도 읽지 않은 상무식꾼’이 될 판이다. 나는 한강의 작품은 읽지 않고 그를 논한 기사만 간혹 읽었다. 기사에 따르면 한강의 글쓰기에서 큰 기둥 중 하나가 ‘광주’와 ‘5·18’이라고 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게 불편할듯하여 그녀의 작품을 읽지 않았다. 그녀는 내 또래 중에서 가장 성공한 작가다. 나는 내 또래가 광주와 5·18을 주로 어떻게 다루는지, 한국 문화 지형에서 그게 상업적으로 성공하려면 어떤 방향성을 취해야 하는지 안다. 그리고 도식화된 그 성공 방정식, 그들이 풀어내는 천편일률 세계관에 신물이 난 지 오래다. 그래서 또래가 만든 5·18 영화를 보지 않는다. 소설도 읽지 않는다. 그들이 펼쳐 보이는 세계에는 참신함, 더 중요하게는 성실함과 진지함이 결여돼 있다. 나이가 들어도 20대에 박제된 듯한 분노가 있을 뿐이다. 그런데 한강은 다를까. 노벨상을 받을 정도면 어쩌면 다를 수도 있겠다는 기대를 하게 된다.
United States Latest News, United States Headlines
Similar News:You can also read news stories similar to this one that we have collected from other news sources.
내년도 의대 신입생은 수업을 들을까 [노원명 에세이]“궁금하단 말예요. (의대 사태가 내년까지 계속 간다고 했을 때) 2025학년도 의대 신입생들이 수업을 들을지, 말지.” 회사 후배가 엘리베이터에서 이런 말을 한다. 설마하니 의대사태가 내년까지 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 전에 어느 쪽으로든 결론이 나지 않으면 정부도, 전공의도 버틸 수 없다. 누가 좀 더 버틸 수 있느냐의 싸움일 뿐이다. 다만 만에 하나
Read more »
남재희 선생에 관한 작은 기억 한 토막[노원명 에세이]“노형, 충청도 사람들이 왜 말이 느린지 아시우? 삼국시대 때 일인데 충청도는 고구려 백제 신라가 번갈아 차지한 땅이었거든. 어제오늘 주인이 다른 거야. 누가 와서 “너 고구려여?” 혹은 “너 신라여?”하고 물으면 답변을 잘해야 해. 까딱하면 죽으니까. 그러니 답변이 한도 없이 늘어지는 거지. 충청도 사람들이 속에 있는 얘기를 안 하는 기원이 그래.” 지난
Read more »
김남주와 노회찬, 그리고 김진숙... 절박할 때 읽는 시시를 읽지 않은 지 오래됐다. 마지막으로 읽은 게 언제인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시의 언어를 나는 도무지 이해하기가 어렵다. 비유와 상징으로 장식된 시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왜 이렇게까지 직관적이지 않은 언어로 무언가를 노래해야 하는지, 머릿속이 온통 주의, 주장과 정치 언어로 가득한 나로서는 도저히 익숙...
Read more »
백악관에서 이 노래를? 중국의 무례와 미국의 무지[길 위에서 읽는 한국전쟁 39] 휴전협상과 고지전
Read more »
계급장 떼고 도피한 지휘관, 국군이 저지른 참담한 패전[길 위에서 읽는 한국전쟁 38] 다시 38선으로
Read more »
“강의실에서 신들린 느낌 받았다”…국문과 2학년 한강을 마주했던 교수의 회고“굿판의 무당 춤과 같은 휘몰이의 내적 연기를 발산하고 있는 모습이 독특하다.” 1992년 11월 23일 연세춘추에 실린 한강의 시 ‘편지’를 심사했던 정현종 시인에게 한강의 글은 ‘무당의 춤사위’와 같았다. 당시 연세문학상 시부문 당선작이었던 한강의 시는 정 시인의 눈에는 ‘열정의 덩어리’이며 ‘풍부한 에너지’였다. 그에게 한강은 능란한 문장력으로 잠재력
Read mor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