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봄을 이렇게 기억하게 하면 안 되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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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까지 오는데 이런 날 집회하는 건 좀 이기적인 것 같아. 그는 차가 막히는 걸 탓하며, 차창 밖 거리의 사람들을 향해 노골적인 힐난을 보냈다. 이태원 참사 특별법 공포를 위한 시위였다. 가슴팍에 저마다 영정사진을 끌어안은 채였다. 액자 위로 흐르는 빗물을 연신 소매로 닦으며 자신이 젖는 걸 아랑곳하지 않는 사람...

2024년 12월 3일 윤석열의 내란 이후 한국 사회는 헌정이 무너져 있습니다. 한국작가회의는 내란 이후 혼란스럽고 경악스러운 역사의 현장에서 경험한 사실들을 낱낱이 기록하고 '광장의 작가들' 연재를 통해 민주 시민들과 공유하고자 합니다.비까지 오는데 이런 날 집회하는 건 좀 이기적인 것 같아. 그는 차가 막히는 걸 탓하며, 차창 밖 거리의 사람들을 향해 노골적인 힐난을 보냈다.

이태원 참사 특별법 공포를 위한 시위였다. 가슴팍에 저마다 영정사진을 끌어안은 채였다. 액자 위로 흐르는 빗물을 연신 소매로 닦으며 자신이 젖는 걸 아랑곳하지 않는 사람들이 가두 행진 중이었다. 꽉 막힌 도로 위에 차들만 속수무책이었다. 멈춰 선 차 앞으로 나이 지긋한 어르신이 지나갔다. 결국 차를 포기하고 걸어가는 건가? 차도를 가로질러 행렬에 다가간 그녀는 자신이 쓰고 있던 우산을 어떤 이의 손에 쥐여 주었다. 한사코 사양했지만 건네는 쪽이 더 완강했다. 비를 맞으며 자신의 차로 돌아가는 길, 그녀는 우리 차 앞을 지나며 고개를 숙였다. 양해를 구하는 몸짓이었다. 그러곤 옆 차선에 비등하게 선 경차 조수석에 서둘러 올라탔다. 그는 불쾌하다는 듯이 말했다. 위험하게 왜 저래? 저런다고 뭐가 달라져. 더는 참을 수 없었다.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렸다.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뒤돌아보지 않았다. 이번만큼은 가만히 있고 싶지 않았다. 나도 그들에게 우산을 건네고 싶었다. 그러니까 우산이라도. 누군가에게 다가가 무턱대고 팔을 잡았다. 이거 쓰세요. 괜찮아요, 어차피 젖었어. 아니요, 액자가 젖잖아요. 고마워요. 그래도 아가씨가 써요, 아가씨는 비 맞지 말아요. 우산을 거절하며 그 사람은 떠났고 나는 거리에 남겨졌다. 우리 아빠 한번 볼래? 물었을 때 그는 다음에, 하고 말했다. 어차피 본 적도 없는데 뭘. 더구나 중환자실 면회 10분밖에 안 되는데, 뭐 하러 나까지.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다음이 있을까? 그 사이 신호가 바뀌었다. 얼른 타라고, 그가 소리쳤다. 뒤에서는 참지 못하고 클랙슨을 눌러댔다. 나는 멈춰 서 있을 뿐 움직이지 않았다. 누구에게나 언제나 다음이 있는 건 아니었다. 조수석 창문으로 황당하다는 표정이 보였다. 사진 속 앳된 여자의 얼굴, 그 사진을 품에 안고 떠나는 이는 어쩌면 아버지였을까. 경적이 심해지고, 더는 버티지 못하고 차는 출발했다. 쓰다 만 소설을 앞에 두고 생각했다. 이 대목은 결말쯤이 되고 그들은 결국 이별할 거라고. 실제로 영정사진을 들고 빗길을 걷는 사람들을 차창 밖으로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 장면을 다시 떠올린 건 얼마 전이었다. 육아 휴직을 마친 친구가 광화문 근처로 출근하며 집회 때문에 너무 불편하다고, 대체 언제 끝나는 거냐는 메시지를 카톡에 올렸다. 그러게 말이야, 지겨워 죽겠어. 몇몇이 동조하며 조심히 다니라고 그 친구를 걱정했다. 차마 보탤 말이 없어 대신 소설을 쓰기 시작했던가. 현실의 내가 그들보다 조금도 나을 리 없겠지만 그럼에도 하고 싶은 말이 있었던 거 같다.송경동 시인은 지난 3월 12일 오전 9시부터 광화문 시민 농성장에서 윤석열 탄핵이 인용될 때까지 무기한 단식에 돌입했다. 한국작가회의의 새로운 사무총장이 된 지 이틀 만이었다. 달리 말하면 신임 사무총장의 첫 업무가 광화문 단식투쟁인 셈이었다. 이게 말이 되는 건가? 나약한 내가 쉽사리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을 때조차 선후배 동료 작가들은 매일 농성장으로 나와 시와 노래가 있는 밤을 만들었다. 전국 272개 예술단체가 '윤석열 퇴진 예술행동'에 동참했다. 우리가 살아가는 토대마저 허물고자 하는 상황에 모두 분노했다. 탄핵을 바라는 간절함에 곧잘 화가 났다. 기다림이 길어졌고, 긴 기다림을 견디기 위해서 광장으로 향했다. 그곳에서도 작가로서 당당하지 못해 작가회의 천막 근처에는 가지도 못했다. 내가 가진 생활인의 성실함이 어쩐지 부끄러웠다. 문학과 사회, 예술과 현실 사이의 거리, 아니 그냥 광화문 거리에서 알베르 카뮈의 문장을 떠올렸다. '페스트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성실성입니다.' 그랬다.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것은 조금도 특별하지 않은 평범한 우리인데, 그런데 왜 나는 성실한 내가 부끄러운가. 광화문에 나가지 못하고 사무실에서 야근하는 날은 마음이 무거웠다. 덜덜 떨며 추위를 이기고 있을 사람들이 떠올랐다. 요양병원에 누워 있는 아버지를 보러 가면서도, 광장을 지키는 그들에게도 나처럼 지켜야 할 가족이 있을 텐데 하고 생각했다. 송경동 시인과 내가 특별할 리 없는데도 매일 그가 떠올랐다. 단식하는 그가 밥 먹는 나를 자주 울먹이게 했다. 거창하지 않은 우리의 일상을 그들이 무슨 권리로 멈추게 하는가. 일하는 것도, 글 쓰는 것도, 웃는 것도 죄스러운 시절이었다. 우리 모두의 봄을 이렇게 기억하게 하면 안 되는 거였다.어깨를 접고 또 반으로 접으며 광장으로 갔다. 곁에 있는, 알 수 없는 한 명 한 명에 섞여 우리로 있을 때 비로소 편안해졌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날마다 광장으로 퇴근했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 그저 동참하고 싶어서 모여든 사람들이 있었다. 아무도 오라고 하지 않아도 잠깐이라도 머물러 오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말했다.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나왔다고. 그들이 서로에게 온기를 나누어주고 배경이 되어주었다는 걸 우리는 안다. 2024년 12월 3일 밤 여의도 국회의사당을 시작으로 광화문, 안국역, 헌법재판소까지 긴 기다림의 시간을 공유한 수많은 사람들이 있어 외롭지 않았다. 내란의 밤을 밝힌 사람들의 불꽃은 2025년 4월 4일 절정에 이르렀다. 다른 선택은 있을 수 없었다. 단 하나의 결정만 있을 뿐, 이윽고 파면. 쉬지 않고 달려온 지난 시간이 오늘을 만들어냈다. 역사의 순간은 그냥 오지 않았고, 모두의 바람이 올바른 방향을 결정했다. 분명한 건 우리에겐 저마다의 광장이 있고, 우리는 우리가 선 곳을 광장이 되게 할 수 있다는 거였다. 그리하여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말은 뭐든 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출퇴근길의 작은 불편을 기꺼이 감수하려는 마음만 있다면. 파면의 날 이후 기필코 달라질 거라고 다짐했다. 기억의 힘을 믿으며, 기록의 힘에 기대어 할 수 있는 일들을 해내며 그렇게 살아가기로. 오늘이 모인 매일을 차곡차곡 살아갈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성실함으로. 그리고 이제 나는 작가로서의 자의식이 생활인으로서의 성실함보다 우월할 수 없다고 믿는다. 덧붙이는 글 | 최지애 : 2013년 심훈문학상 수상, 2014년 계간 에 수상작을 발표하며 등단. 소설집으로 등이 있음. 제20회 서라벌문학상 신인상 수상. 현재 다랑어스토리 문화기획자로 일하며 반상회 동인으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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