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연구자가 실록에 등장하는 항왜(귀화 혹은 항복한 일본인)의 수를 집계했는데요. 모두 42건에 600명에 달합니다.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인 포로의 숫자가 얼마나 될까요. 2~3만명에서 10만~40만명로 추정됩니다. 그렇다면 조선을 침략한 일본군은 어땠을까요. 그 숫자가 1만명을 넘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왜군의 걱정도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항왜의 수가 이미 1만명에 이르렀는데, 이들이 일본의 용병술을 다 털어놓았을테니 심히 걱정된다고 수근거린답니다.”
사진은 ‘평양성탈환도’의 부분. 왜군들이 조·명연합군에 의해 쫒기고 있는 모습을 그렸다. 임진왜란 개전초기 전세는 왜군의 파죽지세였다. 그러나 전국적으로 의병이 일어나고 이순신 장군이 제해권을 움켜쥔데다 명나라군까지 참전하자 장기전의 양상을 띄게 된다. 오랜 전쟁에 지친 왜군들은 설상가상으로 군량미 부족에 시달리게 되었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사야가, 즉 김충선의 문집인 은 “임진왜란 발발 당시 가토 기요마사가 이끄는 왜군 2진의 선봉을 맡아 부산포에 상륙했다가 곧바로 부하들과 함께 귀순했다”고 썼습니다. 은 사야가가 출정 전부터 “의롭지 못한 전쟁에 나섰지만 동방예의지국인 조선에 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을 다짐했다”고 소개했습니다.
임진왜란에 참전한 일본인 사야가는 “의롭지 못한 전쟁에 나섰지만 동방예의지국인 조선에 가면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하며 부산진 상륙 후 곧바로 귀순했다.|서울대 규장작한국학연구원 자료반대가 만만치 않았는데요. 그러나 선조는 “항왜 가운데 검술을 할 줄 알거나 병기를 잘 만들거나 하는 자를 꾀어내면 파격적인 상을 내려야 한다”고 일축했구요. 심지어는 “지금 항왜들만이…성 위로 올라가 죽을 힘을 다해 적병을 죽인다…이들에게 모두 당상관의 직책을 내리고, 은을 상급으로 하사하라”는 명을 내립니다.선조의 말마따나 ‘제 몸 돌보지 않고 싸운 항왜들’은 과연 누구일까요.“내가 항왜 여여문을 각별히 후대하라는 명을 내렸는데, 실행하고 있는가. 요사이 이 자가 병이 났다가 차도가 있다고 하는데 이는 보통 왜인이 아니다. 후하게 대우하라.
특히 “왜군은 쳐들어올 때 반드시 소수의 군사로 유인하여 적이 매복한 곳에 빠지기를 기다렸다가 잇따라 일어나 공격한다”고 일러주었는데요. 이 왜군의 전법은 칠천량 해전에서 입증되었습니다. 명나라군은 여여문의 형세도 대로 작전을 짰구요. 명나라군의 마귀 제독이 군사를 일으키자 여여문을 다시 적진에 침투시켰습니다. 이때 여여문은 왜군 4명의 수급을 베어 가지고 나왔는데요. 여기서 비극이 일어납니다.은 1598년 3월 27일 여여문의 죽음을 알리면서 “여여문이 베어낸 왜적 4명의 수급을 파귀가 빼앗는 것을 똑똑히 본 사람들이 많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파귀가 여여문의 공을 가로챈 혐의가 짙습니다. ‘우리 조선’이라고 하면서 충성을 다한 항왜 여여문의 허무한 죽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암살계획은 성사되지 않았습니다. 명나라와 왜와의 강화 계획이 틀어질까 걱정했기 때문입니다. 고언백은 왜군진영의 내응자인 고로비에게 “강화교섭을 위해 명나라 사신이 내려올 것이니 없었던 일로 하라”는 밀명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적진에 있던 고로비는 “일본이 명나라와 강화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하면서 크게 화를 냈습니다. 항왜들의 활약이 임진왜란 내내 대단했다. 1597년 11월 권율 도원수는 1597년 벌어진 정진전투에서 활약한 항왜들의 전공을 일일이 얼거하고 있다.참 대단한 분들이죠. 이뿐이 아니죠. 1597년 11월 벌어진 정진 전투에서도 항왜들의 활약이 컸습니다. 아군이 왜군의 포위에 말렸지만 항왜의 맹활약으로 사지를 겨우 탈출했는데요. 권율 도원수는 이 전투에 참전한 항왜들의 이름과 벼슬명, 공적을 구체적으로 나열하고 있습니다.
United States Latest News, United States Headlines
Similar News:You can also read news stories similar to this one that we have collected from other news sources.
14세기 중국 식탁서 돌연 사라진 생선회…팬더믹과 관련 있다? | 중앙일보사실 생선회를 처음 요리로 만들어 낸 나라는 중국이었습니다.\r중국 음식 생선회
Read more »
일본식 퇴폐카페에 맞선 '거리의 안식처'... 북촌이 들썩일본식 퇴폐카페에 맞선 '거리의 안식처'... 북촌이 들썩 커피히스토리 쥰킷샤 다방 끽다점 블루보틀 이길상 기자
Read more »
기녀들에 길동냥 하는 스님들…조선 승려들도 버스킹했다? | 중앙일보요즘 말로 하면 '생계형 버스커'라고 합니다.\r조선미술관 노상탁발 신윤복 승려
Read more »
사스→메르스→코로나 주기 심상찮다…전문가 '감염병X' 경고 | 중앙일보'향후 25년 이내 코로나19보다 더 큰 팬데믹이 발생할 수 있다'\r감염병 팬데믹
Read more »
허수아비보다 못한 임금, 조선 왕실의 서슬픈 처지허수아비보다 못한 임금, 조선 왕실의 서슬픈 처지 청춘월담 중종반정 갑자사화 왕권과_신권 경신환국 김종성 기자
Read mor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