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갑수의 일생의 일상]입술에 관한 몽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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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우 근처. 이즈음 물에 잠긴 논을 보면 올해 농사를 준비하는 설렘이 가득하다. 논두렁은 논과 논을 구획하는 경계이지만 또한 길고 좁은 밭뙈기이기도 하다. 옛날 모내기 끝내고...

곡우 근처. 이즈음 물에 잠긴 논을 보면 올해 농사를 준비하는 설렘이 가득하다. 논두렁은 논과 논을 구획하는 경계이지만 또한 길고 좁은 밭뙈기이기도 하다. 옛날 모내기 끝내고 어머니는 그 자투리땅도 그냥 놀릴 수 없다며, 호박이나 울콩을 심으셨지. 지난주 고향 가서 논두렁에 서서 술동이에서 막걸리 익어가듯 논바닥에서 뻐끔뻐끔 올라오는 기포를 보았다. 문득 들판의 논들을 아담하게 죄는 이 야무진 논두렁이 어째 꼭 얼굴의 입술 같다는, 조금은 엉뚱한 생각 하나가 흘러나오지 않겠는가.

입술, 인체에서 차지하는 면적이야 손바닥보다 좁아도 만만한 장소가 결코 아닌 것. 영화 의 한 퀴즈. 우리가 그 이름을 불러주면 사라지는 게 뭘까? 침묵이다. 침묵의 일번지인 입술. 솜털이 몹시도 나부끼는 몸의 피부에서 드물게 황무지 같은 입술에 대해 몇 가지 더할 이야기가 있다. 뒤늦게 발심하여 한문을 공부할 때 초심자로서 이런저런 방법을 동원한다. 눈으로 읽고, 손으로 쓰지만 가장 나은 건 입술을 움직여 문장이 노골노골해지도록 외는 게 가장 좋다. 어느 해 고전번역원 여름특강에서 맹자를 강의하시던 선생님. 예습 복습을 철저히 하라면서 특히 상구를 강조하셨다. 上口, 즉 입에 올리라는 것. 더 정확히 새긴다면 입술 위에 한자를 얹어놓고 중얼거리라는 뜻이었다.

입술로 글 읽는 소리는 망외의 소득을 이끌기도 한다. 일본 물리학자 유카와 히데키. 어린 시절 할아버지 무르팍에 앉아 수염 밑으로 떨어지는 소리를 그 뜻도 모른 채 무조건 따라 외웠다고 한다. 이른바 소독이라는 것이다. 그가 중간자의 존재를 예언하여 노벨 물리학상을 거머쥔 건 이런 한문 공부가 배경이 되었다고 한다. 옛 생각에 잠겼다가 입술 같은 논두렁을 빠져나올 때 논으로 와글와글 쏟아지는 햇빛의 구조가 보이는 것 같다. 그 햇살 속 칸칸마다 그리운 얼굴들. 그리고 다시 어머니 생각. 어느 날 끝나자, 노안을 찌푸리며 옥편과 사이를 왔다갔다하는 나를 안쓰럽게 보시며 하시던 말씀. “새복에 쌀 안치러 정지에 나갈 때, 너거 아부지 새집 할아버지한테 가서 글 읽는 소리, 담부랑 너머 들릴 때, 그거 얼마나 좋은지 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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