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가족들과 유럽 여행을 떠났다. 런던과 바르셀로나 그리고 파리를 거치는 일정이었다. 이번 파리 여행 계획 중 하나는 대회에서 수상한 크루아상을 최대한 많이 먹어보는 것이었다. '얘, 빵 좀 그만 먹어'라는 핀잔을 들을 정도로 나는 빵순이다. 사실 빵뿐만 아니라 먹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좋아한다. 새로운 식재료에 도전하고, 여행지에서만 먹을 수 있는 음..
올해 초 가족들과 유럽 여행을 떠났다. 런던과 바르셀로나 그리고 파리를 거치는 일정이었다. 이번 파리 여행 계획 중 하나는 대회에서 수상한 크루아상을 최대한 많이 먹어보는 것이었다."얘, 빵 좀 그만 먹어"라는 핀잔을 들을 정도로 나는 빵순이다. 사실 빵뿐만 아니라 먹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좋아한다. 새로운 식재료에 도전하고, 여행지에서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먹는다. 그리고 향신료나 소스를 잔뜩 사서 돌아오곤 한다.한때는 미식가가 되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맛에 대한 절대적인 감각과 객관적인 데이터를 내 혀와 뇌에 새기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열심히 노력하던 시절도 있다. 예를 들면 이렇게. 하루 동안 스콘으로 유명한 빵집투어를 한 후 집으로 돌아와서 사온 스콘들을 잘라서 반 조각은 '에프굽'을 한다. 경건한 마음으로 각 빵집의 스콘을 한 조각씩 음미하려고 애를 쓴다. 그런 후에는 느낀 바를 메모한다. 하지만 늘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고 만다.
올해 초 파리의 각종 빵집에서 크루아상을 사먹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매일 일정이 있었기 때문에 여러 빵집의 크루아상을 한꺼번에 사서 맛 비교를 할 여건이 되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먹을 때마다 열심히 메모를 했다. 겉껍질의 맛, 콰삭함의 정도와 빵결의 촉촉함 정도를 열심히 적어놓았다. 하지만 다음날 다른 빵집의 크루아상을 먹으면 전날 먹은 크루아상의 세세한 맛이 잘 기억나지 않았다. 전날 먹은 것도 기억나지 않을진대 서울에서 먹은 크루아상의 세세한 맛이 기억날 리가 없었다. 내 혀는 미식가가 되기에는 너무 섬세하지 못했고, 내 뇌는 미식가가 되기에는 너무 예민하지 못했다. 노력의 결과로 조금 나아졌는지도 모르지만, 여전히 나는 미식가의 조건에서 모조리 다 탈락할 것 같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미식가가 아니면 뭐 어때? 뭐든 다 맛있게 먹을 수 있잖아?" 문득 옛날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의 명대사"완전히 이해할 수 없어도, 완전히 사랑할 수 있다"가 떠오른다. 묘하게 들어맞는 말이 아닐까? 맛을 몰라도, 맛을 즐길 수 있다! 그래도 마음 한구석은 여전히 조금 씁쓸하다. 내가 구분하지 못하는 맛의 차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가 닿을 수 없는 세상이 있다는 것이.
나는 미식가가 아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미식가가 될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나는 미식가가 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 내 혀는 여전히 섬세하지 않고 뇌는 예민하지 않지만, 그래서 맛을 표현하는 내 문장은 어설프고, 어쩌면 다른 사람들의 공감을 얻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미식가가 되려고 노력하는 게 즐겁다. 지금 이 순간, 나는 씨앗호떡크럼블을 한 입 베어 물고 메모장에 이렇게 적는다."크럼블은 고소하고, 산미 없는 크림치즈는 묵직하다. 설탕에서는 시나몬향이 아주 많이 난다. 팥앙금에는 팥알이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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