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개별기업이 감당 못해글로벌 연기금·모험자본등국내 투자 늘리게 유도해야韓기업엔 과감한 세제지원을
韓기업엔 과감한 세제지원을 요즘 재계와 정책 당국의 화두는 AI 투자다. 글로벌 빅테크와 각국 정부가 수십조 원 규모의 AI 경쟁에 뛰어들면서, 국내에서도"이에 맞서려면 지주사 CVC나 금융지주 규제를 유연하게 풀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온다. 자체 자금과 얕은 국내 자본시장만으로는 버티기 어렵다는 절박함이 배경이다. 논쟁의 핵심은 금산분리 원칙의 전면 폐지가 아니다.
"전략 산업에 한해 예외를 두자"는 주장에 가깝다. 그러나 문제는 방향이다. 한번 완화된 규제는 되돌리기 어렵다. 금산분리를 단순히 '기업 활동을 제약하는 낡은 족쇄'로 보는 시각이 위험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원칙은 금융시스템의 위기를 막기 위한 거시경제의 안전판으로 설계된 장치이기 때문이다. 우려는 막연한 공포가 아니라 이론과 역사에 근거한다. '다이아몬드-딥비그 모형'이 보여주듯, 은행은 단기 예금으로 장기 자산을 운용하는 취약한 구조를 갖는다. 자산이 건전해도 신뢰가 흔들리면 뱅크런은 피할 수 없다. 미국의 실리콘밸리은행 사태는 여기에 산업 편중이 더해질 때의 파급력을 보여준다. 테크 기업과 장기 채권에 쏠린 자산 구조에 금리 충격이 가해지자, 스마트폰 뱅킹 시대의 예금 인출은 36시간이면 충분했다. 금산분리가 완화돼 산업의 리스크가 금융 시스템으로 전이될 때, 그 충격은 걷잡을 수 없는 위기로 비화될 수 있다. 동양 사태는 금융과 산업의 경계가 흐려졌을 때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보여주는 반면교사다. 당시 계열 금융사는 '내부 자금줄' 역할을 하다가 부실을 시장에 전가하는 결과를 낳았다. CVC 규제 완화 논의도 신중해야 한다. 지배구조와 리스크 관리 장치 없이 '특별한 통로'를 열어주는 식의 규제 완화가 돼서는 안 된다. 이는 혁신 투자의 마중물이 되기보다 그룹 내부 논리에 의해 자원이 비효율적으로 배분되는 '내부 자금 시장'의 한계를 되풀이할 수 있다. AI와 반도체를 둘러싼 경쟁이 격화될수록 투자 리스크도 커졌다. 초기 투자 규모는 크고, 기술 경로는 수시로 바뀌며, 시장은 승자독식이다. 리스크가 클수록 필요한 것은 '안전장치 제거'가 아니라, 더 정교한 '시장 검증'이다. 시장의 냉정한 검증을 통과할 자신이 있다면, 굳이 손쉬운 내부 자금에 기댈 이유가 없다. 투명성이 떨어지는 규제 완화는 '한국은 필요하면 언제든 원칙을 바꾸는 나라'라는 인식을 키워,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심화시킬 뿐이다. 결국 관건은"어떤 성격의 돈을 동원할 것인가"이다. 은행 예금과 같은 '안전 자산'이 감당할 몫이 있고, 주식·회사채·사모·인프라펀드 등 '모험 자본'이 감당해야 할 몫이 있다. 고위험 분야인 AI 인프라는 후자가 맡는 것이 금융의 원칙이다. 정부의 역할은 은행 금고의 빗장을 푸는 것이 아니라, 시장의 돈이 AI로 흐르지 못하게 막고 있는 둑을 터주는 것이다. 연기금·보험·인프라펀드가 AI 인프라에 적극 투자할 수 있도록 규제와 지배구조, 세제 인센티브를 손보는 것이 순서이다. AI 인프라 경쟁은 이미 기업 하나가 감당할 수 있는 규모를 넘어섰다. 금융과 산업의 방화벽을 허무는 낡은 해법 대신, 우리 기업이 글로벌 연기금·국부펀드와 '인프라 컨소시엄'을 꾸릴 수 있도록 외교·세제 지원에 집중해야 한다. AI 인프라 투자에 천문학적인 '실탄'이 필요하다는 절박함은 이해한다. 하지만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아군의 '성벽'부터 허물자는 주장은 기업과 금융 생태계를 공멸로 몰아넣을 위험한 도박이 될 수 있다. AI가 국가의 미래인 만큼, 그 토대가 되는 금융 원칙은 더 정교하고 단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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