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형적인 국내 엘리베이터 산업 구조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는 위험의 외주화에 이르러 끝이 난다. 두 청년이 올라탄 엘리베이터는 왜 추락했을까. 누가 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나.
지난 3월 27일 오후 1시. ㄱ씨와 ㄴ씨는 부산 해운대 아파트 18층에서 작업을 하기 위해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순간 레일에 걸려 있던 엘리베이터가 추락했다.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땅으로 떨어진 두 젊은이는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다. 119구조대가 유압장비로 잔해물을 치우고 시신을 수습해 구급대에 인계했다. 오후 1시55분. 상황이 종료됐다. 사고는 찰나였지만 두 노동자가 죽음에 이르게 된 과정은 길다.
기형적인 국내 엘리베이터 산업 구조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는 위험의 외주화에 이르러 끝이 난다. 두 청년이 올라탄 엘리베이터는 왜 추락했을까. 누가 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나.두 청년이 설치 중이던 엘리베이터는 티센크루프엘리베이터 코리아 제품이다. 티센코리아는 국내 엘리베이터 시장 점유율 2위 업체다. 사고로 목숨을 잃은 두 사람은 티센코리아 협력업체 소속이다. 현대엘리베이터 등 티센코리아 경쟁사 협력업체 소속이었던 이들은 올해 티센코리아 협력업체로 이직을 했다. ㄱ씨는 티센코리아 협력업체로 옮긴 지 9일, ㄴ씨는 3개월 만에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엘리베이터 설치작업 중 사망사고는 한 해 평균 5건 이상 발생한다. 그런데 이번처럼 매달린 카가 통째로 추락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경찰과 고용노동부가 사고원인에 대한 면밀한 조사를 벌이는 이유다. 수사당국과 달리 티센코리아는 사고원인에 대해 잠정 결론을 내린 상태다. 티센코리아는 작업자들의 안전불감증이 사고를 불렀다고 본다. 세이프티 기어와 같은 안전장치를 작동시키지 않았고 안전절차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책임은 노동자에게 있다는 것이다. 티센코리아의 주장은 타당할까. 해당 건을 조사 중인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티센 측 주장이 모두 맞다고 보지 않는다”며 “원도급사인 티센코리아의 책임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수사를 담당한 경찰도 ‘사고원인이 노동자에게만 있다는 것은 티센코리아의 주장일 뿐’이라며 선을 그었다. 경찰 관계자는 “실제 과실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다”고 밝혔다. 수사 결과는 나오지 않았지만 수사당국의 견해를 종합해보면 사고원인은 티센코리아의 주장과는 거리가 있다. 그럼에도 티센코리아는 노동자들의 안전 부주의를 사고원인으로 내세운다. 티센코리아가 적극적으로 책임 공방에 나서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티센코리아는 사고 책임에서 벗어날 ‘안전장치’가 있다. 티센코리아뿐 아니다. 대형 엘리베이터 제조사들은 사고 책임에서 자유롭다. 이들이 ‘믿는 구석’이 무엇인지 보려면 협력업체와의 계약관계, 엘리베이터 설치 노동시장의 구조를 봐야 한다.추락사고가 발생한 아파트는 전에도 티센크루프동양엘리베이터를 이용했다. 엘리베이터 교체시기가 되자 이번에도 티센코리아 제품을 택했다. 티센코리아는 지난해 10월 부산지역 엘리베이터 설치 협력업체와 함께 공동수급 방식으로 아파트 측과 공사계약을 했다. ‘티센크루프엘리베이터코리아 컨소시엄’이 낡은 엘리베이터 22대를 티센코리아의 새 제품으로 바꿔 설치하는 공사다. 먼저 5개동 엘리베이터 6대의 교체작업이 시작됐다. 계약과 달리 실제 공사에 투입된 회사는 부산 업체가 아닌 경기도 소재 엘리베이터 설치업체인 ㄷ사였다. ㄷ사는 사망한 노동자 ㄱ씨와 ㄴ씨가 속한 중소업체로 전체 설치작업 인력은 15명에 불과하다. 대표를 포함한 ㄷ사 소속 직원 7명은 지난 2월 11일부터 부산에 내려와 설치작업에 착수했다. 공사업체가 바뀌었지만 티센코리아는 아파트 측과 변경계약서를 쓰지 않았다. 사고로 숨진 노동자들은 아파트와 정식 계약도 맺지 않은 채 일을 하다 변을 당했다. 이에 대해 티센코리아 측은 “최초 계약한 설치 협력사가 공사 진행이 어려워 다른 설치 시공사를 찾아 작업을 한 것”이라며 “설치업체 변경은 종종 있는 일”이라고 밝혔다.하지만 지역 공사에서 해당 지역 협력업체가 아닌 타 지역 협력업체가 작업을 맡는 경우는 흔치 않다. 업계에서는 협력업체가 급하게 바뀐 이유를 ‘공사대금’에서 찾는다. 업계 관계자는 “티센코리아에서 설치비용으로 제시한 금액이 너무 적어 부산지역 업체와 실랑이가 있었다”며 “티센에서 ‘너희 아니라도 공사할 곳 많다’며 보여주기 식으로 경기도 업체인 ㄷ사를 끌고 내려온 것”이라고 말했다. 티센코리아와 ㄷ사 사이 대금분배 규정이 담긴 ‘공동수급체 대금분배 약정서’에 따르면 ㄷ사가 엘리베이터 6대를 설치하고 받기로 한 공사대금은 3100만원 정도다. 한 대당 500만원 꼴이다. 임오순 한국승강기공사협회장은 “크기와 층수에 따라 다르지만 18층 엘리베이터 설치비용은 보통 한 대당 1000만원 선”이라며 “통상적으로 책정하는 금액의 절반 수준밖에 안 된다”고 말했다. ㄷ사는 왜 이런 조건에 공사를 진행했을까. 협력업체는 공사와 관련한 일체의 선택권이 없다. 티센코리아 엘리베이터 설치를 전담하는 협력업체는 전국 84개. 티센코리아가 전국 각지에서 사업을 수주하면 각 소재 지역 협력업체를 끼워넣어 공사를 진행하는 구조다. 티센이 주는 일감이 끊기면 문을 닫아야 하는 협력업체 입장에서는 ‘갑’인 티센코리아의 요구를 거부할 수 없다. 공사대금이나 조건에 불만을 표시하면 보란 듯 다른 협력업체에 일감을 넘긴다.티센코리아와 협력업체 간 계약은 티센코리아에서 운영하는 온라인 프로그램을 통해 이뤄진다. 협력업체들은 미리 법인 인감과 도장을 티센코리아에 맡기고 티센코리아는 자체적으로 계약을 진행한다. 협력업체는 차후에 프로그램에 접속해 계약서를 확인하고 전자결재로 사인한다. 경찰 관계자는 “티센코리아와 협력업체 사이의 계약은 별 의미가 없다”며 “공사대금이나 조건을 협의해서 계약하는 게 아니라 티센 측에서 정하면 그냥 따라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티센코리아를 비롯한 국내 대형 엘리베이터 제조사들은 설치를 전문으로 하는 협력업체와 ‘컨소시엄’이라는 이름의 공동수급체를 만들어 계약을 이행한다. 엘리베이터 설치 공정을 떼어내 협력업체에 맡기는 외주 방식으로 설치작업을 하는 셈이다. 건설산업기본법상 승강기설치공사업은 하도급이 허용되지 않는다. 대기업과 중소 하청업체에서 발생하는 불공정거래를 막고 이른바 불법파견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2007년 건설교통부가 티센크루프동양엘리베이터·현대엘리베이터·오티스엘리베이터·한국미쓰비시엘리베이터를 상대로 대대적인 불법 하도급 실태조사를 벌인 뒤 공동수급 계약이 확산됐다. 당시 불법 하도급 실태조사를 지켜본 업계 관계자는 “현장 단속 나오니까 작업자들이 다 도망가고 난리가 났었다”며 “일단 공동수급 계약서를 만들어두면 나중에 법적 대응이 가능하다고 판단해서 대형사들이 그때부터 공동수급 계약서를 꼼꼼히 챙겼다”고 말했다. 공동수급 계약은 명확한 업무·책임 분담과 그에 따른 공사대금 산정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국내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설치 협력업체들은 설치뿐만 아니라 그 밖의 추가업무도 대형 엘리베이터 제조사가 시키면 따라야 한다. 공사대금도 대형 엘리베이터 제조사들이 일방적으로 정한다. 보통 건설사나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엘리베이터 설치비로 책정한 금액의 절반 가까이를 대형 엘리베이터 제조사가 협력업체 ‘관리비’ 명목으로 떼어가고 남은 금액을 설치 협력업체에 보낸다. 중간에서 사실상 ‘통행세’를 챙기는 셈이다. 윤경환 노무사는 “공동수급이라고 볼 수 없는 위장도급 형태”라며 “모든 일은 하청이 하고 제조사들은 수수료만 챙기는 얌체영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설치과정에서 하청기업을 이용해 수익을 내는 ‘한국식’ 영업방식은 외국에서는 통용되지 않는다. 유럽이나 미국, 일본 등의 엘리베이터 제조사들은 직영으로 설치작업을 하거나 설치업체에 맡기더라도 기준에 따라 적정 설치비를 지급한다. 익명을 요구한 엘리베이터 업계 관계자는 “해외 엘리베이터 제조사들은 설치작업으로는 수익이 생기지 않는 구조”라며 “한국에 진출한 외국계 엘리베이터 제조 본사에서 설치 하도급으로 수익을 내는 국내 방식을 성공사례로 소개하기도 했다”고 말했다.티센코리아가 이번 부산 해운대 추락사고에 대한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는 근거도 공동수급 계약이다. 티센코리아와 ㄷ사 간 ‘공동수급체 협정서’ 제26조는 “구성원 또는 구성원의 피고용인이 공사 시행 중 생명·신체 및 재산상의 손해를 입었을 경우 그 구성원이 단독으로 책임지고 처리해야 하며 다른 구성원은 어떤한 경우에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실제로 티센코리아는 “사고를 당한 분들은 공동도급 계약을 맺은 설치업체의 직원이기 때문에 티센코리아에 보험 가입 의무는 없다”고 밝혔다.티센코리아와 ㄷ사가 하도급 계약을 맺었다면 안전조치 의무를 다하지 않은 원청인 티센코리아를 처벌할 수 있지만 두 회사를 공동수급체로 보면 티센코리아에 책임을 묻기 어렵다. 경찰 관계자는 “사고 책임에서 벗어나기 위해 대형 제조사가 공동수급 관계를 이용하고 있다”며 “이전에도 비슷한 사고가 있었지만 모두 공동수급을 내세워 법망을 빠져나갔다”고 말했다. 티센코리아와 ㄷ사의 ‘공동수급체 협정서’를 그대로 따르면 사고 책임은 오롯이 ㄷ업체가 져야 할 판이다. 영세업체인 ㄷ사는 민간보험사에서 나오는 보험금 외에는 추가로 배상할 여력이 없다. 사고 이후 남겨진 사람들은 책임소재를 두고 기나긴 분쟁에 들어설 가능성이 높다. 협력업체 노동자들은 여전히 위험한 레일에 매달려 있다. ‘갑’ 건설사는 ‘을’ 대형 엘리베이터 제조사에 최저가 입찰과 공사기간 단축을 요구한다. 저가 입찰로 엘리베이터 공사를 수주한 대형 엘리베이터 제조사는 더 낮은 단가를 매겨 ‘병’인 협력업체에 설치공사를 맡긴다. 터무니없이 낮은 공사대금을 받은 협력업체는 손실을 메우기 위해 더 빨리 더 많은 작업을 해야 한다. 일을 맡긴 대형 엘리베이터 제조사들은 업무분담을 이유로 안전관리를 하지 않는다. 위험하고 열악한 업무환경을 견디지 못한 노동자들이 현장을 떠난다. 인력 부족으로 노동강도는 심해진다. 숙련 노동자를 대신해 투입된 비숙련 노동자들은 다시 안전사고에 노출된다. 악순환의 고리다. 위험을 하청에 내모는 엘리베이터 산업의 기형적인 구조는 1997년 IMF 외환위기를 계기로 생겨났다. 당시 대형 엘리베이터 제조사들은 직영으로 운영하던 설치인력에 대한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직장을 잃은 설치인력들이 설치 전문 중소업체에 들어가면서 엘리베이터 산업에 하도급 구조가 정착한 것이다. 업계에서 추정하는 대형 엘리베이터 제조사의 설치인력 규모를 보면 현대엘리베이터 100여명, 티센코리아 50여명, 오티스는 30여명 정도다. 현장 작업 인력으로 볼 수 없는 규모다. 엘리베이터를 매달고 고치는 위험한 일은 협력업체의 몫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의원은 “현재 대형 엘리베이터 업체는 공동수급체 형식을 빌려 노동법상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며 “이들의 행태는 전형적인 위험의 외주화로 엘리베이터는 노동자 안전뿐 아니라 시민 안전에도 관련이 있는 만큼 철저히 책임을 묻고 관리·감독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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