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은행이 ‘오픈뱅킹’의 문제를 인지하고, 금융위·금융결제원에 개선건의를 했지만 1년이 넘도록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모바일 인증서 발급을 위한 신분증 인증 절차. “반드시 신분증 원본을 촬영해야 한다”고 고지했다. 그러나 원본이 아니어도 인증이 된다. 주민등록증 사진을 가리고 모바일 인증서 발급을 위한 본인인증을 해도 통과된다. 휴대폰으로 촬영한 사진을 띄워두고 본인인증을 해도 통과된다. 발급받은 모바일 인증서로 오픈뱅킹을 등록하고 계좌이체까지 성공했다. 모바일 인증서 발급을 완료한 사진 | 김찬호 기자시중은행이 ‘오픈뱅킹’의 문제를 인지하고, 금융위·금융결제원에 개선건의를 했지만 1년이 넘도록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건의에는 ‘오픈뱅킹으로 인한 전자금융사고 추이’뿐만 아니라 ‘오픈뱅킹 사고를 막을 방법, 신고 절차 수립’ 등의 내용도 담겨 있었다. 개선안이 관계자들 손에서 ‘검토 중’인 동안, 존재 자체도 몰랐던 오픈뱅킹으로 인한 피해자들이 발생했다. 건의를 반영해 개선했다면 피해를 입지 않았을 사례들이었다.
새로운 기술을 이해하고,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오픈뱅킹은 생활에 편리를 가져다주는 ‘도구’다. 동시에 오픈뱅킹은 범죄자들에게 범행의 편리를 가져다주는 ‘도구’가 되고 있다. ‘생활의 편리’와 ‘범행의 편리’ 사이에는 구멍 뚫린 제도가 있다. 오픈뱅킹 사태의 시작은 ‘피해자들의 부주의’가 아닌 문제를 알고도 방치한 ‘관련기관들의 부주의’라는 지적이 나온다.■1년 넘게 검토만… 은행·당국 책임은 ‘오픈뱅킹 전자금융사고 관련 제도 수립 및 품질 검증 강화’. 국민은행이 2021년 4월 28일 금융위원회·금융결제원에 제출했다는 건의서 제목이다. 해당 문서에는 그동안 확인할 수 없었던 은행이 보는 ‘오픈뱅킹 피해사례 추이’와 ‘문제점’ 등이 담겨 있다. 문서는 “오픈뱅킹으로 인한 전자금융사고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며 “오픈뱅킹을 이용하면 기관 전자금융 가입여부, 비밀번호 검증없이 타 기관 플랫폼에서 거래가 가능하다”고 지적한다.
법을 준수하기 위해 과거 본인확인은 대면이 원칙이었다. 은행을 방문해 실물 주민등록증 등을 보여주는 방식이었다. 문제는 비대면 금융거래가 활성화되면서 ‘본인확인’까지 비대면으로 가능해졌다는 점이다. 금융위가 발표한 ‘비대면 계좌개설 시 실명확인 방식 합리화 방안’이 적용근거다. 비대면 실명확인을 하는 경우 ‘실명확인증표 사본 제출’, ‘영상통화’, ‘본인만 수취할 수 있는 접근매체 전달 과정에서 본인확인’, ‘기존계좌 활용’, ‘바이오 정보가 포함된 기타 방법’ 중 2가지 이상을 중복 적용해야 한다. 해당 가이드라인에서 말하는 ‘실명확인증표’는 신분증 원본을 말한다. 즉 은행이 비대면으로 고객의 계좌개설을 할 경우 신분증 원본을 촬영한 사본을 제출받아 확인하라는 의미다.
이 경우 금융위 가이드라인 위반이 된다. 금융위에 ‘실명확인증표’의 명확한 의미를 물었다. 금융위 관계자는 “실명확인증표는 신분증 원본을 의미하는 것”이라며 “가이드라인을 준수해야 할 의무는 1차적으로 금융기관에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부 시민단체도 금융회사가 신분증 원본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문제의 본질이 아니라는 말도 있다”고 덧붙였다. 피해의 시발점이 유출된 신분증 사본임은 수 많은 사례로 확인된다. 이를 따져 묻기 위해 ‘금융위의 공식 입장이냐’고 재차 물었다. 그러자 “그런 주장도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시중은행은 금융위 가이드라인을 제대로 준수하지 않았다. 금융실명법 위반 문제도 따져봐야 한다. 금융위는 ‘사태의 본질’을 따지기 전에 스스로 내놓은 가이드라인이 잘 지켜는지부터 확인해야 한다. 금융위 관계자의 발언은 신분증 원본 확인 문제를 그들도 이미 알고 있었다는 의미다.
A씨는 피해 규모를 확인하고 필요한 조치를 했다. 계좌가 있는 은행마다 일일이 돌아다니며 피해 사실을 알려야 했다. 잊고 지낸 카드나 통장이 있을까 불안해 딸에게도 사실을 알렸다. 뒤늦게 범인이 A씨 명의로 알뜰폰을 개통한 것도 알게됐다. A씨의 딸은 “나 역시 오픈뱅킹 사고가 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파악하기가 어려웠다”며 “대응 매뉴얼도 없기 때문에 여기저기 묻고 물어 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 곳을 하나씩 찾아 막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오픈뱅킹이 뭔지도 모르는 아버지가 홀로 대처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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