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억배럴의 석유·가스를 찾아 동해로 떠난 대왕고래는 길을 잃었다. 생계를 위협받던 어민들만 덩그러니 남았다. 10여년 전 ‘국내 최초’를 내건 지열발전 사업은, 2017년 땅을 뒤흔들어 사람의 목숨을 앗고 수만곳의 건물을 무너뜨렸다. 그때부터 다시 7년이 지나도록
지난해 12월30일 새벽 경북 포항 앞바다에 위치한 대왕고래 유망구조에서 웨스트카펠라호가 탐사 시추 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10여년 전 ‘국내 최초’를 내건 지열발전 사업은, 2017년 땅을 뒤흔들어 사람의 목숨을 앗고 수만곳의 건물을 무너뜨렸다. 그때부터 다시 7년이 지나도록 책임을 묻지 못한다. 국책사업 탓이라던 정부도 정작 책임은 외면한다.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6월 서울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룸에서 동해 석유·가스 매장과 관련한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동해 석유·가스전 개발사업, 일명 ‘대왕고래 프로젝트’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입에서 시작되었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6월3일 국정브리핑을 자청해 “포항 영일만 앞바다에 최대 140억배럴에 달하는 막대한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고 했다. 석유·가스 매장을 분석한 미국 지질탐사 컨설팅 회사 액트지오를 두고 여러 의문이 쏟아졌다. 국회는 산업통상자원부가 첫 시추에 필요하다고 제출한 예산 505억5700만원 중 98%인 497억2천만원을 삭감했다. 윤 전 대통령은 신중한 사업 추진과 설득을 위한 소통 대신, 12·3 내란으로 국회를 장악하려 했고 결국 자멸했다.한국석유공사는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2월까지 포항에서 동쪽으로 40㎞ 떨어진 곳에 시추선 웨스트카펠라호를 투입해 1차 시추를 벌였지만 결과는 사실상 실패였다. 산업부는 “일부 가스 징후를 확인했지만, 그 규모가 경제성을 확보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올해 2차 시추에 나선다는 계획이지만, 정권교체로 사업은 동력을 잃은 상태다. ‘대왕고래’에 등이 터진 건 경북 포항 시민들이다. 홍게잡이 성수기만은 피해달라는 어민들 목소리는 묵살됐다. 생계 수단인 어선으로 시추선을 둘러싸고 항의해도 소용없었다. 보상 문제 이전에 모든 협의가 충분하지 않았다고 했다.올해 초 한국석유공사는 전문가 의견을 들어 보상 범위 등을 정하겠다고 어민들에게 설명했다고 한다. 최소 수개월에서 길게는 1년 이상 걸리는 일이다. 어민들은 직접 전문가를 추천했는데, 이후 상황은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고 한다. 이경태 구룡포연안홍게선주협회 사무국장은 “1차 시추 이후 진동 때문에 홍게가 어디로 숨었는지 어획량이 좋지 않다. 이전에는 하루이틀이면 채우던 양을 지금은 3박4일까지 작업을 늘려 겨우 맞추고 있다”며 “이미 피해는 생겼는데, 벌써 지나가 버린 일로 취급된다. 은근슬쩍 잊힐까 봐 걱정”이라고 말했다.경북 포항은 10여년 전에도 에너지 도시를 꿈꿨다. 이명박 정부 시절 국내 최초로 지열발전을 상용화한다며 포항 북구 흥해읍 일대를 콕 집었다. 비화산 지대 가운데 땅속 5㎞ 아래에 최대 섭씨 180도의 열기가 확인되는 최적의 지역이라고 했다. 2011년 경제적 타당성을 확인하는 시추 작업이 본격화됐다. 국비 195억원, 민자 278억원 등 473억원을 투입해 2015년 11월까지 1.5㎿급 발전을 목표로 한 포항 지열발전소 건설사업은 2012년 9월25일 첫 삽을 떴다. 하지만 기술 개발과 플랜트 설비 등이 늦어지면서 사업은 거듭 미뤄졌다.이런 가운데 포항에서 2017년 11월15일 규모 5.4, 2018년 2월11일 규모 4.6의 지진이 잇달아 발생했다. 이들 지진으로 1명이 숨지고, 117명이 다쳤다. 이재민은 1797명에 이르렀고, 5만5095건의 시설물이 파손됐다. 지진과 지열발전소의 연관성이 제기됐다. 문재인 당시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산업부는 국내외 전문가 17명으로 구성된 ‘포항지진 조사연구단’을 꾸리고 2018년 3월부터 약 1년 동안 정밀조사를 벌였다. 자연지진이 아니라, 지열발전 실증연구 과정에서 발생한 ‘촉발지진’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앞서 2017년 4월15일 규모 3.1의 지진이 발생했는데도 물 주입을 중단하는 등의 조처를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경북 포항 지진 정신적 손해배상 소송의 항소심 패소 판결과 관련해 ‘포항지진 범시민대책본부’가 지난달 13일 포항 육거리 인근 중앙상가에서 개최한 시민궐기대회에서 시민들이 항의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책임을 묻는 과정은 험난하기만 하다. 검찰은 사건이 발생하고 7년이 흐른 지난해 8월 포항지열발전 컨소시엄 주관기관 대표 등 5명을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공판준비만 1년 가까이 이어졌다. 첫 재판은 오는 15일이다. 정부와 포스코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나선 포항 시민들은 두번 운다. 지난 5월 항소심 재판부는 정부의 책임을 인정해 1인당 200만~30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뒤집었다. 2017년 11월 기준 포항시 인구의 96%가 참가한 소송이다.경북 포항 지열발전 실증연구 현장의 모습. 현재는 지진 감지 설비 일부를 제외하고 모두 철거됐다. 한겨레 자료사진포항 지열발전소로 인한 ‘촉발지진’은 아직도 시민들을 위협한다. 6월4일치 ‘포항 지열발전부지 안전관리사업 주민설명회’ 자료를 보면, 2021년 6월부터 올해 4월까지 포항 인근 지역에서 모두 677회의 지진동이 감지됐다고 한다. 2023년 7월 지진감지 모듈을 구축한 이후 자동분석으로 감지된 지진동은 미소지진을 포함해 월평균 16.6회에 이른다. 하지만 이런 통계는 시민들은 물론 포항시에도 제대로 공유되지 않고 있다. 주민설명회 등으로만 이따금 공개된다. 포항시가 확보한 자료는 2023년 말이 마지막이다. 포항시는 지난 5월12일 안전관리를 맡고 있는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에 관련 자료를 공유해달라는 공문을 보냈지만, 아직 뚜렷한 답을 받지 못했다. 지열발전소 터는 또다른 골칫거리다. 산업부와 포항시는 2021년 5월 사업 주관사 ㈜넥스지오 소유의 터 1만3843㎡를 47억1400만원에 사들였다. 현재 소유주는 포항시다. 이곳에 지진 위험을 감지하고 관련 연구를 하는 지진안전관리센터를 2027년까지 짓기로 했다. 하지만 센터 건립은 지지부진하다. 산업부가 건물을 지어 포항시에 기부채납하기로 했지만, 이후 운영과 관련한 논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2021년 12월 작성된 포항시의 ‘지진연구센터 건립 기본계획 및 운영방안 수립’ 자료를 보면, 센터 운영비는 연간 3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적잖은 예산도 문제지만, 전문 인력을 확보하기도 쉽지 않다. 자칫 포항시가 텅 빈 건물만 애물단지처럼 떠안게 될 수도 있다. 포항시는 산업부가 명확한 운영 계획을 밝혀야만 센터 건립 절차를 원활하게 밟을 수 있다는 입장이다. 김은주 포항시의원은 “지역에 대형 국책사업을 충분한 검증 없이 시작하면서 기대심리만 키웠다. 지열발전소도 결국 촉발지진으로 이어졌고, 배상 문제로 주민들의 아픔은 현재 진행형”이라며 “대왕고래 프로젝트 역시 정치적 계산으로 시작해 갈등의 불씨만 남겼다. 앞으로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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