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볕은 온화하다. 길을 걸으면 눈과 귀, 피부의 숨구멍으로 봄의 빛과 소리, 바람이 들어온다. 걸음을 멈추고 나무처럼 서서 빛을 쬐고 싶다. 봄볕을 받아 하룻밤 새 꽃을 틔우고 여린 싹을 돋아내는 나무처럼 내게서도 무언가 싹트지 않을까 기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봄의 볕은 온화하다. 길을 걸으면 눈과 귀, 피부의 숨구멍으로 봄의 빛과 소리, 바람이 들어온다. 걸음을 멈추고 나무처럼 서서 빛을 쬐고 싶다. 봄볕을 받아 하룻밤 새 꽃을 틔우고 여린 싹을 돋아내는 나무처럼 내게서도 무언가 싹트지 않을까 기대한다.
기대한다는 건 마음에서 싹이 움트고 있다는 신호다. 매화가 필 즈음이면 창덕궁에서는 '빛·바람 들이기'라는 행사를 연다. 이 기간에는 궁궐의 창과 문을 열어 겨우내 고였던 공기를 내보내고 바깥의 신선한 공기와 빛을 들인다. 덕분에 궁을 찾는 사람들은 옛 건축물이 품은 비밀한 아름다움을 만날 수 있다.'빛 바람 들이기'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희정당이다. 희정당은 전통 건물에서 볼 수 없는 현관을 둔 'ㅁ' 자 형의 건축물이다. 건물의 전면에서 열린 문으로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다. 복도 형태로 이어지는 건물 내부에는 복도의 골격과 연달아 달린 문들이 크기를 맞춰 일직선으로 늘어서 있다. 문 속의 문 속의 문 속의 문.... 러시아의 전통 인형 마트료시카처럼 크기가 일정하게 줄어드는 문이 열을 맞춰 리듬감을 형성한다. AD 하나의 건물에서뿐만 아니라 앞쪽 건물과 일정한 간격을 두고 뒤에 놓인 건물 사이에도 창의 위치는 정확하게 맞아떨어진다. 그로 인해 내부가 좁은 건물이 밀집하더라도 창과 창이 포개져 밖으로 한없이 열린다. 작은 창으로 내부와 외부를 이어 공간을 확장하고 동시에 건물과 건물을 관통하여 무한한 연결을 시도한다. 강박적인 반복과 오차 없는 정교함, 지극의 일치로 아름다움이 빚어진다. 옛날 창의 위치를 고민하여 건물을 지어 올렸을 선조들의 섬세함에 감탄이 절로 새어 나온다. 문득 독창성이란 의지력과 치열한 관찰의 산물이라던 시인 메리 올리버의 말이 떠오른다. 반복이라는 의지와 치열하려는 강박은 하나의 작품을 일정한 경지에 올리기 위한 기본 기술일 것이다. 건물과 건물 사이를 거니는 동안 열린 창은 미술관에 걸린 작품의 프레임처럼 기능한다. 사각 프레임으로 회청색 지붕과 화려한 색감을 자랑하는 처마가, 때로는 아침 햇살을 머금은 담백한 담장이 걸린다. 창을 사이에 두고 안과 밖이 서로를 초대한다. 아담한 전통 한옥은 열림을 통해 내부와 외부의 경계를 허물고 주변과의 분리가 아닌 어우러짐을 택한다. 웅장하지 않아도 드넓어지는 방법이다. 정오를 향해가는 아침 햇살이 떨어져 건물의 윤곽선을 따라 아스라한 기운을 퍼뜨린다. 고아한 한옥 위로 빛은 일렁임으로 그늘은 움푹함으로 미감을 부여한다. 한 존재의 아름다움이란 주변 세계와의 조화, 빛과 바람과의 교감, 그 세월의 흔적으로 완성된다.아침의 궁에서 건물과 창에 걸린 풍경을 감상하는 사이 가슴께가 간질거리다 못해 울렁거린다. 프랑스 철학자 장 뤽 낭시는 아름다움이란 우리 내면의 깊고 은밀한 욕망과 맞닿아 있기에 우리를 안심시키거나 만족스럽게만 하는데 그치지 않고 불안정과 불안을 야기한다고 했던가. 한껏 열린 창덕궁의 모습이 경이로운 동시에 아스라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건 그 순간에만 마주할 수 있는 바람과 공기, 빛으로 이루어진 찰나의 장면이기 때문이다. 일상적으로 접할 수 없고 영원히 소유할 수 없는 환영 같아 경이로움에 불안과 조바심이 따라온다. 아름다움 앞에서는 우리의 미약함과 소멸의 운명도 명백해진다. 창을 열어 외부를 초대하는 집의 몸짓을 본다. 바라보는 사이 내 영혼의 창도 어딘가로 열리는 듯하다. 집을 무한히 열리게 하는 봄날의 빛과 바람이 내게도 내린다. 나라는 작은 사람도 눈과 귀, 숨구멍을 열면 무한히 확장될까. 나를 열면 누군가를 초대할 수 있을까. 그러려면 어떤 몸짓이 필요할까. 온화한 볕 아래서 두 팔을 양쪽으로 뻗는다. '보다'에서 왔다는 봄에는 만물이 새로 보인다. 서로를 바라보며 존재를 알아채고 어우러짐을 위해 초대의 몸짓을 짓는 계절이다. 몸이라는 집의 창을 열고 빛과 바람을 들이자. 당신의 마음에서 움트는 기대라는 싹에 물을 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