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윤형 |논설위원 “이번 선거에서 한-미 동맹의 ‘재조정’ 같은 중요한 문제가 쟁점이 안 된 이유는 뭔가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미군을 그대로 두지 않을 것이고, 북-미 접근도 분명 있을 겁니다. 한국은 지금 너무 위험합니다.” 일본 아사히
신임 사령관 제이비어 T. 브런슨 장군이 지난해 12월20일 한국 평택 캠프 험프리스에서 열린 유엔사령부, 한미연합사령부, 주한미군 사령부의 지휘권 이양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평택/EPA 연합뉴스“이번 선거에서 한-미 동맹의 ‘재조정’ 같은 중요한 문제가 쟁점이 안 된 이유는 뭔가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미군을 그대로 두지 않을 것이고, 북-미 접근도 분명 있을 겁니다.
한국은 지금 너무 위험합니다.” 일본 아사히신문의 마키노 요시히로 전문기자가 ‘한국 대선 취재를 위해 조만간 서울에 가는데 잠시 만나 얘기를 나누지 않겠냐’고 연락해 온 것은 지난달 초였다. 마키노 기자는 한-일·북-일·남북 관계와 관련해 무려 10여권의 저서를 남긴 일본 내 최고의 ‘한반도 전문기자’로 꼽힌다. 5월30일 오후 서울 종로 광화문 근처에서 3일 대선과 관련해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그가 던진 이 질문을 받고 잠시 깊은 생각에 잠길 수밖에 없었다.“이번 선거의 가장 큰 목적은 윤석열이 일으킨 12·3 내란을 정리하고 질서를 회복하는 겁니다. 진보 쪽 전문가들도 앞으로 이뤄질 여러 변화에 대해 각오하며 대비하고 있습니다.”마키노의 말대로 2기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선 뒤 진행 중인 여러 변화를 살펴보면, 한국전쟁 이후 최대 ‘국난’에 직면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트럼프는 말 그대로 그동안 우리의 번영을 지탱해온 ‘자유무역질서’와 한-미 상호방위조약이라는 두 기둥을 동시에 허물고 있다. 믿어왔던 동맹이 갑작스레 날카로운 칼로 옆구리를 찌르고 있는 형국이니, 너무 아파 비명조차 나오지 않는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 아닐까 한다. 미국이 요구하게 될 한-미 동맹의 ‘재조정’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이 될까. 미국에서 들려오는 여러 정보를 묶어서 볼 때 유력하게 검토되는 1안으로 보이는 것은 ‘주한미군 감축’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5월22일 미국 정부 당국자들을 인용해 한국에 주둔한 미군 약 2만8500명 가운데 약 4500명을 괌을 비롯해 인도·태평양 내 다른 지역으로 이전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4500명이란 미국이 한국에 순환 배치하고 있는 스트라이커 여단 병력을 뜻한다. 결국 이 병력을 괌 등의 후방에 배치하고 편리한 대로 중국 견제에 활용하겠다는 말로 이해된다. 미 국방부 당국자는 5월29일 에이피 통신 인터뷰에서도 한반도에서 병력을 줄이는 안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2안으로 보이는 것은 주한미군의 존치를 전제로 한 대대적인 역할 변경론이다. 이 안의 강력한 옹호자로 보이는 이는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 사령관이다. 그는 5월15일과 27일 한반도는 중·일 사이에 존재하는 ‘불침 항공모함’라는 말로 이 땅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사실 이보다 더 눈에 띄는 말은 “힘에 의한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때론 다른 곳으로 가야 한다”는 대목이었다. 베이징의 ‘턱밑에 도사린 칼날’ 같은 한반도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병력 규모를 가급적 유지하되, 주된 역할을 ‘한국 방어’에서 ‘중국 견제’로 바꾸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주한미군은 “극동의 평화와 안전의 유지에 기여”하기 위해 ‘전략적 자율성’을 최대한 발휘하는 주일미군처럼 변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군의 ‘발진기지’ 역할을 떠맡게 되는 한국은 중국과의 관계에서 엄청난 부담을 지게 될 게 뻔하다. 기억을 되돌려보면, 한·미는 2006년 1월 이 난제와 관련해 ‘공통된 인식’에 도달한 바 있다. 당시 문서를 보면 한국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의 필요성을 존중”한다고 했고, 미국은 “한국민의 의지와 관계없이 동북아 지역 분쟁에 개입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한국의 입장을 존중한다”는 뜻을 밝혔다. 이 문제를 담당했던 ‘노무현의 책사’ 이종석은 훗날 펴낸 회고록 ‘칼날 위의 평화’에서 “미국의 감축 계획에 수동적으로 끌려갈 게 아니라 당당하고 능동적으로 협상해야 한다”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발언을 상세히 전하고 있다. 19년 전 가까스로 봉인했던 난감한 문제가 되살아나려 하고 있다. 살살 눈치 보며 물러선다고 우리 사정을 봐줄 트럼프가 아니다. 한-미 동맹의 미래 모습과 그 속에서 우리가 최선이라고 판단하는 명확한 안을 갖고, 앞으로 이뤄질 처절한 협상에 당당하고 능동적으로 임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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