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국가세력 100년사, 일제의 사상적 무기 꺼낸 윤석열 정권
윤석열 대통령이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룸에서 국정브리핑 및 기자회견 하며 물을 마시고 있다. 2024.08.29. ⓒ뉴시스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8월 1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을지 및 제36회 국무회의에서 한 말이다. 윤 대통령은 이날 “반국가세력이 곳곳에 암약하고 있다”며 “북한은 개전 초기부터 이들을 동원하여, 폭력과 여론몰이, 그리고 선전, 선동으로 국민적 혼란을 가중하고 국론 분열을 꾀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1933년 10월 16일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일제는 “반국가·반군사상의 인쇄물을 일소하고 황도정신을 철저케 함”과 “국민의 정신적 일치결합”을 통해 ‘국가총동원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여기서 말하는 국가는 바로 ‘일본’이다. 따라서 일제강점기 ‘반국가’라는 표현은 독립운동가들을 향한 것이었다. “조선인은 전연 조선인인 것을 잊어야 한다. 아주 피와 살과 뼈가 일본인이 되어버려야 한다”던 춘원 이광수와 같이 생각하는 이들과 철저히 구별하기 위한 단어였다. 때문에 ‘반국가’는 독립운동가들에게 훈장과도 같은 표현이었다.일본은 1937년 중일전쟁을 시작하며 국가총동원 체제를 본격화했다. 1938년엔 일본 열도와 한반도 등 식민지에서 물자를 최대한 많이 수탈하기 위해 ‘국가총동원법’까지 만들었다. 노동력, 물자, 자금, 시설, 사업, 물가, 출판 등을 통제해 일본 군부의 뜻대로 일사불란하게 사회가 움직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일제의 이런 반공 정책에 협력한 조선인 경찰과 군인들도 많았다. 독립운동가들을 붙잡아 고문한 친일 경찰과 일본군, 관동군 등으로 복무하며 무장활동을 벌인 독립운동가들을 소탕하는데 가담했던 친일 군인들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일제강점기 반민족 행위에 앞장섰지만, 1945년 일본이 패망한 이후 미 군정에 의해 ‘반공’을 매개로 군인과 경찰로 다시 일하게 되었다. 일제시대 반민족 행위는 지우고, 자신들을 ‘반공투사’이자, 뉴라이트 세력이 주장하는 1948년 ‘대한민국 건국’의 주역으로 포장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입장에선 ‘반국가세력’일 수밖에 없었던 그들이 아이러니하게도 해방 이후 권력을 잡고 과거 독립운동에 가담했던 이들을 향해 ‘반국가세력’이라고 공격하는 상황이 벌어졌다.해방 이후 반공을 활용해 신분을 세탁한 그들은 이승만 정권 시절부터 지금까지 일제가 자주 쓰던 반국가세력이란 표현을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하고 있다.
1961년 7월 3일엔 ‘반국가행위의 규제’를 담은 군사혁명위 포고를 기초로 반공법을 제정했다. “반공체제를 강화하여 반국가단체를 이롭게 하는 자나 이들에 대해서 협조하는 자 등을 일반법보다 무겁게 처벌하여 국가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공산계열의 활동을 봉쇄한다”는 것이 이 법의 핵심 내용이었다. 반공법은 반국가단체에 가입 권유,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의 활동에 대한 찬양‧고무‧동조, 이적단체의 구성‧가입, 이적표현물의 제작, 반국가단체에 편의 제공과 ‘불고지’ 등 매우 포괄적인 규제 내용을 담았다. 국가보안법과 겹친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박정희 정권은 국가보안법만으로는 대한민국의 안전을 보장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강행했다.반공법의 별칭은 ‘막걸리 반공법’이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걸려들 수 있는 법이었기 때문이다.
통일사회당 대표였던 김철 씨도 반국가 낙인을 피하지 못했다. 김철 씨는 윤석열 대통령이 임명한 김한길 국민통합위원장의 아버지다. 김철 씨는 1970년 통일사회당을 만들고 당대표로 선출된 뒤 중립화 평화통일안을 내세우면서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다. 그는 1971년 “잠정적으로 남북이 다 같이 유엔에 가입해야 한다” “북한정권의 현실적인 통치형태의 존재를 인정하여 북괴라 부르는 대신 북한정권이라고 호칭해야 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의 이런 주장이 반국가단체인 북한을 이롭게 했다며 구속됐다. 그리고, 재판을 통해 징역 1년, 자격정지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1979년 12·12 군사반란과 1980년 광주 학살을 거쳐 정권을 잡은 전두환도 박정희의 수법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전두환 집권 시기인 1980년부터 1987년까지 국가보안법 관련 통계를 살펴보면 박정희 집권 시기와 마찬가지로 정권의 위기마다 구속자가 급증했다.
계엄사령부의 수사발표와 함께 언론과 방송도 거들고 나섰다. 김대중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씌우기 위한 특집 보도가 이어진 것이다. “선동·권모술수로 얼룩진 「위선의 화신」 김대중을 벗긴다” 등 그를 좌익 공산주의자이며 북괴를 도와 반국가 활동에 나선 인물이자 각종 비위를 일삼아 온 믿을 수 없는 인물로 묘사했다. 거대 여당 민자당의 행보는 순탄하지 않았다. 당시 유명 드라마 제목을 따 ‘한지붕 세가족’이라고 불릴 정도로 계파간 갈등이 심했다. 민자당 창당 직후 벌어진 4월 재보궐선거에서 텃밭인 대구에서 겨우 과반을 넘겼고, 충북 진천·음성에선 3당 합당에 동참하지 않은 민주당 계 정당인 이른바 ‘꼬마민주당’에게 의석을 넘겨주는 등 참패했다. 이후 내부 갈등을 더욱 커져만 갔고, 이런 민자당의 위기 속에서 노태우 정권은 대규모 조직사건을 발표했다.1990년 10월 30일 국가안전기획부는 기자회견을 열고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을 반국가단체라고 주장했다. 노태우 정부 출범 이후 운동단체가 반국가단체로 지목된 것은 사노맹이 처음이었다. 안기부는 사노맹이 전국의 노동현장과 대학가 등지에서 노동투쟁 폭력시위를 배후조종해온 반국가단체라며 조직원 1백50여 명을 수배 중이며 조직체계도가 수록된 워드프로세서 및 컴퓨터디스켓을 압수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다 1994년 7월 8일 북한의 김일성 주석이 사망하면서 정국은 급변했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김일성 주석과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었다. 당시 정상회담 상대인 김 주석이 사망한 만큼 조문을 통해 남북관계 개선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야당 등을 중심으로 제기됐다. 이부영 민주당 의원은 7월 11일 국회 외무통일위원회에서 “북한을 협상의 상대로 본다면, 북한 권력층이 문제가 아니라 북한 주민의 심리적 상태를 고려해 조문단을 파견할 의사가 있는가”라고 질의하기도 했다.하지만, 야당의 김일성 조문 관련 질의를 빌미로 당시 여당이던 민자당과 보수언론은 조문이 곧 ‘김일성주의 찬양’이라고 주장하면서 조문 논쟁은 색깔론 논쟁이 됐다. 대검 공안부는 “김일성 추도행위를 벌일 경우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엄단할 방침”이라며 엄포를 놓았다.
한나라당을 비롯한 보수세력의 공세는 거셌다. 노무현 대통령이 10월 13일 국회 시정연설을 통해 송두율 교수 처리문제에 대해 ‘여유와 포용력’을 강조하자 박진 한나라당 대변인은 “대통령이 국기문란 행위에 대해 사실상 포용하자는 편향된 사고를 보이고 수사 중인 사건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권한 남용이자 자유민주주의 기본질서를 훼손하는 것”이라며 “노 대통령식으로 적대적 행위를 옹호하면 애국적 행동은 반국가적 행위가 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 대변인은 이어 “국정 최고책임자가 실정법인 국가보안법을 일종의 악법이라는 식으로 인식, 대통령이 남북관계에서도 경계인적 사고를 갖고 있는 게 아닌가 우려된다”며 노 대통령을 향해서도 이념 공세를 펼쳤다.이러한 이념 공세는 효과를 거뒀다. 송두율 교수의 귀국을 추진했던 참여정부와 진보진영 인사들도 당황하기 시작했다.
결국, 9월 4일 국회 본회의가 열리고, 찬성 258, 반대 14로 ‘이석기 의원 체포동의안’은 가결됐다. 민주당은 물론 한때 같은 당에 있었던 정의당마저 동조했다. 이후 국정원은 이 의원에 대한 구속영장을 전격 집행했다. 6일 정부는 ‘위헌정당 TF’를 구성했고, 새누리당은 이 의원 제명안을 제출했다.이후 재판과정에선 당시 언론 보도를 통해 흘러나온 내용 대부분이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다. 통합진보당에 호전적 낙인을 찍었던 근거가 된 녹취록은 “구체적으로 준비하자”를 “전쟁을 준비하자”로 조작하는 등 수백 곳 넘게 오류가 있었음이 밝혀졌다. 내란음모를 실행한 조직으로 지목받은 이른바 ‘RO’는 재판과정에서 실체가 없음이 드러났다. 그럼에도 대법원은 2015년 1월 22일 내란음모 혐의는 무죄로 판결했지만 ‘내란선동’과 ‘국가보안법 위반’은 ‘유죄’로 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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