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 싱잉 좀 하는 60대 언니, 박영순 마을공동체 물푸레재즈싱잉 여성해방 브라보마이라이프 디바야누스 배현명 기자
일요일 저녁. 압구정역이 붐빈다. 삼삼오오 몰려든 젊은이들. 그 경쾌한 무리 속에 유독 영순 언니의 표정이 비장하다. 3번 출구를 빠져나온 그는 익숙한 듯 재즈 클럽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지금 그의 마음은 온통 가방에 든 재즈 악보를 향해 있다. 도전과 떨림이 청춘의 일이라면 영순 언니는 이 순간 그 어떤 젊은이보다 더 청춘이다. 재즈가 좋아 일요일 밤 클럽을 찾은 관객들 앞에서, 내로라하는 재즈 세션들과 호흡을 맞춰 노래를 불러야 한다. 심장이 두근댄다. 이럴 때 필요한 건 화끈하고도 경쾌한 자기 암시다.영순 언니는 오목조목한 이목구비가 풍성한 회색 머리칼의 숏컷과 빈틈없이 어울린다. 60대를 훌쩍 넘었지만, 그에겐 규칙적인 생활 습관을 고수해 온 사람의 맵시, 흐트러짐 없는 일상을 살아온 사람 특유의 반듯한 몸가짐이 있다. 안정된 중년기를 누릴 것만 같은 그가 고난의 역사를 자청하며 매주 재즈 클럽 무대에 오르는 이유는 뭘까.영순 언니는 초등교사였다.
그렇게 영순 언니의 삶은 사람에서 사람으로 이어졌다. 그가 자리 잡은 마을은 합창, 뜨개, 요가, 영문학 독해, 꽃꽂이 수업과 같이 여성들이 중심이 되어 서로의 재능을 나누고 배우는 일이 일상적으로 일어났다. 동네에 건강한 공동체가 단단히 뿌리내리고 있다는 것은 좋은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다는 방증이다. '틀을 깨는 뭔가가 있다'란 말이 영순 언니의 가슴을 흔들었다. 작은 조약돌이 퐁당 던져진 곳에 동심원이 요동쳤다. 자신의 주변을 둘러싼 기반이 흔들리지 않도록 견고한 틀을 쌓고 애지중지 지키며 살아왔는데, 그 틀이 깨진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돌연 궁금해졌다. 그 길로 '물푸레 재즈 싱잉 수업'을 신청했다.
하지만, 인간 말로는 스스로 그 벽을 허물었다. 그리고 누구나 닿을 수 있는 재즈 싱잉 유니버스를 만들어 마을 사람들과 음악을 나누고 있던 것이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물푸레 재즈 싱잉 수업'도 벌써 10년째 이어지고 있었다. 스승 말로는 그야말로 틀을 깨는 삶의 본보기였다.위대한 영혼은 전염성이 강하다. 영순 언니의 인생은 서서히 스승 말로가 친절하게 안내하는 그 어딘가로 고개를 틀고 있었다. 그 여정은 익숙한 길 위에 단순히 재즈 싱잉을 더하는 정도가 아니라, 생의 풍경을 통째로 바꾸는 일에 가까웠다. 자주 쓰는 말도 바뀌었다."꼭 그렇게 해야 해?"라고 저항하고,"이렇게 해보면 좋을 것 같은데?"라며 진보했다. 재즈는 결코 주어진 악보대로 불리지 않았다.
그는 첫 보컬 잼 데이 무대 후 잔뜩 주눅이 들었다. 열심히 재즈 싱잉 수업을 들었고 같은 곡을 수십 번을 넘게 연습했는데, 겨우 그 정도 실력밖에 안 된다는 사실에 좌절했다. 적잖은 나이에 남들 앞에서 뭐 하는 건지 무안하고 창피한 마음이 들었고, 출중한 프로 세션들이 아마추어인 자신을 위해 재능을 낭비했다는 미안함마저 들었다. 왜 이 험난한 도전이 계속돼야 하는지 스스로 이유를 찾고 싶었다.
United States Latest News, United States Headlines
Similar News:You can also read news stories similar to this one that we have collected from other news sources.
윤 대통령 지지율 34%... 20대 부정평가는 큰 폭 상승[한국갤럽] 60대 긍정평가 7%p 상승했지만, 20대 부정평가는 10%p 올라
Read more »
60대와 70대 정치의식은 다르다…내달부터 여론조사 구분해야60대 유권자 17.1%, 70대 이상 유권자 14%
Read more »
대통령의 교묘한 거짓말, 보수당에게 공격 받는 팩트체크대통령의 교묘한 거짓말, 보수당에게 공격 받는 팩트체크 팩트체크 존그린버그 IFCN 폴리티팩트 사실검증 곽우신 기자
Read more »
줄어드는 청년창업…자영업이 늙어간다60세 이상 비중 10년째 증가유행에 민감한 20~30대 감소자영업의 역동성 저하 우려 60대 이상 자...
Read more »
'아이들은 무슨 죄?' 자녀 생명, 부모 것 아냐[앵커]얼마 전 울산에서 40대 엄마와 10대 아들 두 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만어떤 이유에서든 부모가 자녀를 살해하고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례는 있...
Read more »
'아이들은 무슨 죄?' 자녀 생명, 부모 것 아냐[앵커]얼마 전 울산에서 40대 엄마와 10대 아들 두 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만어떤 이유에서든 부모가 자녀를 살해하고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례는 있...
Read mor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