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건 | 옥바라지선교센터 활동가 맑게 끓여낸 감자국이 좋았다. 감자 두세알에 대파 조금, 고추는 홍고추를 고명으로 살짝. 계란 풀어 넣는 조리법도 있지만, 나는 후추만 약간 뿌린 것이 깔끔하니 맛있다. 단맛을 내고 싶으면 양파를 잘
맑게 끓여낸 감자국이 좋았다. 감자 두세알에 대파 조금, 고추는 홍고추를 고명으로 살짝. 계란 풀어 넣는 조리법도 있지만, 나는 후추만 약간 뿌린 것이 깔끔하니 맛있다. 단맛을 내고 싶으면 양파를 잘게 썰어 넣자. 워낙 심심한 맛이니, 약간의 양파만으로도 단맛을 느낄 수 있다. 단순한 음식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감자라는 작물이 맛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감자’에 실패라는 게 존재할까. 물에 넣고 삶기만 해도, 어떤 음식이든 곁들이기만 해도 은은하게 받쳐주며 든든히 존재감을 뽐낸다.
강릉 살 적에는 겨울이면 옹심이를 먹었다. 서울 사람 시시때때로 칼국수 찾아먹듯, 동네에 한 개 쯤 있는 옹심이 집은 뻔질나게들 드나들었다. 감자전, 감자튀김, 휴게소 알감자, 감자샐러드까지. 감자는 쉬운 음식이다. 어디서든 잘 자라고, 자주 수확할 수 있으며, 보관도 쉬운 음식. 대항해시대에 유럽으로 건너와 배 곯는 이들의 주식이 되어 준. 동서고금 막론하고 가난한 이들의 식탁을 책임진 고마운 구황작물 감자.한반도에서는 여름이 제철이라더니, 요새 절절히 체감하고 있다. 교회와 사무실로 직접 농사지은 잘생긴 수미감자와 자색감자가 한 박스 오더니. 집으로는 얼굴만치 큼지막한 감자 한 박스, 두 입 거리 정도 되는 작은 감자가 또 한 박스다. 간식으로 몇 알 삶아 먹었다. 소금 찍어먹기도 귀찮은 여름 날씨, 물에 소금 간을 간간히 하고 푹 삶았다. 잔뜩 삶아두고 거실 식탁에 쌓아두고는 심심할 때 한 알씩 먹는다.
교회로 온 감자는 비닐봉다리에 수미감자 두 알, 자색 감자 한 알 넣어 손님들께 나눠준다. 맛은 봐야지 싶어 팍팍 담아주질 못하니 그것도 아직 반절이 남아있다. 밭 한 번 갈일 없는, 이제는 서울 사람이 된 내가 인심 좋은 농부 된 것 마냥 기분을 턱턱 내고 산다. 어딜 가도 든든히 자리를 지키는 감자 박스 덕분이다.철거민들의 농성장에서 예배를 준비하는데, 한 솥 가득 삶은 감자가 김 펄펄 내며 자리에 앉았다. 농성장 오가는 사람들 먹이라며 크게 한 솥을 삶아 주셨다. 여름의 농성장은 그 자체로 지치기 마련이다. 입맛은커녕 웃으며 인사할 기운조차 없다. 천막 속에 경직돼 있던 뜨거운 공기가 겉돌며 비처럼 내리는 땀방울 쓰다듬고 지나갈 뿐. 그런데도 김이 모락 모락 나는 감자에 모인 사람들 손이 간다. 껍질이 얇아 통째로 먹을 수 있는 감자다. 양손을 써가며 뜨거운 감자를 달래보지만 그저 시늉이다. 한 입 조심스레 베어물고 입에서 굴려가며 식힌다.
‘구황작물’은 이제 옛말이지만, 여전히 누군가의 삶에 마음 보태기에는 이만한 선물도 없다. 이 여름이면, 감자 상자들이 택배차에 실려 전국 곳곳을 누빈다. 그 중 어떤 것들은 농성장으로 온다. 구황작물 되어 지친 사람을 살린다. 감자 한 톨 날 일 없는 아스팔트 일색 도심에서 농성을 한다. 땅을 터전 삼아 사는 정직한 이들의 노동이 아스팔트 농성장에 덧대어지니, 조금 숨 쉴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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