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선 대학을 졸업했더라도, 부모라든지 하는 ‘줄기’가 좋아야 해요. 백두산 줄기라고 하면 내가 고급중학교를 안 나와도 좋은 직업을 잡을 수 있는 거죠.”
북한 청소년 절반 가량은 ‘성공한 삶이란 돈을 많이 버는 것’이라고 인식한다는 실태조사 결과가 29일 나왔다. 청소년 절반은 남한 드라마를 본 적이 있고, 남한 음악이나 춤을 따라해본 경험이 있었다. 북한 정부가 운영하는 ‘소년단’이나 ‘청년동맹’ 활동에 대해선 부정적이었다.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은 북한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북한이탈주민 138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7월11일부터 22일까지 진행한 실태조사 결과를 이날 발표했다. 연구원은 통일을 대비해 북한 청소년들의 일상생활과 청소년정책을 파악하고, 남북 청소년의 교류·협력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조사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북한 청소년들은 부모의 출신 성분이나 경제력에 인생이 좌지우지된다고 인식했다. 응답자들은 ‘진로·직업 선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부모의 출신성분’을 꼽았다. ‘집안의 경제력’ ‘부모의 정치적 지위’ 등 순이었다. ‘성공한 인생’에 대해선 ‘돈을 많이 버는 것’이라는 응답이 47.1%로 가장 많았다. ‘국가에서 필요한 인재가 되는 것’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뒤를 이었다.사교육 경험도 경제사정에 따라 극명하게 갈렸다. 사교육을 받은 경험이 없는 응답자 60.8%는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사교육을 받지 못했다’고 답했다. 반면 사교육을 받은 경험이 있는 응답자는 대부분 경제수준이 ‘상’이었다. 사교육 과목으로는 ‘음악’이 가장 높았고 ‘체육’, ‘교과목’, ‘외국어’, ‘미술’, ‘무용’ 순이었다.
북한 청소년이 의무가입해야 하는 ‘소년단’과 ‘청년동맹’ 활동에는 부정적인 인식이 많았다. ‘소년단 활동이 도움이 됐다’는 응답은 7.2%, ‘청년동맹 활동이 도움이 됐다’는 응답은 10.1%에 그쳤다. 소년단·청년동맹에서 자신의 잘못과 타인의 잘못을 공개 비판하는 ‘자아비판·호상비판’이 도움이 됐다는 응답도 7.2%에 그쳤다. ‘자아비판·호상비판 때문에 정서적 어려움을 겪은 경험이 있다’는 응답은 48.6%로 나타났다.북한 청소년들은 처벌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남한 드라마와 음악, 패션을 즐겼다. 응답자 49.2%는 ‘남한 드라마나 방송을 시청한 적 있다’고 답했다. ‘남한 드라마·방송 시청으로 인해 학교 내에서 처벌받는 것을 본 경험이 있다’는 응답이 40.6%로 적지 않았지만 관심은 꺼지지 않았다.심층면접에 참가한 A씨는 “특히 젊은 친구들은 자본주의에 대한 호기심이 굉장히 많다.
A씨는 “한국 드라마나 음악을 엄격하게 통제하기는 하는데 사람들이 USB나 CD 형태로 몰래 많이 본다”며 “한국 드라마를 보다가 걸리면 수용소에 끌려가지만 ‘백’이 있는 사람들은 괜찮다”고 했다.응답자들은 김정은 시대 이후 단속이 전보다 엄해졌다고 했다. 30대 C씨는 “처음으로 한국 영화를 본 게 중학교 2학년 때였고, 부모님 보니까 그냥 봤다”며 “김정일 때는 단속을 심하게 안 해서 낮에도 문을 열어놓고 봤는데, 김정은 시대부터 법이 만들어지고 통제가 심해졌다”고 했다. 다만 청소년기 TV 시청 경험은 경제력에 따라 갈렸다. 청소년기에 TV를 본 적 있다는 응답은 39.1%에 그쳤다. 경제수준 ‘상’에서 77.8%, ‘중’에서 61.1%인 반면 ‘중하’는 31.4%, ‘하’는 24.1%에 그쳤다.연구진은 “북한 청소년들은 북한 청소년정책에 대해 적극적인 참여기회와 첨단과학기술 인력 개발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며 “반면 엘리트 중심 정책으로 인한 일반청소년들의 소외와 자존감 저하, 비자발적 동원에 대한 반발, 통제와 단속 등에는 부정적”이라고 했다. 이어 “남·북청소년 교류 및 정책 개발 사업이 단발적인 사업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종합적인 계획 속에서 지속적으로 추진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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