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성의 히,스토리] 검사 출신 국가보훈부 장관이 촉발한 매우 희한한 공안정국
숱한 공안정국이 있었지만, 이런 공안정국은 이색적이다. 이미 돌아가신 분을 대상으로, 그것도 항일 독립전쟁의 명장을 상대로 '빨갱이 아니었나?', '소련까지는 왜 갔나?'라고 문초하고 있다.
이번 일이 희한한 사례에 속한다는 점은 유사한 상황에 처했던 박정희 정권과의 비교로도 알 수 있다. 박 정권이 굴욕적인 한일기본조약 및 부속 협정을 강행한 1965년 전후에도 한미일 군사동맹의 성사 가능성이 낙관적으로 전망되고 있었다. 박 정권은 정반대 접근법을 선택했다. 비슷한 상황에 놓인 박 정권은 독립운동가 동상을 없애는 게 아니라 요란스럽게 세우는 방법을 채택했다. 서울 광화문광장에 충무공 이순신 동상이 우뚝 서게 된 것도 그 때문이다.한일협정에 대한 국민적 저항은 1964년 초반부터 격렬했다. 5·16 쿠데타 2년 반 뒤인 1963년 12월 17일에 외형상 민간정부로 출범한 박 정권이 1964년 1월부터 한일협정 타결을 서두른 결과다. 이 때문에 3월 24일에는 약 8만 명이 한일회담 반대 시위 현장에 뛰어나왔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당시의 국민들도 굴욕적인 한일관계를 반대했다.
애국선열들이 서 있거나 앉아 있는 모습을 형상화한 석고상들이 서울 남대문에서 경복궁 입구까지 세워졌다. 이순신·안중근·손병희·김구 외에도 최무선·권율·사명당·최익현·민영환·전봉준·손병희·이준·안창호·윤봉길·이강년·허위·김좌진·이상재의 석고상도 건립됐다. 석고상 37개 중 18개가 반일 코드와 맞닿았던 것이다. 제1탄은 이순신 동상이었다. 1968년 4월 27일 자 는"충무공 이순신 장군 동상 제막식이 착공 7개월 만인 27일 상오 10시 세종로 네거리 녹지대에서 박정희 대통령을 비롯한 김종필 당의장, 3부 요인과 수많은 시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성대히 거행됐다"고 보도했다.
박 정권이 석고상과 동상을 건립한 표면적 목적은 애국심 고양이었다. 석고상 건립 의도와 관련해 1964년 4월 25일 자 는"국사편찬위원회에서 선정한 37인은 을지문덕·왕건·이율곡·이순신·김정희·안창호 등 조국을 지켰거나 빛낸 이들"이라고 전했다. 나라를 지켰거나 빛낸 인물들을 선정해달라고 박 정권이 국사편찬위원회에 요청했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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