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과정에선 김 후보의 수도 이전 공약을 매우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는데, 박정희 정부는 왜 6년 뒤에 김대중 후보의 수도 이전 주장과 유사한 구상(백지계획)을 꺼냈을까. 1971년 4월 3일 오후 대전역 광장 유세에서 김대중 당시 신민당 대선후보는 '집권 후 대전을 행정부수도로 만들겠다'며 '대전을 행정부수도로 만들겠다는 건 1969년 대전에서 이미 발표했고, 안보와 국토 균형 개발, 인구 분산을 위해 불가피하다'며 구체적인 수도 이전 계획을 밝혔다.
충청권 행정수도 건설 구상은 반세기를 이어온 해묵은 숙제다. 1977년 박정희 정부 ‘ 백지계획 ’과 2003년 노무현 정부의 행정수도 건설을 통해 조금 구체화했지만, 여전히 요원한 목표다. 이재명 대통령도 대선 당시 “국회 본원과 대통령 집무실의 세종시 완전 이전 추진”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하지만 당장 이뤄질 것으로 보이는 건 ‘남진’이 아니라 용산 대통령실을 청와대로 옮기는 ‘북진’이다.
도시문헌학자 김시덕 박사는 “수도 이전 논의를 보다 입체적으로 파악하려면 박정희·노무현 정부 이전에 드러난 여러 전철을 잘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박사의 주장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수도 이전 논의는 대통령에서 시작해 ‘아래’로 내려온 ‘하향식’ 어젠다가 아니라 지역 여론에서 발원한 ‘상향식’ 어젠다였다는 점이다. 둘째, 박정희 대통령의 ‘백지계획’ 공표 6년 전인 1971년 김대중 당시 신민당 대선후보가 ‘대전 행정부수도론’을 먼저 꺼냈다는 점이다. 김대중 후보의 ‘대전 행정부수도론’은 박정희 ‘백지계획’과 구체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었을까. 또 대전에선 어떤 이유로 박정희 ‘백지계획’에 한참 앞서서 수도 이전을 요구했을까. 김 박사는 “대전에서 시작한 수도 이전 논의와 김대중의 행정부수도론은 무관한 게 아니다”고 했다. 박정희 정부는 김대중 후보의 수도 이전 공약을 익히 알고 있었다. 선거 과정에선 김 후보의 수도 이전 공약을 매우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는데, 박정희 정부는 왜 6년 뒤에 김대중 후보의 수도 이전 주장과 유사한 구상을 꺼냈을까. 노무현 정부의 행정수도는 ‘정파를 초월한 박정희 프로젝트의 계승’이라는 평가도 받는다. 그렇다면 노무현 정부가 세운 현재의 세종시는 박정희 정부가 ‘백지계획’에서 설계한 행정수도와 어떤 유사성을 가질까. 만약 노무현과 박정희의 수도 이전이 연속성을 갖는다면, 김대중의 행정부수도론은 노무현 정부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박 대통령의 ‘백지계획’은 ‘임시’라는 딱지가 붙었지만, 실상 완전한 수도 이전 계획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매우 구체적인 기준을 갖고 수도의 입지·기능·형태를 설계했다. 김 박사는 “구체적인 입지 선정 기준을 보면 박 전 대통령은 사실상 통일을 포기한 거로 보인다”고 했다.4. “박정희의 수도 이전, 사실상 통일 포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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