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방학을 맞아 서울 할아버지댁으로 향하던 한일영씨는 영문도 모른 채 경찰에 붙잡혔다. 한씨가 “경기도 가평국민학교 학생”이라고 설...
1971년 방학을 맞아 서울 할아버지댁으로 향하던 한일영씨는 영문도 모른 채 경찰에 붙잡혔다. 한씨가 “경기도 가평국민학교 학생”이라고 설명했지만 경찰은 믿지 못하겠다며 그를 파출소로 끌고 간 뒤 서울시립아동보호소로 보냈다. 한창 배울 나이였던 한씨는 그곳에서 강제노동과 폭력에 시달리다 선감학원으로 보내졌다. 한씨는 “국가로 인해 삶의 실타래가 엉켰다”고 말했다.
서울시립아동보호소에 강제수용된 뒤 인권침해를 겪은 피해자들이 국가와 서울시를 상대로 국가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 4월22일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서울시립아동보호소에서 일어난 인권침해 피해를 인정한 뒤 국가를 상대로 제기되는 첫 소송이다.23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서울 서초구 민변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씨 등 피해자·유족 10명을 대리해 서울중앙지법에 소송을 냈다고 밝혔다. 이들은 국가와 서울시에 수용 기간 1년당 1억2000만원의 위자료와 법정이자를 지급하고 공식 사과할 것을 요구했다. 서울시립아동보호소는 1958년 서울시가 설립·운영한 시설로 ‘부랑아 보호’라는 명목 아래 7~13세 아동들을 강제로 수용해 선감학원 등으로 보내는 역할을 했다. 진실화해위에 따르면 1970~80년대 이곳에는 약 12만명이 수용됐고 과밀수용·상습폭행·강제노역·보호자 단절 등 심각한 인권침해가 자행됐다. 아동들은 음식이 부족해 벌레를 잡아먹었고 장티푸스·결핵 등에 걸려도 치료받지 못했다. 그곳을 벗어난 뒤에도 가족과 평생 연락이 끊기거나 폭력의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았다. 회견에 참석한 피해자 김모씨는 “그때 벽에 내던져져 생긴 상처”라며 코 옆 흉터를 가리켰다. 신수경 변호사는 “이 사건은 헌법·아동복리법·경찰관 직무집행법 등 국내 법령과 아동권리 협약 등 국제 기준을 위반한 행위”라며 “피해자들은 자신들이 왜 가족과 떨어지게 됐는지 설명받지 못한 채 가혹한 폭력에 방치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시 아동이었던 수용자들이 커서도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등 영향력을 따졌을 때 불법성과 손해가 높게 판단돼야 한다”고 말했다.이번 소송에는 진실화해위가 피해를 인정한 이들만 참여했다. 대리인단의 이동준 변호사는 “이번 소송은 일부 피해자들의 사건일 뿐이며 더 많은 피해자들에 대한 진상규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피해자 송준영씨는 “서울시립아동보호소를 거쳐 고아원에서 학대를 당했다”며 “진실화해위 3기가 빨리 출범해 더 많은 피해자들이 사과받을 수 있길 바란다”고 했다. 송씨는 아직 진실화해위 피해 인정을 받지 못해 이번 소송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서울시는 한씨 등 일부 피해자에게 개인적으로 사과문을 보냈지만 공식 사과는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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