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다발보다는, 책임질 수 있는 화분 선물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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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풍성한 꽃을 피운 채 처음 만났던 수국은 두 번의 월동 뒤에 다섯 송이나 푸른 잎이 가득한 꽃을 피워냈고, 그중 두 송이는 지금도 여전히 파란 물이 드는 중이다. ✍🏻안희제(작가)

2년 전 가을, 부모님은 극장에 수국 화분을 들고 나타났다. 당시 나는 아픈 몸들이 함께 만드는 시민연극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에 시민 배우로 참가하고 있었고, 그날은 연극 이틀 중 첫날이었다. 다른 배우들이 꽃다발을 받을 때, 나는 외목대로 잘 다듬어진 수국 한 송이가 푸른 꽃잎을 가득 피워낸 화분 하나를 품에 안았다. 꽃이 지면 우선 꽃대를 잘라줘야 한다기에 꽃대를 잘라준 이후 수국 화분에는 오랫동안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아래로 갈수록 좁아지는 익숙한 형태의 주황색 토분에서 수국은 조용히 잠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앙상한 채로 겨울을 나는 담쟁이와도 함께 살고 있기에, 반응이 없어도 우리는 꾸준히 수국에 물을 주고, 흙을 만졌다. 그리고 올해 봄, 그 수국이 다시 꽃을 피웠다. 보는 사람마다 배추인지 수국인지 헷갈릴 만큼 둥글게 말린 겹겹의 단단한 잎들이 줄기에서 나오더니, 그 사이에서 새로운 가지가 돋아났다. 말린 잎들은 점차 펴졌고, 어떤 것은 내 손바닥만큼 커졌다. 여전히 빳빳한 잎들이 감싼 곳에서 작은 꽃봉오리들이 가득 뭉쳐 나오기 시작했다. 잎이 배추처럼 생겼던 것처럼, 꽃봉오리도 전혀 꽃봉오리처럼 보이지 않았다. 아주 작은 연두색의 봉오리들은 꽃보다 오히려 작은 완두콩 같기도 했다. 이 완두콩처럼 생긴 봉오리들은 아주 느리게 펼쳐진 뒤에도 꽃처럼 보이지 않았고, 한참 시간이 더 지나고서야 비로소 꽃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으며, 형태를 갖춘 뒤에야 꽃잎은 푸르게 물들었다. 이 과정에서 내 시선은 화분에 닿았다. 토분이 숨을 쉰다는 이야기가 한편으로 사실이었던 모양이다. 수국이 자라는 토분의 표면이 지저분해서 자세히 들여다보니, 수분이 화분 안팎을 넘나들며 흔적을 남기고 있는 듯했다. 주황색 단색의 토분에는 물길이 진하게 났다. 물길이 뚫리며 어디선가 새어 나온 것인지, 흰색 가루들이 붙어 있는 부분도 있었다. 화분이 지저분해진 건 사실이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그 가루들을 깨끗이 닦아내고 싶지 않았다. 수국이 겨울을 두 번 나야 꽃을 피운다는 이야기는 일단 우리 수국에 대해서만은 맞았다. 하나의 풍성한 꽃을 피운 채 처음 만났던 수국은 두 번의 월동 뒤에 다섯 송이나 푸른 잎이 가득한 꽃을 피워냈고, 그중 두 송이는 지금도 여전히 파란 물이 드는 중이다. 오랜 시간을 들여 파랗게 물들인 꽃잎들은 그 시간만큼이나 오래 빛깔을 자랑하고 있다. 물을 참 많이도 먹는, 할머니가 놀러 오실 때마다 한 번씩 쓰다듬으시는 이 녀석은 요즘 나의 아침이다. 2년에 걸쳐 수국이 꽃을 피우는 동안, 수국과 나눈 교류는 파란 꽃잎과 화분의 진한 물길로 남았다. 수국의 보금자리는 그 안팎의 경계가 점점 희미해지는 것만 같다. 화분을 양손으로 들면 기분 좋게 차가운 습기가 느껴진다. 손에는 물 먹은 화분의 부스러기가 묻는다. 수국꽃에 향기가 없는 대신, 우리 가족과의 상호작용 안에서 자신을 열어젖힌 토분이 젖은 흙의 향기를 풍긴다. 꽃다발이 선물하기 편한 이유는 책임지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 대가는 곧 시들어버리는 꽃을 지켜보는 일이다. 그러나 화분을 돌보는 책임은 2년을 묵어 이렇게 아름다운 아침으로 우리 앞에 찾아온다. 책임을 다할 때만 볼 수 있는 것들이 있다. 파란 꽃잎과 토분의 물길처럼. Tag #식물 #반려식물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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