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동대지진 학살 진상규명 위해 활동하는 '호센카(봉선화)' 회원들
나가사키에서 온 기무라씨도 필자도 추모비가 있는 위치를 몰라 주민들에게 묻고 또 물어 찾아간 곳은 도쿄에서 지바현으로 연결되는 '구요쯔기바시' 다리가 있는 '아라카와' 강변에 위치한 조그만 주택가 골목이다.
추도비 사진을 찍고 있는데 '호센카' 자료관에 있던 '니시자키'씨가 문을 열고 나와 추도비에 대한 설명과 함께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에 대한 자료사진을 보여주며 진상규명을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1923년 9월 1일 오전 11시 58분 44초, '간토' 지역 일대에는 리히터 지진계로 7.9의 강진이 지역 일대를 급습했다. 목조 주택이 대부분인 각 가정에서 점심을 준비하던 시간이었다. 화재는 곧바로 거대한 불기둥을 이뤘고 불꽃은 다시 불길을 낳아 56군데나 되는 불무더기가 도쿄를 덮쳐 나갔다. 거대한 불길과 하늘로 치솟는 검은 연기를 바라보며 무력감에 빠져들었다.관동대지진 당시 '스미다구'에서도 혼죠지역을 중심으로 대화재가 발생해 아라카와 강변에는 피난 나온 사람들로 넘쳐났다. 유언비어에 분노한 군인들은 기관총으로 조선인을 총살하였으며 경찰, 자경단도 살해 행위에 가담했다.
"희생자들을 추도하고 역사를 반성하여 민족의 차이로 배척한 마음들을 일깨워 새기고자 한다. 여러 민족이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는 일본 사회의 창조를 염원하며 여러 민간인들이 이 비를 세운다."니시자키씨가 생면부지의 조선인들을 위한 활동에 투신하게 된 것은 대학 4학년 시절이다. 1982년 아라카와 강변에 묻혀있는 조선인 희생자 유골을 발굴해보자는 선배의 제안을 듣고 참여하면서 부터다. 중학교 영어교사로 근무하다 퇴직한 그는 '호센카' 회원들과 함께 진상규명과 한국과 일본의 화해를 위해 노력하며 모금을 마련했고 회비 내는 회원이 500명 정도라고 한다.추도비 옆에는 봉선화가 심어져 있었다. 아직 제철이 아니어서인지 꽃이 피지 않았지만 홍난파가 작곡하고 김형준이 작사한 가곡 가 마음을 아프게했다. 관동대학살이 일어나고 두 해가 지났을 무렵 시인 김형준이 친구 홍난파가 1920년에 만든 바이올린 곡 를 듣고 시를 썼다. 그렇게 세상에 나온 가곡이 바로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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