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사름이 사는 법] 송강호 평화운동가
평화운동가 송강호 박사에게 처음 연락한 것은 지난 1월 중순이었다. 당시 그는 곧 인도네시아로 출국해 술라웨시섬의 부족 청년들을 만나 돛단배 만드는 일에 협력하고 2월 하순에 돌아올 것이라고 했다. 다시 귀국일에 맞춰 연락하자 이번에는 강원도 철원에 있는 국경선 평화학교에 가서 한·중·일 청년들을 만나는 일정이 있어 3월 초에나 제주로 돌아갈 예정이라고 했다. 결국 지난 5일 제주 강정마을의 한 허름한 컨테이너 건물을 어렵사리 찾아가 그를 만날 수 있었다.
처음엔 교회에서 그런 일을 하자고 했습니다만, 교회는 너무 관심이 없는 거예요. 저는 교회가 엄청난 인력과 재원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이런 자원들이 교회 안에서 소모되는 것이 안타까워 이걸 세계적인 문제들에 응답하는 데 활용하자고 교단에도 가서도 설득을 하고, 교계 어른들에게도 호소해 봤지만, 교회의 관심이나 방향은 너무도 달랐습니다.""아프리카 탄자니아의 한 난민 지역에 간 적이 있습니다. 그곳으로 약 5만 명의 난민이 넘어와서 의식주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유엔 직원이 10명뿐이었어요. 그나마 반은 자원봉사자였는데, 이분들이 정말 과로사로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이런 상황을 목도하면서 더 많은 젊은이들이 와서 전쟁 피해자들을 돕는 일을 했으면 좋겠다, 나라도 이 현장에서 일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지요.
저희가 활동하는 현장은 매우 위험한 곳이어서 평화운동가들이 죽거나 다칠 수 있습니다. 그럴 경우 남은 가족들을 돌보려면 핵 가정으로는 안 되겠다, 끈끈한 인간적인 관계가 형성되는 공간이 필요하겠다는 데에 생각이 미쳐 공동체 생활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는 일에 재정적으로 지원해 줄 사람들이 그리 많지는 않으리라 판단해 아주 적은 비용으로 사는 방법을 모색하게 됐고요. 한 예로 로힝야족의 경우 1970년대에도 난민들의 대규모 이주가 있었는데요. 당시 난민촌에서 태어난 사람 중에 성장해서 의사가 된 분들이 있습니다. 이분들은 국적 문제 등이 있어 방글라데시에서 정식으로 의사가 될 수 없거든요. 이들이 난민촌에서 의사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저희 개척자들이 돕고 있어요."
바로 그 무렵 제주가 '세계 평화의 섬'으로 선포됐다는 소식이 들려온 겁니다. 해외에서 듣는 정말 흐뭇한 소식이었습니다. 제가 아체나 아프가니스탄 카슈미르 이런 곳에서 전쟁 피해자들과 함께 지내다 보니까 전쟁으로 문제를 해결해서는 안 된다, 갈등이 생겼을 때 그냥 힘으로 제압하자는 건 미친 짓이다, 라는 생각이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었던 터에 제주도가 군대나 전쟁이 없는 평화의 섬이 되었으면 정말 좋겠다는 환상을 갖게 된 것이죠." 그러다가 2011년 4월 6일 제주의 영화평론가 양윤모 선생이 공사 감독에게 돌을 던지며 저항하는 사건이 있었고 이것이 발단돼 마을주민의 분노가 폭발하게 됐어요. 그때부터 해군기지 반대운동이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게 된 것입니다. 제가 그해 3월 8일 제주로 왔어요. 이곳에 싸우러 왔다기보다는 기도하러 온 겁니다. 해군기지 찬반으로 갈라진 마을주민들이 길거리에서 서로 싸우고, 삼촌과 조카가 쌍욕을 하면서 싸우는 살벌한 분위기에서 매일 아침 6시에 구럼비 바위에서 마을 공동체가 회복되고 주민들이 정의를 말하는 용기를 달라는 기도를 드린 것입니다."
2020년 3월 7일이 구럼비 폭파 8주년 되는 날이었습니다. 저는 예전에 늘 기도했던 것처럼 구럼비에서 기도하게 해달라고 해군기지에 정식으로 방문 요청을 했는데, 거절을 하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그러면 그냥 들어가겠다, 하고 펜스를 절단하고 들어간 것이에요. 이 사건으로 2년 형을 받고 수감됐다가 1년 9개월 만에 가석방됐습니다."요즘 강정은 어떤 모습일까. 해군기지는 완공돼 군함들이 드나들고, 마을은 조용해 보인다. 인적도 드물다. 기지 진입로는 널찍한 아스팔트 길이 시원스레 깔려 있다. 한때 타올랐던 투쟁의 열기는 완전히 사라진 듯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직도 강정에는 해군기지를 반대하고 평화를 외치는 목소리가 살아 있다. 매일 아침 7시에 사람들이 모여 해군기지 앞에서 100배 절을 하고, 11시엔 강정 도로변에서 천막 미사가 열린다. 또 12시가 되면 기지 정문 앞에서 인간 띠 잇기 행사가 벌어진다. 모여드는 사람들 가운데는 외국인도 눈에 띈다.
"제가 이 프로젝트를 처음으로 공개한 것은 제주가 평화의 섬으로 선포된 지 8년째 되던 2013년 1월이었어요. 오키나와를 가보면 많은 섬에 군사기지가 들어서 있고 또 확장되고 있습니다. 대만도 최근 위험에 놓여 있어요. 지금 미국과 중국이 남중국해 등지에서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있는데, 만약에 미중이 전쟁을 벌인다면 제주는 반드시 휘말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제주나 오키나와의 군사기지를 없애는 일을 하자는 취지에서 '평화의 섬 연대'라는 걸 제안한 것이지요. 제주도와 오키나와 대만은 강대국에 의해 평화가 위협당했다는 역사적 공통점이 있습니다. 착취당하고, 군사시설 들어오고, 또 본국의 군대와 경찰에 의해서 매우 심각한 피해를 본 경험이 있는 곳이어서 이 지역 분들과 이야기해 보면 언어장벽을 넘어서 금방 화합이 되더라고요. 이 세 곳의 섬을 잇는 바다를 항해하면서 이 지역에 군사기지도 없고 군사훈련도 안 하는 평화의 바다, 평화의 섬을 만든다는 희망이 너무 요원해 보이지만 희망의 불씨는 살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2005년 노무현 대통령이 제주도를 '세계 평화의 섬'으로 선포한 이래 제주 시민사회에서는 이를 실현하기 위한 다양한 논의들이 전개돼 왔다. 그러나 그 취지와는 달리 논의는 겉돌고 실제로는 군사기지의 성격이 강화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부정적 전망이 끊이지 않고 있다. 송강호 박사가 바라는 제주의 미래상은 어떤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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