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대 황교안'에서 '이낙연 대 김종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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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당의 구심력 싸움에 민주당에서는 이낙연 위원장이 전면에 나서게 된 반면, 통합당에서는 황교안 대표가 뒤로 빠지는 국면이 됐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이번 선거는 사실상 ‘이낙연 선거’가 됐다”고 말했다.

한때 ‘선거의 여왕’으로 불리던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자신의 지역구인 대구 달성군의 선거 유세에서 한 말이다. 서둘러 전국 지원 유세를 떠나야 하는 만큼 지역구에는 얼굴만 비치고 지역 주민의 양해를 구하는 모습이었다. 이 이야기는 미래통합당 인사들이 선거 때마다 ‘지휘관’의 중요성을 거론하며 꺼내는 회고담이다. 통합당에서는 ‘선거 지휘관’으로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을 내세웠다.

2012년 19대 총선과 2016년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을 오가며 역전승을 이끌어냈던 ‘김종인 매직’을 기대한 것이다. 민주당에서는 차기 대권주자 1위인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상임선대위원장이 전면에 나섰다. 이 위원장은 예전의 박 전 대통령처럼 자신의 지역구뿐만 아니라 전국 지원 유세에도 뛰어다니고 있다. 본격적인 선거 운동에 들어가면서 이낙연 민주당 상임선대위원장과 김종인 통합당 총괄선대위원장은 양당 선거의 상징적인 인물이 됐다. 민주당에서는 이해찬 대표가 건강이 나빠져 한 차례 입원한 후 이낙연 위원장의 역할이 크게 늘어났다. 통합당은 김 위원장이 전면에 나서고 황교안 대표는 서울 종로 선거에 치중하고 있다. 이해찬 대표 대 황교안 대표의 대결로 가던 총선 구도가 4월 들어 이낙연 위원장 대 김종인 위원장으로 바뀐 것이다.지난 4월 2일 공식 선거 운동이 시작되면서 먼저 기선을 제압하고 나선 것은 통합당이었다. 김종인 위원장이 수도권 지역에 지원 유세를 나서면서 바람몰이를 시도했다. 여기에 유승민 의원도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공천 논란으로 한때 주춤했던 통합당이 기세를 올리던 시점이었다. 이른바 ‘김종인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는 예상도 나왔다. 하지만 황 대표의 말실수가 연이어 터지면서 상승 기세는 금방 가라앉았다. 황 대표는 ‘교회 내 코로나19 감염 거의 없음’, ‘n번방 호기심’, ‘키 작은 사람’ 등의 발언 실수를 했다. 통합당의 한 인사는 “그동안 수면 아래에 있던 황 대표의 선거지휘 능력이 막상 전투가 시작되면서 드러난 것”이라고 해석했다. 현장에서 뛰는 당 후보들의 불만이 터져나왔다. 지상욱 서울 중·성동을 후보는 4월 6일 서울 영등포 중앙당사에서 열린 당 선거대책위원회 회의에서 “우리가 열심히 새벽부터 뛰더라도 당 지도부에서 적절치 않은 발언이 나온다면 저희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황 대표의 잇따른 말실수 이후 김 위원장이 전국 선거를 맡고, 황 대표의 활동 영역은 서울 종로 지역구로 좁혀졌다. 하지만 김대호 서울 관악갑 후보와 차명진 경기 부천병 후보의 막말 파문이 연이어 터지면서 통합당은 곤혹스러운 국면에 처했다. 당 대표와 후보의 잇따른 구설로 ‘김종인 매직’은 사그라들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여기에다 당내 이견도 노출됐다. 황 대표가 ‘전 국민에 50만원 재난지원금 지급’을 제안하자, 유승민 의원이 ‘악성 포퓰리즘’이라며 반대했다. 2012년 새누리당에서 김종인 위원장과 비대위에서 함께 활동했던 이상돈 민생당 의원은 “지금 미래통합당 후보들의 면면을 보면 김 위원장이 평소에 추구하던 경제민주화와 스토리텔링이 안 맞아들어간다”면서 “김 위원장이 걸어온 길과 연결되지 않기 때문에 설득력을 잃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안일원 리서치뷰 대표는 “그동안 통합당이 문재인 정권 심판론을 내세우면서 반대에만 몰두해왔기 때문에 김 위원장을 영입해 중도층의 확장을 노린다는 것이 오히려 보수층 결집에는 역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종인 매직’은 무엇보다 말실수 앞에서 위력을 잃고 있다. 이 의원은 “김 위원장이 열심히 노력하지만 황 대표의 말실수 때문에 지금까지 ‘김종인 효과’는 백약이 무효”라고 말했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통합당으로서는 격차를 줄이고 보수층을 결집해야 하는데, 연이은 말실수로 판세를 뒤집을 기회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홍 소장은 “보수표가 통합당 지지표보다 더 많기 때문에 지금은 ‘샤이 보수’가 아니라 ‘샤이 미래통합당’이라고 봐야 한다”면서 “통합당은 보수표도 다 주워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일원 대표는 “통합당의 정권 심판론과 민주당의 코로나 극복론이 맞붙은 상황에서 정권 심판론이 제대로 먹히지 않고 있는 국면”이라면서 “중도층 외연 확장이라는 ‘김종인 효과’도 각 당 지지 흐름에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이낙연 민주당 상임선대위원장의 존재감은 더욱 커졌다. 이 위원장은 경기와 강원·부산·경남 등지의 지원 유세에 나섰다. 당내에서는 이 위원장에 대한 지원 유세 요청이 이어졌다. 종로 지역구의 비교적 안정적인 판세도 이 위원장에게는 지원 유세를 마음 놓고 떠날 수 있는 배경이 됐다. 통합당의 말실수가 잇따르면서 민주당으로서는 몇몇 실수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인 국면을 이어나갈 수 있게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민주당은 지역구 130석이라는 목표만 밝힐 뿐 투표일까지 ‘안전 모드’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당에서 ‘궂은일’이라고 할 수 있는 비례정당 문제를 이해찬 대표가 전적으로 떠맡았다”면서 “대규모 지원 유세 같은 경우 이 대표가 건강 때문에 전면에 나서기도 힘들지만, 사실상 차기 대권주자인 이 위원장의 자리를 깔아준 것”이라고 말했다. 궂은일은 이 대표가 맡고, 자리가 빛나는 일은 이 위원장이 맡은 역할론이 주효했다는 것이다.정치권에서는 총선 승패에서 차기 대권주자의 역할론에 주목하고 있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는 차기 대권주자였던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이 선거를 이끌어 승리했고, 2016년 20대 총선에서는 역시 차기 대권주자인 문재인 민주당 대표가 있었기에 승리가 가능했다는 것이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이번 총선에서는 결국 차기 대권주자인 이낙연 위원장과 황교안 대표의 기싸움이 총선의 승패를 가를 수 있다”면서 “이 위원장의 전면 등장으로 호남에서 민주당이 선전하게 됐고, 조국 전 장관 이슈가 뒤로 물러나고, 중도층이 민주당을 지지하는 기반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양당의 구심력 싸움에 민주당에서는 이 위원장이 전면에 나서게 된 반면, 통합당에서는 황 대표가 뒤로 빠지는 국면이 됐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이번 선거는 사실상 ‘이낙연 선거’가 됐다”고 말했다. 김종인 위원장과 황 대표의 역할 분담이 유권자들에게 잘 먹혀들지 않고 있다는 평도 나온다. 장성철 공감과논쟁 정책센터 소장은 “김종인 위원장은 메시지에 주력하는 정치인이지 대권후보가 아니다”라면서 “게다가 보수우파의 신망 있는 지도자가 아니기 때문에 결국 ‘선거용’이란 이미지를 지우기 힘들다”고 말했다. 장 소장은 “황 대표가 본인 선거도 처음이지만 선거지휘도 처음이기 때문에 초기에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다”면서 “황 대표가 공천도 마찬가지지만 선거 역시 모든 것을 책임지고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홍형식 소장은 “황 대표가 김종인 위원장을 데리고 온 것은 문재인 정부의 경제 심판이라는 이미지만 쓰려고 하는 것이지, 김 위원장을 차기 대권주자로 삼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홍 소장은 “이번 총선의 전체 승부는 ‘이낙연 위원장 대 김종인 위원장’의 대결이 아니라 결국 차기 대권주자인 ‘이낙연 위원장 대 황교안 대표’의 대결에서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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