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력 잃고 알게 된 세상] 착각에서 온 외로움... 둘을 구분하는 방법
뭔가 써질 듯 써질 듯, 자판 위 손가락들도 꼼지락꼼지락 당장이라도 두드릴 준비를 마쳤는데, 머릿속만 간질거릴 뿐 단 한 문장도 써지지 않는다. 벌써 한 시간째 이 꼴이다. 밥을 너무 많이 먹었나? 역시 집에서는 안 되는 건가? 별의별 핑계를 다 대보고, 음악을 들어볼까, 잠깐이라도 산책을 다녀올까 생각하면 여지없이 떠오르는 대가들의 경고,"글은 머리로도, 손으로도 쓰는 게 아니다. 궁둥이로 쓰는 거다".
온통 깜깜한 어둠 속, 이날따라 아랫집도, 윗집도 너무 조용했다. 오래된 아파트의 상징, 화장실 물 내려가는 소리조차 없었다. 거짓말처럼 깊은 산속 오두막에 와 있는 듯한 적막감이 느껴졌다. 분명 방금 옛날의 기억을 떠올렸을 때는 여전한 맘속 생채기를 건드린 것처럼 쓰렸었다. 그런데 지금의 외로움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뭔가 나를 채워주는 묘한 기분까지 들었다. 차를 한 모금 마시고 골똘히 생각해 봤다. 달라진 건 별로 없었다. 유전자 치료법이 나왔다고 하지만, 아직은 미미한 것이어서 내가 가진 망막색소변성증은 여전히 불치병이다. 객관적인 상황은 그때보다 지금이 더 좋지 못하다. 지금 내 수입은 훨씬 줄어 있었고, 어렴풋이 형체라도 볼 수 있었던 그때에 비해 지금은 빛조차 구별하기 어렵다. 그런데도 지금 느끼는 외로움과 그때 느꼈던 외로움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다르다.요즘 '외로움'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지구촌의 문제인 듯하다. 실제로 정치철학자 김만권의 을 보면 외로움은 이미 전 세계적인 문제로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외로움으로 고통받고 있다고 했다.
지난날, 나는, 나만 재밌는 것인지 몰라도 열 편이 넘는 단편 소설과 네 편의 장편 소설을 거침없이 써댔다. 밤을 새우기도 하고, 끼니를 거르기도 하면서. 그래도 마냥 즐거웠다. 그러다 문득 나도 독자를 가진 작가가 되고 싶었고, 그 꿈에 도전하면서 완전히 상황이 달라졌다. 즐겁기만 하던 글쓰기가 어렵고 힘들어졌고 내 글을 알아주는 독자 하나 없다는 외로움에 맘을 졸였다. 하지만 이 외로움은 나를 성숙하게 했고, 덕분에 사는 이야기 연재도 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글을 쓰면서 나는 외로움을 느낀 게 아니라 고독을 통해 조금이나마 성숙해진 것이다.사실 내가 과거에 겪은 외로움은 내 탓도 크다. 시력은 사라졌지만, 내 주위에 따뜻한 손길까지 사라진 적은 단 한 순간도 없었는데 내가 그것을 애써 외면했으니 말이다. 바보 같이 상황을 착각해서 느끼게 된 외로움이란 얘기다.
United States Latest News, United States Headlines
Similar News:You can also read news stories similar to this one that we have collected from other news sources.
'떨어질 줄 알았는데…' - 매일경제코스닥 하락 베팅 '빚투'개미들 예상밖 상승에 눈물
Read more »
‘전청조 사기공범 의혹’ 벗은 줄 알았는데…날벼락 남현희, 무슨일이검찰, 송파경찰서에 재수사 요청 ‘불송치’ 결정에 고소인 등 이의 신청
Read more »
“중국 알·테·쉬, 아주 칼을 간거였네”…싼 값에 뜬 줄 알았는데, 이런 전략이 [Books]알리쇼크 / 김숙희 지음 / 매경출판 펴냄
Read more »
평생 국악만 할 줄 알았는데···싱어송라이터로 돌아온 송소희경기민요 소리꾼 송소희는 11살 때 ‘창부타령’을 부르며 ‘국악 소녀’로 유명해졌다. 그 후 20년 넘게 여러 무대에서 민요를 불렀다. 그런데 아무리 노래를 해도 무언가 해소...
Read more »
‘나혼자 산다’ 주역은 70대 이상…대부분이 독거노인이였네1인 세대수 993만5600개 1인 가구 20%, 70대 이상
Read more »
[매경의 창] 저녁, 멜랑콜리 - 매일경제우울·고독 표현한 릴케의 시뭉크의 삽화와 절묘한 조화어두운 삶 예술로 승화 닮아저마다의 고독을 짊어진 우리상처·아픔 치유 통로 있어야
Read mor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