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목님'에 '쌔리라'까지... 이 팀 보려고 전국을 다 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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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심으로 말하는 프로야구] '아빠의 스포츠'에서 '나의 야구'가 되기까지... '언더독' NC를 응원하는 이유

폭염 속에서도 프로야구 올스타전 시즌은 돌아왔다. 장소는 대전 한화생명볼파크. 올해 개장한 한화 이글스의 신구장이다. 나는 아직 회복이 덜 된 나의 왼 발목을 본다. 내가 지난 4월, 발목 인대 파열을 경험한 곳도 '대전 한화생명볼파크'였다. 세 달 전 봤던 저 '쌔삥' 야구장의 위용이 눈에 선하다. 지금부터 쓰는 이야기는 프로야구 천만 관중 시대에 부쳐 인생 전반의 희로애락을 야구와 함께한 이들의 충직하고도 곡진한 사랑 얘기가 아니다.

사랑의 근력이 약한, 늘 회의하는 종자의 집착과 저항과 타협과 냉소가 공존하는 그런 얘기다. 일련의 보도들에서는 '먹고 마시며 노래하고 춤추는 문화가 2030 여성을 야구장으로 끌어들였다'고들 하는데, 나는 그중에 마시는 것 외엔 하지 않는다. 저작운동마저 경기 관람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하지 않고, '호로록' 아이스 커피만 마시며 마운드와 홈플레이트 근처를 노려보고 앉아 있는 사람이 '나'다.'모태신앙' 비슷하게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야구를 좋아했다는 고백이 많지만, 나는 아니다. 어려서 나에게 야구는 '아빠의 스포츠'였다. 푸른 피가 흐르는 삼성 라이온즈의 팬인 아빠는 주말이면 하루 종일 리모컨을 틀어쥐었고, 그 바람에 나도 자주 TV 속 '배영수'의 등을 쏘아 봤다. 아이돌 그룹인 신화, god의 팬으로 양분돼 있던 2000년대 초중반의 여중·여고에서, 나는 몇 안 되는 스포츠 스타의 팬이었지만 그마저도 야구는 아니었다. '특급 가드' 김승현이 노룩 패스로 상대의 허를 찌르는 대구 오리온스의 농구라든지, 시종일관 무표정한 에밀리아넨코 표도르가 자신의 얼굴보다 더 무정한 얼음 파운딩을 꽂아 넣는 프라이드FC를 좋아하던 내게 '공 하나 던지는 데 상하좌우 다 살피는' 야구는 무척이나 루즈했다. 게다가 졸린 눈을 하고서도 리모컨은 절대 놓지 않는 아빠 때문에, 좋아하려야 좋아할 수가 없었다. 축구, 농구, 배구 같은 다른 구기 종목과 달리 학교에서 배우거나 접할 기회도 없었다. 당시 여자애에게 허락된 야구란, 발야구가 전부였다. 훗날 대학생이 되어 가라데도 배웠건만, 야구는 기회가 없었다. 야구에 관한 오랜 편견을 깨는 데에는, 여러 '빌드업'이 있었다. 시작은 일간지의 영화 기자로 일하던 2020년, 영화 의 주연 배우 이주영과의 인터뷰였다. 영화에서 프로 진출을 꿈꾸는 천재 야구 소녀 주수인 역으로 분한 그는 말했다."수인이가 자기 꿈을 밀고 나가는 게 판타지로 보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프로무대로 간 여성 야구 선수가 지금까지 없다는 게 더욱 비현실적인 상황 아닌가요." 다음은 2022년 책 를 출간한 김입문 작가와의 인터뷰."야구는 다양한 사람에게서 다양한 능력을 요구해요. 멀리는 못 쳐도 재빠른 사람이 있고, 살이 쪄도 타격을 잘하는 사람이 있죠. 좀 느려도 되고, 덜 빨라도 괜찮아서 저도 함께 할 수 있고요." '그 루즈한 스포츠에 이런 매력이 있나?' 싶게 귀가 번쩍 뜨였다. 쐐기를 박은 것은 그 해부터 방영된 예능 프로그램 였다. 는 내가 몰랐던 야구의 경기 규칙부터 시작해서 여러 맥락들을 알려주었다. 무엇보다 당시 9년째 다니던 언론사를 나와, 기자 말고 다른 일을 하리라던 내게 주는 울림이 있었다. 당대를 주름잡던 선수들이 전만큼은 날렵하지 못한 몸으로, 까마득히 어린 후배들과 '찐텐'으로 격돌하는 모습이… "안 좋아한 줄 알았는데 너무 좋아하고 있었어요. 너무 좋아했구나, 야구를." 최강 몬스터즈의 투수 오주원이 남긴 소감이다. 언론사를 나와서도 2년째 프리랜서 기자로 사는 내가, 자주 되새긴 문장이다.야구에 매우 복잡다단한 경로를 거쳐 입문하게 된 것과 별개로, NC 다이노스라는 팀을 좋아하게 된 것은 '덕통사고'에 가깝다. 어느 사람이나, 팀을 좋아하게 되는 것은 그런 것이다. 논리적 귀결을 거쳐 내 머릿속 뉴런들의 다수결을 통해 합의에 도달하는, 그런 게 아니다. 좋아하면 끝을 봐야 하는 나의 성정상, 를 직관해야 했는데 티켓팅이 여의치 않았다. 그렇담 상대적으로 만만한 프로야구를 보러 가야겠다 싶었다. 경기 고양에 사는 나는 그나마 접근성이 나은 서울 잠실야구장을 가야겠다 마음 먹었고, 경남 창원 아니 진해 출신자로서 고향팀 경기를 보자 해서 NC와 LG의 경기를 티켓팅했다. 2023년 4월 18일 경기였고, 다름 아닌 혼자였다. '첫 끗발이 개끗발'이라는 건 지나친 폄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날의 끗발은 엄청 났다. 바람도 선선한 것이 야구 보기 딱 좋은 날씨에, 게이트에 들어서자마자 시야가 뻥 뚫리는 개방감이 나를 매혹시켰다. "쌔리라!"처럼 경상도 사투리로 응원 구호를 외치는 것도 너무 좋았다. 스무 살, 서울로 유학온 이래 사투리는 줄곧 감추는 것이라고 은연 중에 학습했던 나로서는, 내 고향의 말을 서울 한복판에서 내지르는 것에서 엄청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날 NC가 경기에서 졌다면, 이후 '야빠'가 되지는 않았으리라. 경기는 엎치락뒤치락 손에 땀을 쥐었다. 안타나 홈런보다도, 투수의 피칭과 주루, 수비 보는 재미를 좋아하는 내게 딱 걸맞는 경기이기도 했다. 당시 최다 도루를 기록 중이던 LG의 빠른 발들을, NC 포수 안중열은 꽁꽁 묶었다. 결국 4-4 동점으로 승부는 연장전에 돌입했다. NC가 6-4로 달아난 가운데 10회 말 당시 내가 앉아 있던 3루 내야석의 발밑에서 검은 무언가가 성큼성큼 마운드로 향했다. 사람들이 웅성웅성대기 시작했다."두목님이다!" '아니, 조직도 아니고 두목은 무슨…' 하고 속으로 생각하는데 그 두목, 아니 '이용찬'이라는 선수가 포수의 미트 속으로 공을 척척 꽂아 넣었다. 지금껏 나는 마운드에 클로저가 올라올 때의 그 '시퀀스' - 긴박한 스코어, 마무리가 경기를 '마무리'해주리라는 사람들의 기대, 마운드에 서는 클로저의 결연한 표정 - 를 좋아한다. 그에게는 시속 140km 후반대인 수치로는 잡히지 않는, 강력한 '볼 끝'이 있었다. 곧이어 삼자범퇴. 경기는 NC의 승리로 끝이 났다. 나는 집으로 오는 광역버스 안에서, '이용찬'을 내내 검색했다.야구는 사실 루즈하지 않다. 알고 보니 그렇다. 피칭 직전 사인을 주고받는 투수와 포수, 이를 간파하는 출루한 주자의 움직임, 코치들의 사인을 뚫어져라 보는 타자 등등. 우아한 백조가 수면 아래에선 미친 듯이 발을 구르고 있는 양으로, 야구장이라는 게 알면 알수록 그렇더라. 사실 여태껏 투수와 타자 간 수싸움이라든지, 그런 건 잘 모르겠다. 그런 걸 알고 싶어서, 한 번은 여자 사회인 야구팀의 문을 두드린 적이 있다. 그날 나는 3시간 동안 워밍업에 주루 연습, 피칭과 캐칭, 타격 연습을 했는데 끝나고 '문자 그대로' 토할 뻔했다. 그날 나는 코치님께"평소에 근력 운동 하세요?" 하는 말을 들었는데, 평소 운동과 담을 쌓은 나는 야구를 할 수 있는 몸이 아니었다. 그날 이후로, 더욱 경외의 눈빛으로 선수들을 보게 되었다. 한편으로, '루즈해 보이는' 야구의 면모는 굉장한 장점이었다. 나는 야구에 입문한 이래 여러 친구들에게 야구를 전도했다. '먹고 마시며 춤추고 노래하는 공간'으로써 야구장으로 초대한 뒤, 이닝 사이사이, 투수의 피칭 사이사이 나는 친구에게 야구 룰과 함께 지금 마운드와 타석에 선 선수들의 커리어 등을 설명했다. 이후 지속적으로 그들이 매력이 담긴 '짤' 등을 친구에게 보내며 해당 팀, 선수의 서사를 주입시켰다. 나중에는 친구가 먼저 나에게 짤과 함께 구단의 소식을 담은 기사 링크를 보내왔다. 그렇게 나는 20년 지기 여고 동창과, 나와 그에 버금가는 역사를 지닌 대학 동기를 야구, 아니 정확히는 NC 다이노스에 입덕시켰다. 내가 고향을 떠나온 뒤, 여러 잡음 끝에 창단한 구단이 NC 다이노스다. 이제는 수도권에 거주한 기간이 고향에서 지낸 기간을 넘어서지만, 인생 전체를 지배하는 성장기의 기억이 고스란히 담긴 그곳의 야구팀을 나는 좋아할 수밖에 없다. 거기다 2011년 창단해 다른 팀에 비해 역사와 전통이 짧은 언더독이라는 점, 자신이 거쳐 간 팀의 역사와 선수들 커리어는 줄줄 꿰는 해설위원들의 관심이 미치지 못하는 사각지대라는 점 등은 내가 더 그악스럽게 NC를 응원하는 원동력이 된다. 2023년 정규시즌 4위였던 NC가 와일드카드, 준플레이오프를 거쳐 플레이오프에 이르는 가을야구 대장정을 이어갈 때, 나는 줄곧 야구장이었다. 창원에서 인천, 수원 등을 오가며 엄청난 체력 소모를 감당한 선수들에 대한 애잔함, '흥참동'의 일원인 비수도권 지역 구단의 설움, 당시 에이스 투수였던 에릭 페디를 두고 '태업' 운운하던 기사에 대한 분노에 더해 여러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승승장구하는 팀을 응원하고픈 마음 때문이었다. 결국 NC는 플레이오프에서 KT 위즈에 패해 한국 시리즈 진출이 좌절됐지만, 정말로 그 시즌은 '졌잘싸'였다. 이것이 모두 나의 NC 입덕 첫 해에 일어난 일이다. 그리고 2024년은 9위, 올해는 7위다. 역시 첫 끗발이 개끗… 또한 팀 내 최고참들이 나와 동갑내기라는 사실은, 내가 NC에 과몰입하게 하는 주요 원인 중 하나다. 보통의 직장에서 30대 후반은 '과장', '차장' 정도의 직함을 갖는다. 근데 누구보다 인생을 빨리 사는 저들은 그 나이에 '최고참'이라는 무게를 짋어지고 있구나... 라는 생각을 한다. '에이징 커브' 같은 무시무시한 단어에의 두려움을 느끼며, 뼈 마디마디 몸의 이곳 저곳을 수선해가며 야구장에 오르는 인생에 대한 고찰… 그래서 나는 NC의 최고참인 손아섭·이용찬에 대해 특별한 애정을 갖는다. 그리고 나보다 훨씬 굳센 의지의, 행동하는 NC 팬들을 좋아한다. 지난 3월 29일 NC파크에서 구조물이 추락해 NC팬 한 분이 사망한 이후, 한동안 NC파크는 팬들이 붙인 추모의 메시지와 꽃다발로 뒤덮였다. 이후 KBO와 창원시의 책임 회피를 규탄하며 트럭 시위에 나선 여성 야구팬들과, 희생자의 49재를 기려 근조 리본을 만들어 나눈 팬,"세상은 평범한 사람들이 만드는 것"이라던 의 주인공 김장하 선생까지. 내란 국면으로 인한 스트레스에 더해 NC파크 참사가 안긴 분노와 슬픔 때문에 한동안 야구를 멀리하던 나와 달리, '열렬히 고쳐 쓰기'를 택한 '엔팬'들의 우직함을 사랑한다.야구를 알고, NC를 알고, 나의 삶은 급격히 풍성해졌다. 며칠 전, 20년 지기 여고 동창의 결혼을 맞아 친구들과 '브라이덜 샤워'를 했다. 도구리, 창원 시민의 날, 드래프트, 홈 등 갖가지 버전의 NC 유니폼을 입고서였다. 나는 2년 전, NC파크에서 여고 동창들과 조우했다. SNS를 통해 내가 NC를 좋아하는 것을 알고, 십수 년 세월을 건너 연락 온 친구 덕에 만들어진 '야구 동창회' 자리였다. 그해 NC와 KT의 플레이오프 마지막 경기는, '드디어' 아빠와 직관하기도 했다. 누가 더 야구를 아는지로 티격태격해가며. 인스타그램에 NC 선수들의 '짤'을 올리는 팬 계정을 운영하며 전국의 NC 팬들을 만났고, 종종 야구 얘기를 써서 매체에 기고했으며, 강연을 할 때도 야구 얘기로 예시를 들고, 또 뭐더라… 인생 처음으로 PD가 되겠다며 에 지원했다가 탈락하기도 했다.#프로야구 #NC다이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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