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더는 고통받지 않게, 엄마는 불구덩이로 떨어지는 걸 선택했습니다.\r가정폭력 재판 TheJoongAngPlus
마침 현장 검증이 진행된 날. 내가 도착했을 때 포승줄에 묶인 가해자가 현장 검증을 끝내고 현장을 빠져나오고 있었다. 40대 초반가량으로 보이는 여자는 모든 것을 포기한 듯 담담한 표정이었다. 편안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 모습을 힐끔 곁눈질하면서도 나는 장비들을 챙기며 일에만 집중하려고 애썼다. 그때까지는 현장에서 어떤 사건이 벌어졌는지도 알지 못하는 상태였다.“아이들이 살아야 할 곳이에요. 2층에 아이들 아빠의 사진이 있습니다. 꼭 버려 주세요. 그리고 아이들이 살아가는데 불편하지 않게 깨끗이 해 주세요. 부탁드립니다.”현장은 오래된 주택이었다. 사람들이 모두 떠나고 나서야 사건의 경위를 알게 되었다.여자가 걱정하던 아이들은 셋. 대학생인 큰딸, 중학생 아들, 초등학생 막내딸이 있었다. 아이들의 아버지는 첫아이가 태어난 뒤부터 포악해졌고 폭력을 일삼았다고 한다. 폭력의 강도가 점점 심해졌고 아이들에게도 손찌검을 했단다. 부부는 이혼했지만, ‘전 남편’은 계속 집으로 찾아왔다.
하루가 멀다고 싸우는 부모님과 내게 화풀이했던 엄마. 온몸에 멍이 시퍼렇게 들도록 맞아야 끝났던 하루. 부모님의 다툼이 시작되면 요란하게 쿵쾅대던 심장소리. 어린 나는 내가 사라져야 이 싸움이 멈춰질까,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나와 내 동생은 그렇게 유년시절을 지옥에서 보내야 했었다.여자는 국민참여재판을 받았다. 재판은 정당방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전 남편의 위협과 여자의 살해행위 사이에 시간 간격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맞는 와중에 살해 행위가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흉기를 이용한 위협은 있었으나 폭력은 수 시간 전에 벌어졌기 때문에 정당방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생때같다고 말한다. 생때같은 나의 아이들. 너무나 소중한 나의 아이들. 엄마로서 여자는 아이들의 아픔을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살인자가 되어서라도 아이들을 지켜내고 싶었던 여자의 마음을 이해할 것만 같았다.
한참 엄마가 필요할 나이인 둘째와 막내딸의 사진이 현장에서 보였다. 이 아이들은 이제 어떻게 자라게 될까. 엄마의 바람대로 지옥에서 벗어나 웃으며 살아갈 수 있을까…. 당시 이런 생각으로 머릿속과 마음이 복잡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다시 찾아본 기사 속엔 사건 이후 여자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그해 10월 담당 형사에게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큰아이가 종종 면회를 오는데 예전보다 얼굴이 많이 밝아졌다고, 사건이 종료됐음에도 아이들에게 신경 써 주어서 고맙다고, 웃음을 잃지 않도록 도와주어서 감사한다는 내용의 편지였다. 또 여자가 범죄 피해자 지원 규정 내에서 가능한 모든 도움을 받았다고도 한다.※ ‘어느 유품정리사의 기록’ 연재 콘텐트는 중앙일보 프리미엄 디지털 구독 서비스인 The JoongAng Plus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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