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용래 기자=한국 현대문학의 역사에서 가장 뜨거운 인물로 남아있는 시인 김수영(1921~1968).
그는 1968년 6월 15일 술자리를 마치고 을지로에서 버스를 타 밤 11시 20분쯤 마포의 집 근처 버스 종점에 내려 길을 건너다 버스에 치였다. 적십자병원으로 옮겨진 김수영은 이튿날 47세라는 이른 나이에 부인 김현경과 두 아들을 남기고 세상을 뜬다. 그 후 김수영은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시인'이라는 세간의 평가 속에 어느덧 한국 문학의 전설이 됐다.26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그는 그날의 충격을 아직 잊지 못하는 듯 떨리는 음성으로"60년대는 버스가 다니는 길 가운데만 아스팔트고 나머지는 흙바닥이었는데 김 시인이 차에서 내려 길가를 걸어오다가 그만 버스에 치이고 말았다"면서"날이 갈수록 그날이 자꾸만 더 생각난다"고 했다.이 책은 김 여사의 유년 시절과 학창 시절부터 김수영과의 만남과 이별, 재결합 과정에서 있었던 수많은 일화를 김 여사의 구술을 바탕으로 홍 이사장이 쓴 일종의 인물 논픽션이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한국전쟁, 4·19 혁명 등 현대사의 격동기를 온몸으로 겪으며 한국 현대시의 거인으로 자리매김한 김수영과 그의 영원한 뮤즈이자 사랑의 대상이었던 김현경. 두 남녀의 내밀한 이야기가 당대의 문화사와 함께 흥미롭게 펼쳐진다.김 여사는 척추 질환으로 지난 1년간 여러 차례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는 병고를 겪었다. 최근에는 자택에서 아침에 일어나 옷을 입다가 넘어져 늑골 세 개를 다쳤다. 너무 고령이라 수술이 어렵다는 진단을 받았다고 한다.김수영·김현경의 두 손녀 중 첫째는 현재 미국에서 약학박사를 취득한 뒤 현지 대형 제약회사에서 일하고 있고, 둘째는 미국의 명문 미술대학을 최근 졸업했다고 한다.
김 여사는 건강 악화에도 불구하고 요즘도 매일 책을 읽고, 가끔 자택을 찾아오는 문학계 인사들에게 손수 식사와 차까지 대접할 만큼 또렷한 정신으로 남편을 추억하며 기운을 내고 있다고 말했다."그이의 시도 물론 들여다보지만, 김수영전집 제2권의 산문 부분을 요즘 머리맡에 두고 계속 읽고 있어요. 지금도 느끼지만, 김수영은 참 능변이에요. 생전에 노력도 많이 한 사람이었지만, 글에는 타고난 힘이 있지요. 새삼 그이의 글을 읽으며 깨닫는 점이 많습니다." '시인 김수영과 아방가르드 여인'에는 1942년 5월 처음 서로를 알게 된 후 우여곡절 끝에 '그저 시를 잘 쓰는 아저씨'로만 느끼던 관계에서 김수영의"문학하자"는 한마디 권유에 마침내 연인이 된 얘기, 이별 후 김 여사가 프랑스 유학을 준비하며 어학원에 다니던 중 재회한 김수영이 팔을 붙잡고 바이런의 시 '마이 소울 이즈 다크'를 읊으며 고백한 이야기 등 두 사람이 간직한 사연들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저자가 책 제목에 '아방가르드 여인'이라고 쓴 것은 당대 일반의 통념이나 가치관, 윤리 의식을 뛰어넘었던 김 여사의 아방가르드한 자유로운 정신 때문이다.어느 무더운 여름날 여의도에서 산책하던 둘은 한적한 곳에서 맑은 물웅덩이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무더위에 지쳐있던 김현경은 갑자기 입고 있던 원피스는 물론, 속옷까지 모두 훌렁 벗어버린 채 알몸으로 물속으로 뛰어든다.
김 여사는 '아방가르드 여인'이라는 칭호에 대해"책 내용은 70년 전 살던 얘기니까 좀 진부한 것도 있겠지만, 제목은 맘에 든다. 수영도 생전에 나를 흉보는 듯 말하며 '아방가르드하다'고 했다"면서 그게 김수영식의 애정 표현이었다고 회고했다."김수영은 지금 읽어도 늘 새롭다는 거예요. 요즘 젊은 사람들이 읽어도 고리타분하다거나 '감성이 뭐 이따위야'라는 생각 절대 못 할 거예요. 또 무엇보다 솔직하고 진실하죠. 늘 이상을 생각하면서도 생활을 인식하고 살았던 시인이었어요. 그래서 제가 지금 읽어도 느낌이 새롭네요.""요즘엔 정말, 몸으로 밀고 나가는 게 아니라 정신으로, 정신을 차리고 100세까지 밀고 가야겠다고 생각해요."김수영은 이 글에서"시작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고 '심장'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몸'으로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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