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소 도둑의 일기. 저자는 ‘익명인(Anonymous)’으로 철저히 베일에 싸여 있다. SNS에도 이 책에 대한 갑론을박이 오가고 미국 아마존엔 호평과 혹평이 뒤섞인 600여개의 서평이 달려 있다.
산소 도둑의 일기“나는 내 경험을 얘기하고 싶어요. 내가 이십대 초반 만났던 남자친구는 나를 감정적으로 학대했어요. 나는 엄청난 상처를 받았죠. 그땐 가스라이팅이란 말조차 모를 때였어요. 그는 마치 연기하는 배우 같았고, 나를 파괴하는 상황을 즐겼어요. 이 책에 나오는 남자와 똑같이요.” 유튜브에 한 북튜버가 책 에 대한 리뷰를 하면서 자신의 경험담을 이야기한다.
유튜브에 ‘산소 도둑의 일기’를 검색하면 리뷰 동영상이 줄줄이 올라온다.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 사회관계망서비스에도 에 대한 갑론을박이 오가고 미국 아마존엔 호평과 혹평이 뒤섞인 600여개의 서평이 달려 있다. 영미권에서 는 매우 뜨겁고 논쟁적인 책이다. 이 책의 존재부터 주목받는 과정까지가 하나의 ‘이슈’와 같다. 저자는 ‘익명인’으로 철저히 베일에 싸여 있다. 2006년 네덜란드에서 자비로 독립출판됐고, 입소문과 SNS를 통해 관심을 불러일으키다 2016년 미국에서 베스트셀러로 도약한다. ‘힙스터’들의 거리인 뉴욕 윌리엄스버그 독립서점을 중심으로 유행하다 주류 출판계로 진출했다. 별도의 마케팅 없는 독립출판으로 11만부가 넘게 판매되는 이례적 기록을 남겼고, 영화 판권도 팔렸다.충격적인 소설의 첫 문장이다. 그는 “그들이 나를 향한 사랑에 완전히 푹 빠질 때까지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가” “우리의 ‘우’자부터 ‘리’자까지 하나하나 부숴”버리는 걸 즐겨한다. “내 생각에 그들 중 한두 명쯤은 나한테 살해당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들의 영혼을 내가 죽여버렸다고나 할까”라고 과시하듯 말한다. 계속 읽어나가는 것이 조금 괴로울 지경이다. 그는 ‘여성혐오자’라는 것을 밝히는 데 주저하지 않는데, “나는 ‘미소지니스트’라는 단어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그 이름에 ‘미스’라는 접두어사가 들어간다는 점이 굉장히 웃긴다고 생각했던 일이 기억난다”며 비웃듯 말한다.‘산소 도둑’은 ‘숨 쉬는 것조차 아깝다’는 의미다. 실제 화자의 모습은 숨 쉬는 것조차 아까운 ‘인간 쓰레기’에 가깝다. 알코올 중독에 피해망상, 자기혐오에 빠져 있는 데다 자신의 열등감을 자신보다 취약한 여성에 대한 폭력으로 풀어낸다. 술집에서 시비를 걸다 남자에게 얻어터지는 대신 “그래서 내가 여자들에게로 옮겨간 것인지도 몰랐다. …여자들은 나를 때려눕히진 않을 터였다. 그들은 그저 불신과 충격 속에 나를 빤히 노려보고 말 것이었다”고 말한다. ‘산소 도둑’이란 말은 아이러니한데, 남성들이 여성에 대한 폭력을 행사한 후 ‘난 쓰레기야’라는 말로 명백한 폭력을 자기연민이란 조미료를 뿌려 합리화하는 현실을 환기한다. 화자는 가해자이면서도 피해자인 척 행세하고, 자기연민에 젖는다. 그는 4년 반 동안 만난 연인 페넬로피에게 모멸감과 수치를 주며 관계를 파괴했지만, 자신이 그녀에게 버림받았다고 ‘전도몽상’에 가까운 생각을 갖는다. 이후 알코올 중독을 치료하고 광고업계에서 나름 성공을 거두며 미국 뉴욕으로 진출한다. 그곳에서 그는 치명적 상대 아슐링을 만나고 이야기는 반전을 향해 치닫는다. 화자에게도 핑곗거리가 없는 건 아니다. 그의 말대로라면 “씨앗이 뿌려지긴 했다”. 어렸을 때 천주교 사제에게 성추행을 당했고, 아버지에게 감정적 상처를 받은 기억이 드러난다. “어쩌면 나는 상대방의 신뢰를 획득한 뒤에 그것을 돌연히 내던져 깨 버림으로써, 어린 시절 내가 경험했던 유일한 인간관계의 양식을 계속 모방하고 있는지도 몰랐다”고 화자는 말한다. 저자가 남성인지, 여성인지, 실화인지, 허구인지 밝혀진 바는 없다. ‘불분명’이 이 책의 정체성이다. ‘인간 쓰레기’의 헛소리를 계속해서 읽어야 하는지 회의가 드는 순간도 찾아온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책이 사람들의 어떤 부분을 건드렸고, 유럽의 한 구석에서 이름 없는 저자가 자비출판한 책이 미국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한국까지 상륙하게 된 것이라는 사실이다. 여성에 대한 폭력이 세계적 이슈가 되는 상황에서 ‘여성혐오’를 일말의 도덕적 포장 없이 적나라하게 드러낸 작품이기 때문일 것이다. 출판사는 “사랑과 관심이라는 미명 아래 이뤄져 온 데이트폭력과 가스라이팅, 성적 착취의 메커니즘을 고발하는 일종의 조서”라고 평했다. 여성에게 잔혹하게 구는 장면이나 성적대상화하는 시각에선 화자가 의심의 여지없이 남성일 거란 확신이 들기도 하지만, 동시에 화자가 어느정도 ‘자기 객관화’되어 있다는 점에서 남성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여자들이 돈을 그토록 사랑하는 이유는, 그녀들이 돈에 이르는 과정을 바로 우리 남자들이 어렵게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라는 여성의 경제적 위치에 대한 서술이나, 아슐링이란 도발적인 캐릭터의 존재도 그렇다. 아슐링은 사진작가로 어리고 매혹적인 여성이지만 단지 ‘팜므 파탈’이 되는 것을 넘어선다. 화자는 그녀를 ‘성모마리아’ 같다고 묘사하지만 아슐링은 카메라를 들이밀어 화자의 수치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존재에 가깝다. 적장의 목을 칼로 쳐 버린 유디트처럼 아슐링은 화자에게 ‘인과응보’가 무엇인지 가르쳐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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