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국제사회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통해 북핵을 존재해선 안 될 것으로 규정하고, 비핵화를 위해 대북 제재 등을 시행해 왔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전에서 그간 용병을 썼던 러시아가 북한에도 파병 대가를 지불할 테니 북한이 노리는 대북 제재 무력화에 부합한다. 하지만 향후 북한이 국지 도발을 하고 직후 러시아의 전략폭격기 편대가 동해 상공을 날아다니는 식의 ‘북한 도발→한국 대응→러시아 개입→미국 등장’ 같은 위기 고조형 시나리오가 현실화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북한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달려들면서 얻는 건 단지 군사적 이득만이 아니다. 파병 병력이 유럽에서 러시아제 화기 와 장비로 무장해 우크라이나 지상군과 전투를 치르며 실전 경험을 축적하고, 러시아로부터 전략무기 기술까지 획득해 복귀하면 당연히 대남 군사 역량이 강화된다. 그런데 이에 더해 주목할 건 북한군 참전이 비핵화 체제에 미칠 파장이다. 그간 국제사회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통해 북핵을 존재해선 안 될 것으로 규정하고, 비핵화 를 위해 대북 제재 등을 시행해 왔다.
하지만 안보리 이사국인 러시아가 북한 병력을 받아들이면서 대북 제재를 완전히 이탈했다. 북한과 러시아는 올해 ‘포괄적인 전략적동반자관계 조약’으로 군사동맹을 맺었다. 여기엔 두 나라 중 어느 일방이 무력 침공을 받아 전쟁 상태에 처하는 경우 타방은 “보유 중인 모든 수단으로 군사적, 기타 원조를 한다”는 문구가 박혀 있다. 돌이켜보니 이 조약은 북한군 참전을 위한 사전 포석이었다. 전장에 북한군을 끌어들인 러시아가 북핵 폐기 대열에 복귀할 리 없다.북한 자금줄 차단에도 혼선이 예상된다. 핵과 경제는 병행할 수 없도록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는 각종 북한산 상품·광물 등의 수출을 막고, 북한과의 금융 거래를 차단해 돈이 북한으로 흘러 들어가는 걸 촘촘히 막으려 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전에서 그간 용병을 썼던 러시아가 북한에도 파병 대가를 지불할 테니 북한이 노리는 대북 제재 무력화에 부합한다. 우여곡절 끝에 유럽에서 전쟁이 끝나도 한반도에선 북·러 밀착이 이어지며 북한이 이를 통해 한·미의 북핵 억지력을 흔들려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북핵 억지력은 ‘북한 정권 종말론’을 통해 유지돼 왔다. 북한이 핵을 사용하는 순간 북한 정권은 지도에서 사라질테니 꿈도 꾸지 말라는 경고를 통해 핵 사용을 막는 개념이다. 종말론이 먹히려면 말만 아니라 실제 타격 능력이 있어야 한다. 핵에 맞대응할 전력은 핵 뿐이다. 핵 억지력은 내가 핵을 쏘면 내게도 핵이 날아온다는 핵 공포의 균형을 통해서 유지돼 왔다. 이 개념을 건조하게 표현한 게 ‘핵우산’이다. 포괄적으론 미국의 3대 핵전력에 이어 한국의 이른바 참수부대 등 대북 보복 전력이 해당한다. 이를 통해 ‘발사의 왼편’ 때, 즉 핵미사일을 쏘는 징후를 사전에 포착해 발사 직전 무력화하는 선제타격 전략까지 거론하며 한·미는 경고해 왔다. 그런데 전쟁이 끝난 후에도 러시아가 한반도 개입을 시도할 경우 핵 억지력에 변수가 등장한다. 그간 한반도에서 핵 억지력은 북핵만을 다뤘는데 최악의 경우 러시아가 끼어들면서 러시아 핵까지 고려해야 해 핵우산의 현실성이 의심받는 상황이 올 수 있다. 북한은 도발로 위협하고 러시아는 이에 가세해 ‘북한이 위협받는 중대 사태가 발생할 경우 보유하고 있는 모든 수단을 통해 지원하겠다’며 국제사회를 위협할 수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전을 치르면서 ‘모든 수단’이 뭔지 보여줬다. 서방의 우크라이나 군사 개입을 막겠다며 수차례 공개적으로 핵무기 사용을 위협했다. 물론 전쟁이 끝나면 피로가 누적된 러시아가 유럽보다 전략적 순위가 밀리는 동북아에 적극 개입해 대치 전선을 그으며 에너지를 분산하려 할지는 미지수다. 단 러시아 속내가 무엇이든, 북한은 북핵 보유와 확장에 도움이 된다면 어떻게든 러시아를 동북아에 끌어들이려 할 것이라는 데선 의심의 여지가 없다. 북한의 러시아 끌어들이기는 재래식 도발에도 적용될 수 있다. 두 차례의 연평해전과 연평도 피격처럼 그간 남북 간 교전은 ‘북한의 도발→한국의 비례적 대응’으로 진행됐다. 하지만 향후 북한이 국지 도발을 하고 직후 러시아의 전략폭격기 편대가 동해 상공을 날아다니는 식의 ‘북한 도발→한국 대응→러시아 개입→미국 등장’ 같은 위기 고조형 시나리오가 현실화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러시아는 5년 전 조기 경보기로 독도 영공을 침범한 전례가 있다. 1953년 정전협정 이후 한국 영공이 침범당했던 첫 사례였다. 당시 한국군 전투기가 출격해 플레어를 쏘고 기관총으로 경고사격해 쫓아냈다. 북한은 74년 전 소련을 끌어들여 남침 전쟁을 일으켰다. 이번엔 러시아의 침공에 가세하면서 한국을 ‘불변의 주적이자 적대국’으로 공식 규정했다. 이는 한반도에서 한국과 평화로운 공존을 거부하겠다는 선언이다. 1950년 소련제 T-34 탱크를 앞세워 38선을 넘어왔을 때나, 북한 병력을 러시아 해군 상륙함에 실어 보낸 지금이나 방식만 달라졌을 뿐 북한의 국가 목표는 바뀐 게 없다.
북한 핵우산 러시아제 화기 북핵 억지력 대북제재 결의 러시아 비핵화 한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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