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XY한 대법원][단독]전국 고등법원 재판부 50% 여성 판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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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성범죄 사건의 피해자가 되었다고 가정해보자. 친구들과 만난 약속 자리에서 술에 취해 ...

당신이 성범죄 사건의 피해자가 되었다고 가정해보자. 친구들과 만난 약속 자리에서 술에 취해 정신을 잃었다. 눈을 뜨니 낯선 곳이었다. 성폭행을 당한 사실을 알게 됐다. 재판을 받게 된 가해자는 1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그는 2심 판단을 받아보겠다며 항소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해자인 당신의 증언을 들어보기로 했다. 재판을 앞둔 당신, 법정 문을 열고 들어가면 어떤 판사들을 마주하게 될까.

재판부별 성비가 어떤지는 베일에 쌓여있다. 한국에선 법원 재판부 구성과 다양성을 살펴볼 수 있는 공개된 지표가 없다. 재판부 구성이 한 쪽 성별로 치우치지는 않았는지, 치우쳤다면 불균형은 어느 정도인지 전혀 알 수 없다. 17일 경향신문은 이를 살펴보기 위해 전국 6개 고등법원과 서울 지역 8개 법원 재판부를 전수분석했다.미국 뉴욕대 법학전문대학원의 공공정책연구소인 브레넌 정의센터는 2019년부터 매년 재판부를 분석해 주 대법원별 여성·유색인종 법관 비율 등을 그래픽으로 제시한다. 일반 시민이 재판을 받게 됐을 때 대법원의 성별 및 인종 다양성 지표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나아가 ‘주 대법원 구성원 59%는 남성’ ‘대법원 구성 중 여성이 단 한 명인 주는 9개’ ‘흑인 법관이 없는 주는 29개’ 등 분석 결과를 내놓는다.

누군가는 올해 신임 법관 중 여성이 과반을 넘어섰고 ‘법원의 여풍’ 같은 기사는 새삼스러울 것 없는 옛말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여성 법관이 존재하지 않는 재판부가 아직도 다수인 게 한국 법원의 현실이다. ‘인권의 최후 보루’라고 불리는 법원이 성별 차원에선 외관상으로조차 다양성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UNODC는 “지난 20년간 피해자, 증인, 피고인 등으로 형사사법제도와 접촉하는 여성의 수도 늘어났다”며 “그러나 여성이 사법제도에 접근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여성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 형사사법기관이 충분히 대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큰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전국 고등법원 재판부 구성을 살펴보면 특히 형사와 행정 사건을 다루는 재판부에서 여성 법관이 없는 비율이 높았다. 형사부의 경우 전국 고등법원 36개 중 20개, 행정부의 경우 17개 재판부 중 12개 재판부에 여성 법관이 0명이었다. 민사부만 여성이 없는 재판부가 70개 중 22개로 유일하게 평균을 밑돌았다.

한 때 ‘금녀의 구역’으로 여겨지던 영장전담판사의 경우 전국 총 77명 중 18명만 여성 법관으로 집계됐다. 영장전담판사는 격무인 동시에 중요한 보직으로 꼽힌다. 과거엔 육체적으로 힘든 일이란 이유로 여성을 제외했다. 얼핏 ‘특혜’처럼 보이지만 여성에게는 고되고 중요한 일을 맡길 수 없다는 편견이 깔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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