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금관을 아느냐.” 요즘들어 신라 금관이 세계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 한국 정부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대통령에게 ‘천마총 금관’의 모...
“너희가 금관을 아느냐.” 요즘들어 신라 금관이 세계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 한국 정부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대통령에게 ‘천마총 금관’의 모형을 선물한 것이 화제를 뿌린 것이다. 어쨌든 그 덕분일까. 12월14일까지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열리는 ‘신라 금관, 권력과 위신’ 특별전은 ‘오픈런’이 벌어질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또한 국내에서 출토된 금관 6점이 사상 처음으로 한꺼번에 모이는 자리라는 점도 ‘관객 폭발’을 유도했다.
결국 관람인원을 제한할 수밖에 없었다. 필자는 이번 기회에 신라 금관을 둘러싼 이야깃거리의 정수만 골라 소개하려 한다.1926년 10월10일 일본을 방문중이던 아돌프 구스타프 스웨덴 황태자가 마침 경주에서 노출되기 시작한 서봉총 금관의 발굴을 마무리짓는 이벤트가 벌어졌다. 이 서봉총 금관은 1935년 9월 평양 특별전에 대여 전시되었다. 그런데 평양박물관장이 전시회 후 뒷풀이 연회를 베풀면서 이 금관을 평양기생 차릉파의 머리에 씌우는 천인공노할 작태를 벌였다.신라는 ‘신라=황금의 나라’였다. 중세 아랍의 지리학자이자 여행가인 알 이드리시는 “신라에서는 황금이 너무 흔해서 심지어 개의 사슬이나 원숭이의 목테까지도 황금으로 만든다”고 했다. 도 “일본의 진을 향한 나라에는 눈부신 금은채색이 많다”고 기록했다. ‘진한’조는 “신라에는 39곳의 금입택이 있었다”고 전했다. 신라의 황금문화는 마립간 시대의 산물로 여겨진다. 그 시기는 내물·실성·눌지·자비·소지·지증 마립간 연간이다. 김씨의 왕위 독점 세습으로 왕권이 강화된 시기다. 금관은 왕의 권력과 신성의 상징물이었다.금관의 나뭇가지와 사슴뿔 모양 세움 장식은 하늘과 땅을 잇는 매개체를 형상화했다. 새는 지상과 천상을 연결하는 전령으로 여겨진다.‘기생금관’이 된 기막힌 사연을 전한 조선일보 1936년 6월23일자. 당시 고이즈미 평양박물관장이 술자리에서 평양의 이름난 기생이던 차릉파에게 금관을 씌우고 온갖 장신구로 치장시킨 뒤 사진을 찍은 사건의 전모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X선 형광분석기 등 첨단 과학을 동원한 분석 결과 경주 금관 6점의 금 함유량은 80~89% 선인 것으로 확인됐다. 6점 모두 일정량의 은이 함유되어 있었다. 예컨대 세움장식의 경우 6점의 금 함유량은 80~89% 선이다. ‘금관 기생’ 차릉파는 일약 전국구 스타가 되었다. 의 작가 이효석은 일본어 작품 에서 “하룻밤의 은밀한 놀음이 드러나자…국보의 존엄을 모독했다는…비난의 소리가 높아 신문기자가…기생 집에 숨어들어가 문제의 사진을 훔쳐내어 사회면에 폭로했다…”고 썼다. 교동-황남대총 북분-금관총-천마총-금령총-서봉총 순이다. 관테의 금함유량도 88.1~81.4%였다. 신라인들은 왜 24K의 제품을 만들지 않은걸까. ‘부드러운 금의 성질’에서 그 해답을 찾는다. 순금만 사용했을 경우 연성이 강해서 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은 합금으로 강도를 높였다는 것이다. 광택을 위해 은을 섞었다는 해석도 있다. 순금은 붉은 빛을 띤다. 여기에 은을 섞으면 광택이 난다.중세 아랍의 지리학자이자 여행가인 알 이드리시는 “신라에서는 개의 사슬이나 원숭이의 목테까지도 황금으로 만든다”고 했다. 도 “신라에는 금은채색이 많다”고 기록했다.일제는 “금관총 황금유물은 1877년 중앙아시아에서 확인된 옥수스 출토품을 능가한다”면서 “‘우리 일본 영토’에서 처음 발견됐고, 전세계적으로도 가장 두드러진 고분 발견의 예”라고 호들갑을 떨었다.이 금관총 유물은 곧 수난을 겪는다. 1927년 12월 금관을 제외한 금제 허리띠와 장식 등 90여 점의 황금유물이 감쪽같이 사라진다. 수사는 미궁에 빠질 뻔했다. 경찰과 총독부박물관 경주분관은 “천년 넘은 금제품은 요즘의 금 성분과 달리 녹이면 금방 알아치린다”는 거짓정보를 흘렸다. 결국 범인은 사건발생 6개월 만에 도난품 일체를 경찰서장 관사 문 밖에 두고 사라졌다.현전하는 신관의 금 순도를 분석한 결과 24K는 없었다. 금관 6점의 금 함유량은 80~89% 선인 것으로 확인됐다. 6점 모두 10~20% 사이의 은이 함유되어 있었다.|신용비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 제공 1956년 3월7일 금관총 금관이 감쪽 같이 사라진 일도 있었다. 그러나 도난 금관은 전시용 모조품이었다. 범인은 언론 보도를 접한 뒤 문제의 모조품을 경주 서천의 모래사장에 파묻어 버렸다.학계는 ‘큰칼을 찬 이사지왕’이 누구인지 밝히려고 애쓰고 있다.‘이사지왕=소지왕’으로 보는 이도 있다. ‘이’를 ‘그 분’ ‘이 분’으로 보아 ‘이분인 소지왕’으로 읽는 것이다. ‘금관총 주인공=인근의 봉황대 및 금령총의 직계’로 본 연구도 있었다. 봉황대는 자비왕, 금관총은 자비왕의 아들인 이사지왕, 금령총은 이사지왕의 아들의 무덤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확실치 않다.금관총 금관의 잘못 뚫은 구멍들. 기존의 구멍들을 그냥 두고 새로운 구멍들을 뚫어 달개와 곡옥을 달았다. 황남대총에서는 기존에 새긴 무늬를 거칠게 지우고 새로운 무늬를 새긴 흔적이 보인다. 왕이 생전에 썼다면 용납할 수 없는 제작상 실수이다.|이한상 대전대 교수 제공이 고분의 주인공은 ‘5~6살 어린 왕자’로 특정된다. 왜냐. 홀대 받는 금관 현전하는 금관 6점 중 교동금관은 유일하게 국보도, 보물도 아닌 비지정 문화유산이다. 그러나 6점 중 가장 먼저 제작된 금관이라는 점에서 허투루 볼 수 없다. 다른 금관과 달리 곱은옥도, 사슴뿔 모양 세움 장식도, 관 드리개도 없다. 무늬도 없죠. 나뭇가지 장식도 1단이다.|국립경주박물관 제공2001년 경기 양주에서 출토된 17세기 미라의 치아 감별 결과 5.5세로 추정된바 있다. 그러니 금령총 주인공의 연령대를 5~6세로 가늠한 것이다. 이 고분의 명칭을 결정한 금방울과 흙방울도 10점 정도 출토됐다. 떠들썩한 발견각종 말갖춤새도 쏟아져 나왔다. 재갈과 안장, 발걸이, 말띠꾸미기, 말다래, 말방울, 발종방울, 치렛걸이 등을 갖춘 최소 3세트의 말갖춤새였다. 이 중 안장과 발걸이는 눈에 띌 정도로 소형이었다. 남은 높이가 56㎝에 달하는 말모양 도기도 나왔다. 이 말은 ‘메롱’하듯 혀를 쑥 내밀고 있다. 마치 어린 왕자와 장난을 치는 것 같다. 요즘도 남자 아이들이 자동차를 좋아하지 않은가. 말은 그 시대의 자동차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요절한 어린 왕자의 무덤에 생전에 좋아했던 말 용품을 넣어준 것이 아닐까. 연구자 중에는 “어린 왕자가 말을 타다가 떨어져 갑작스레 사망한 게 아니냐”고 추측하는 이도 있다.■평양 기생이 쓴 서봉총 금관 일제는 마침 일본을 방문 중이던 구스타프 황태자 부부를 위해 ‘금관 발굴’ 이벤트를 펼쳤다.이재명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에게 선물한 금관은 천마총 금관 모형이다. 6세기 1/4분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천마총 금관은 금관 전체에 곱은옥과 달개가 가득 달려있어서 신라 금관 중 ‘가장 화려하다’는 평을 듣고 있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에게 제공된 모형은 사실 금관이 아니라 금동관이다. 구스타프는 북유럽·그리스·로마의 고분을 발굴한 고고학자였다. 현장 책임자는 조선총독부 촉탁인 고이즈미 아키오였다. 황태자가 반쯤 노출해놓은 금관을 들어올리자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금관엔 새가 장식되어 있었다. 그래서 스웨덴의 한문명인 ‘서전’의 ‘서’와 봉황의 ‘봉’자를 따서 ‘서봉총’이라 했다. 서봉총의 주인공은 5세기말~6세기 초를 살았던 여성으로 추정된다. 여성의 지표유물인 굵은고리 귀고리와 허리띠 장식, 섬유제품이 다수 출토됐기 때문이다. 또 금관이 나왔으므로 아무래도 왕의 부인일 가능성이 높다. 9년 뒤인 1935년 9월 서봉총 금관이 또한번 뉴스의 중심에 선다.1973년 7월27일자 발굴일지를 보면 “금관을 들어 올릴 때 하늘이 갑자기 컴컴해지더니 뇌성벽력과 함께 폭우가 퍼붓기 시작…경건한 마음가짐으로 금관을 수습했더니 하늘이 말씀해졌다”고 했다.그런데 전시회가 끝난 뒤 내로라하는 평양기생들도 총출동한 뒷풀이 연회에서 대형사고가 터진다. 흥청망청 벌어진 술판의 와중에 기생 차릉파의 머리에 서봉총 금관을 씌우고 각종 장신구까지 휘감은 뒤 기념사진까지 찍었다. 기생 차릉파가 신라 왕으로 등극한 격이었다. 가관인 것은 그 자리에 모인 자들이 차릉파에게 “왕후 공주가 되었으니 지금 죽어도 한이 없겠다”느니 “옛 사람의 것을 쓰고 사진을 찍으면 백이면 백 불길하다”느니 하며 웃었다고 한다. 고이즈미는 한술 더 떠서 “이 왕관은 경주의 기생집 근방에서 발굴됐는데, 지금도 기생이 쓰고 사진을 찍으니 왕관과 기생과는 어떤 인연이 있나보다”라고 했단다.“하룻밤의 은밀한 놀음이 드러나자…국보의 존엄을 모독했다는…비난이 터져나와 기자가…기생 집에 숨어들어가 문제의 사진을 훔쳐내 폭로….”지금 서봉총 금관을 쓴 차릉파의 사진을 보면 ‘천마총 모형관을 쓴 트럼프’ 합성사진이 떠올라 절로 웃음이 나온다.금관총에서 출토된 고리자루큰칼과 칼끝장식에서 ‘이사지왕’ 명문이 잇달아 확인됐다. 이를 두고 ‘이’를 ‘그 분’ ‘이 분’으로 보아 ‘이분인 소지왕’으로 읽기도 한다.우선 현전하는 6점 가운데 가장 먼저 제작된 금관이다. 겉모습만 봐도 확연한 차이가 있다. 5~6세 어린왕자 금관크기도 금령총 금관과 함께 작은 편이다. 그래서 어린 아이의 것으로 추정된다. ‘금관의 원조’이니 대한민국의 국보 혹은 보물로도 손색이 없다. 그런데도 왜 이렇게 천덕꾸러기가 된 것일까. 도굴품이기 때문이다. 1972년 12월로 시계를 돌려보자. 도하 각 신문에 ‘가장 오래된 신라 금관이 발견되었다’는 1면 머리기사가 보도됐다. 그 전말을 살펴보자. 당시 경북에서도 알아주는 도굴꾼이었던 최종호씨는 1967년 9월 경주 교동의 고택 아래채를 사글세로 빌려 입주한다. 이유가 있었다. 고택의 담장 일부가 폭 2m 정도 허물어져 있는 것을 보고, “저 돌 및 흙무더기 밑에 뭔가 있다”고 유물냄새를 맡았다.금령총에서는 금방울과 흙방울도 10점 정도 출토됐다. 장난감처럼 보인다. 또 말 관련 유물이 유난히 많다. 말안장과 발걸이도 사이즈가 작다. 출토된 말 모양 도기는 ‘메롱~’하고 혀를 쑥 내민 모양이다. 최씨는 치밀한 야간 두더지 도굴 작전을 편다. “사글세 대신 무너진 담장을 고쳐주겠다”고 집주인에게 제안했다. 최씨는 1969년 3월 한밤중에 무너진 돌과 흙무더기를 3m 정도 파낸 뒤 금관 등 유물 657점을 도굴했다. 영화의 한 장면 같다. 3년 뒤인 1972년 최씨는 꽁꽁 숨겨놓았던 금관 등을 처분하려고 서울로 올라왔다. 재벌 모씨를 만나려 했다가 실패하고, 골동품상과 만나 금관을 1600만원에 흥정하다가 무위에 그쳤다. 이 과정에서 ‘금관=가짜판정’까지 받는 촌극도 빚었다. 금관의 처분에 실패한 최씨는 소득없이 경주로 내려갔다. 그 사이 문화재관리국에 도굴 금관 관련 제보가 접수되었다. 이에 문화재관리국은 “보관 중인 금관 등 도굴유물을 자진신고하는 형식으로 내놔라. 그럼 문제삼지 않겠다.”고 최씨를 설득했다. 교동금관은 그렇게 국가로 귀속되었다. 이듬해 7~8월 도굴범 최씨가 지목한 ‘금관 출토 지점’을 발굴해보았다. 그랬더니 도굴 구멍과 도굴에 쓰인 나무가 확인됐다. 그럼에도 교동금관은 ‘근본을 알 수 없는 금관’이라는 낙인이 찍혔다.금관을 비롯한 출토품이 작은 사이즈이고, 유독 말 관련 유품이 많은 것으로 보아 신라의 어린 왕자가 지금의 자동차와 같은 말타기를 좋아했던 것이 아니내고 추측하는 연구자도 있다.마치 천마가 ‘히힝’하고 하늘을 향해 솟구쳐 날아갈 기세다. 강렬한 채색그림이 눈길을 확 잡아끈다. 그래서 고분 이름도 ‘천마총’이라 했다.넓은 관테에 3개의 나뭇가지 모양과 2개의 사슴뿔 모양 장식을 붙여 만들었다. 금관 전체에 곱은옥과 달개가 가득 달려 있다. 화려함의 극치다.1973년 천마총 조사와 함께 표주박 형태 쌍분인 황남대총 남북분 발굴도 이어졌다. 북분에서 금관을 비롯한 황금유물이 쏟아져 나왔다. 그중 마디마디에 달린 투명한 ‘비취 굽은옥’과 달개가 영롱한 출자형 금관이 압권이었다.“날씨 비온 뒤 맑음. 금관을 들어 올릴 때 청명하던 하늘이 갑자기 컴컴해지더니 뇌성벽력과 함께 폭우가 퍼붓기 시작했다. 모두들 급변한 천기에 무섭고 놀라서 경건한 마음가짐으로 금관을 수습….”천마총 발굴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단골로 거론되는 후일담이다. 금관발굴 때 노했던 하늘이 경건한 마음으로 옮기자 거짓말처럼 개었다는 것이다. 이전부터 조짐은 있었다. 그 해 여름 경주 지역에 30도가 넘는 폭염과 함께 가뭄이 심했다. 그래서 현지에서 “왕릉을 파서 지하의 신라 임금들이 노했기 때문”이라는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었다. 게다가 고분에 ‘천마총’ 명칭을 붙이자 지역여론이 비등해졌다. 신성한 임금의 무덤에 말이름이 웬말이냐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문화재위원들이 국회에 불려나가는 촌극도 빚었다. 그럼에도 명칭은 바뀌지 않았다. 천마총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유물의 양상으로 볼 때 천마총의 주인공은 6세기 초 재위한 지증왕일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결정적인 유물은 ‘부인대’라는 글씨가 새겨진 은제 허리띠 꾸미개였다. 무덤 주인공이 금관을 쓴 여왕으로 추정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호아남대총 북분의 연대는 5세기 3/4분기로 추정된다. 신라에서 첫 여왕은 7세기에 등장한 선덕여왕이다. 따라서 선덕여왕은 아니다.북분 발굴부터 ‘예상대로’ 금관을 비롯한 황금유물이 쏟아져나왔다. 오죽하면 당시 발굴자가 “황남대총 북분, 그곳은 누런 황금밭이었다”고 회고했을까.그런데 팔수록 수상쩍은 유물이 잇달아 출토되기 시작했다. 채화 가락바퀴가 여럿 확인됐다. 주인공이 착장한 귀고리와 장식 드리개도 모두 굵은고리였다. 고고학에서는 ‘굵은고리 귀고리와 작은 칼, 가락바퀴’ 등은 여성, ‘가는고리 귀고리’와 ‘둥근고리큰칼’ 등은 남성의 지표유물로 각각 해석한다.황남대총 남분에서는 남성의 자표유물인 가는고리귀고리와 둥근고리큰칼이 나왔다. 출토 인골을 분석한 결과 60대 남성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금관은 없었고, 금동관이 나왔다.그렇다면 황남대총 북분의 주인공은 ‘금관 쓴 여성’일 가능성이 짙어졌다. 그럼 여왕인가. 그러나 최초의 여왕인 선덕여왕은 7세기 전반에 등장했다.1974년 8월 비상한 관심 속에 발굴이 시작됐다. ‘역시나’였다. 남분에서도 2만여점의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 주인공 역시 온갖 황금으로 치장하고 있었다. 남성의 상징인 ‘가는고리 귀고리’를 달고, 둥근고리큰칼도 차고 있었다. 출토된 인골의 아래턱 뼈를 분석해보니 60대 전후의 남성으로 추정됐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기대했던 금관이 보이지 않았다. 그보다 위계가 낮은 금동관이 노출됐다.남성 임금보다 신분이 높은 여성이라면 대체 누구였을까. 학계에서는 ‘내물왕+보반부인’이나 ‘눌지왕+아로부인’ 등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금관, 실제로 썼을까.이 금관의 관테에는 아무런 장식이 없는 구멍들이 상하 2줄로 촘촘히 뚫려있다. 원래 달개나 곡옥 등을 매달기 위해 뚫어놓은 구멍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이유는 몰라도 미리 만든 2줄 구멍에 장식을 매달지 않고 새롭게 3줄 구멍을 뚫어 곡옥과 달개를 달았다. 관테를 만드는 데는 하루면 충분하다.아무리 임금이라도 죽은 자는 말이 없기에 약간의 실수에도 그냥 넘어간 게 아닐까. 장례용이기에? 트럼프 대통령에게 선물한 천마총 금관 모형은 어떠한가. ‘장례용 금관’을 선물했으니 트럼프에게 한방 먹인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그러나 금관이 아니라 아무래도 더 단단한 금동관을 선물했으니 실용관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올 수 있다. 그러나 뭐 어떠랴. 대한민국은 그저 국익을 위해 미국 대통령의 환심을 사려고 선물한 것일뿐…. 해석은 그들의 몫이 아닐까. 이기환 히스토리텔러 lkh0745@naver.com신용비·유혜선·윤은영, ‘신라금관의 성분 조성 분석’, 제16집, 2015심현철, ‘신라왕릉 변천과 마립간릉’, 116호, 한국고고학회, 2020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트럼프 금관’은 ‘합성’이지만 ‘기생 금관’은 ‘실사판’이었다…6점6색, 신라 금관의 비밀](https://i.headtopics.com/images/2025/11/11/kyunghyang/9151060445925481815256-9151060445925481815256-F8DFA06B1B6F9E478563792FF0650F16.web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