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고난과 부활을 다룬 프라이부르크 바로크 오케스트라의 바흐 ‘마태 수난곡’ 연주 시간은 인터미션을 포함해 190분에 달했다. 현장에서 만난 지인이 체력을 보충하라며 고맙...
예수의 고난과 부활을 다룬 프라이부르크 바로크 오케스트라의 바흐 ‘마태 수난곡’ 연주 시간은 인터미션을 포함해 190분에 달했다. 현장에서 만난 지인이 체력을 보충하라며 고맙게도 초코바를 건네주었지만 인터미션에도 먹지는 않았다. 바로크 악기 특유의 거칠고도 맑은 음향, 최고 수준 성악가들의 청아한 목소리, 2000년 전 성인의 위대한 행적이 감상자를 몽롱하게 했고, 그 아름다운 몽롱함에서 억지로 깨어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몽롱함의 원인은 연주 자체와 함께 연주 시간에도 있었다. 기나긴 연주 시간 동안 스마트폰을 통한 외부의 자극이 없으니, 영원히 이어질 것 같은 종교음악의 흐름에 몸을 온전히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이런 종류의 음악은 귀가 아니라 온몸으로 듣는다.국립오페라단의 공연 시간은 인터미션을 포함, 170분이었다. 셰익스피어 원작 희곡을 바탕으로 벤저민 브리튼이 1960년 발표한 현대 영어 오페라다. ‘오페라’ 하면 떠오르는 아름다운 아리아는 없었다.
뮤지컬의 경우 인터미션을 포함해 3시간에 달하는 작품이 흔하다. 공연 전 극장에서는 안내원들이 ‘스마트폰을 꺼서 가방 안쪽 깊숙이 보관해달라’고 반복해 고지한다. 스마트폰 때문에 빚어지는 민원을 방지하는 것이 1차 목적이겠지만, 이 요구는 스마트폰 자극 없는 완전한 몰입 환경을 조성하는 부수적 효과도 낸다. 인터미션 때 잠시 스마트폰 전원을 켜는 경우도 있지만, 공연장 바깥 세상과 접속이 끊어진 시간 동안 세상이나 내 삶을 바꿀 만한 엄청난 소식이 전해진 적은 없었다. 설사 그런 일이 있고 내가 즉시 그 소식을 알았다해도 바뀌는 것은 없다. 최근 내가 스마트폰을 끈 동안 전해진 가장 큰 뉴스는 응원하는 야구팀이 역전당했음을 알리는 스코어보드였다. 상심을 감추기 어려운 소식이었지만, 이 역시 경기가 모두 끝나고 아는 것이 내 정신 건강을 위해 나았을지도 모른다.
백승찬의 우회도로 구독 구독중 언젠가 약속 장소에 30여분 먼저 나갔는데 마침 스마트폰 배터리가 방전된 적이 있다. 당장 충전을 할 만한 방법도 없어서 마냥 30분을 기다렸다. 엄청나게 긴 시간이었다. 심지어 장단기적 삶의 방향을 생각해보기에도 충분한 시간이었다. 엄지 손가락으로 쇼츠나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훑었다면 녹듯이 사라질 시간이기도 했다. 아인슈타인의 이론을 떠올릴 것도 없이, 시간은 그렇게 상대적이다. 스마트폰을 통해 전해지는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 정보의 홍수 속에 우리의 시간은 녹아버린다. 카운터테너 필립 자루스키는 ‘마태 수난곡’ 공연을 앞두고 “3시간 동안 앉아 침묵을 지키며 이 미친 세상으로부터 스스로를 단절하는 것은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공연 시간은 자발적인 디지털 디톡스의 시간이다. 디지털 자극 없는 세상에선 또 다른 감각과 시선의 문이 열린다. 이를 위해 요즘 유행하는 ‘도파민’은 없을수록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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