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잃고 헤매는 치매노인에게 경찰이 묻고 노인이 답했다. “어르신, 집 근처에 큰 건물이 뭐가 있어요?” “미군공군기지가 있어.” “공군기지면 오산기지인가요?” “맞아.” ...
길을 잃고 헤매는 치매노인에게 경찰이 묻고 노인이 답했다. “어르신, 집 근처에 큰 건물이 뭐가 있어요?” “미군공군기지가 있어.” “공군기지면 오산기지인가요?” “맞아.” 경찰은 노인을 집에 데려다주기 위해 오산으로 갔다. 그런데 미군기지가 보이지 않았다. ‘오산 미군공군기지’는 오산에 없고 평택에 있기 때문이다. 한국전쟁 당시 평택군 송탄읍에 주둔한 미군공군기지는 ‘평택’ 혹은 ‘송탄’으로 작명되어야 했다. 그런데 미군 비행기 조종사들이 통신할 때, 평택, 송탄을 발음하기 어렵고 철자도 길어서 발음이 쉽게 되는 인접 지역 ‘오산’을 선택했다. 그래서 ‘오산 미군공군기지’가 되었다.평택 ‘오산 미군공군기지’에 도착했지만 노인은 자기 집을 찾지 못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노인이 언덕길을 보고 말했다. “생각났어. 우리 집 주소가 쑥고개야. 소나무숲이 우거졌고 어릴 적에는 숯고개라고 했지. 구운 숯을 사람들이 지게에 지고 오르내리던 언덕배기였어.
경찰이 노인 집을 찾아주고 헤어지려는 순간, 고막을 찢는 굉음과 함께 저공비행하는 미군 전투기가 보였다. 노인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미군기지가 들어서면서부터 쑥고개가 사라졌어.” “왜 사라졌냐”는 질문에 흐릿하던 노인의 눈빛이 또렷해졌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오산 미군기지 주변 기지촌에 미군들을 상대로 성매매하는 양공주들이 생겨나면서부터 사람들이 쑥고개를 씹고개라고 불렀어. 내 고향에 대한 모욕이야.” 한국전쟁은 국토를 파괴하고 무고한 인명을 살상했을 뿐만 아니라 우리 고유의 지명도 변질시켰다. 여성의 성기를 비하하는 기지촌 특유의 저속한 표현으로 불리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쑥고개는 주민들 청원으로 1981년에 송탄시로 변경되었다가 1995년에 주민투표로 평택과 송탄이 합병되어 지금은 평택시가 되었다.
두 장의 사진에 동일한 위치에서 50년도 넘은 ‘중앙의원’ 간판이 보이는 이 길은 탄현로인데 우리말 숯고개의 한자표기다. 1971년 사진 속, 도로 한복판을 활보하는 미국인 두 명을 보니 자기 고향땅에서 이방인 취급을 받아온 노인의 마지막 말이 떠올랐다. “나는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하늘에서 날아가는 새보다 미군 비행기를 더 많이 봤어.” 길을 잃은 건 치매노인이 아니다. 외세를 등에 업고 전쟁을 벌인 남북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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