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있을까? 40년 전, 내가 초등학생이던 시절에는 학교 정문 앞에 좌판을 깔고 병아리나 메추리 등을 파는 이들이 있었다. 상자 안에 가득 담긴 채 삐약거리는 이 생명체들은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귀여웠다. 한 마리에 500원, 당시에 아이스크림 다섯 개 정도의 가격이었다. 나는 가끔 어머니의 꾸중을 불사하고 구매를 감행했다. 한번은 병아리를 사...
아직도 있을까? 40년 전, 내가 초등학생이던 시절에는 학교 정문 앞에 좌판을 깔고 병아리나 메추리 등을 파는 이들이 있었다. 상자 안에 가득 담긴 채 삐약거리는 이 생명체들은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귀여웠다. 한 마리에 500원, 당시에 아이스크림 다섯 개 정도의 가격이었다. 나는 가끔 어머니의 꾸중을 불사하고 구매를 감행했다. 한번은 병아리를 사다가 큰 사과상자 안에 작은 상자들을 넣어주고는 “이건 침대, 이건 책상” 하면서 집을 만들어 주었다. 마당이 없는 아파트에서 살았으므로, 상자만이 내가 제공할 수 있는 최고의 거주지였다. 하지만 잘해준답시고 넣어준 작은 상자에 걸려 넘어진 병아리는 다리가 부러졌고, 다음날 아침 차갑게 식어 있었다.
병아리에 대한 추억, 혹은 ‘살해의 기억’이 갑자기 떠오른 건 김화용 작가의 전시 프로젝트 ‘집에 살던 새는 모두 어디로 갔을까’를 봤기 때문이다. 시리즈로 제작되고 있는 이 작품에서 김화용은 인간이 닭과 오리 등 가금류를 다뤄온 역사를 추적한다. 김화용이 주목하는 건 초국적 자본주의가 닭을 어떻게 “효율적인 단백질 상품”으로 취급하는가, 그리하여 생명이 먹거리가 되어 식탁 위로 올라오는 과정이 어떻게 추상화되어 버리는가다. 덕분에 우리는 그들의 뼈가 퇴적층을 뒤덮을 정도로 닭을 먹어치우지만, 그 ‘고기’가 어떻게 생산되는지, 그 폭력적인 과정에 대해서는 완벽히 무지한 상태로 머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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