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다정다감한 남자, 발가락이 닮은 아빠 남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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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다정다감한 남자, 발가락이 닮은 아빠 남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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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현의 삶과 문학- 부활과 웃음의 미학」 발간을 축하하며

그리운 내 아빠, 소설가 남정현의 문학과 인생에 대해 다룬 900페이지가 넘는 평전이 나왔다. 전 「말」지 기자 최진섭이 쓴 「남정현의 삶과 문학」이다. 2020년 12월에 세상을 뜬 아빠가 이 책을 보셨으면 얼마나 좋아하셨을까. 나에게 계속 책을 보여주고 읽어주고 다음 날도 또 설명해주셨을, 아빠의 어린아이 같은 맑고 하얀 눈동자와 신이 난 표정이 눈에 선하다.

아빠 남정현은 대표적인 반미작가, 민족문학 작가, 「분지」 필화작가로 불린다. 그런데 내 머릿속엔 그런 정치적인 이미지보다는 다정하고 세심한 아빠, 세상에 대한 연민과 사랑이 가득했던 사람으로 남아 있다. 초등학교 이전의 기억이 별로 없는 내게, 내가 다섯 살쯤 때였던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또렷하게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늦은 밤이었는지 새벽이었는지 자다가 깼는데 옆에서 아빠가 개다리소반을 놓고 밥을 먹고 있었다. 아빠를 보고 놀라서 ‘아빠’ 하고 부르고 울다가 곧 다시 잠들었다. 이날 난 아빠를 매우 오랜만에 본 듯하다. 아빠가 다시 내 옆에 있다는 안도감을 느꼈다. 세월이 흘러서도 이 기억과 그때의 감정이 사라지지 않아 검색을 해보니 아마도 1974년 긴급조치 사건으로 아빠가 집을 떠나 있다가 돌아온 날인 듯하다.이날의 기억을 빼고 고등학교 때까지 난 아빠가 글을 안 쓰는 소설가로만 알고 살았다. 외화번역을 해서 생활을 이끌어간 엄마는, 늘 방영시간에 쫓기며 밤을 새워 일했다. 그래서 우리 집에서는 그 시대의 일반적인 엄마, 아빠의 역할이 바뀌어 있었다. 아빠는 ‘다정도 병인 양하여’라는 시구에 꼭 맞는 사람이었다. 아빠의 다정함과 세심함은 딸인 나를 행복하고 풍요롭게 자라게 해줬다. 1983년, 군 복무 중 휴가 나온 오빠 남돈희 씨와 함께 찍은 가족 사진. 사진 제일 오른쪽이 남정현 작가, 그 옆이 어머니 신순남 여사, 왼쪽에서 두번째가 필자 남진희 씨다. ⓒ남진희 씨 제공 고등학교 때까지 새 교과서가 나오는 날은 아빠가 제일 신이 나는 날이었다. 아빠는 며칠 전부터 고르고 골라 사 놓았던 포장지와 비닐로 온종일 교과서를 쌌다. 내 책가방에는 늘 포장지와 비닐로 예쁘게 싼 교과서들과 아빠가 깎아준 연필이 가지런히 들어 있었다. 아빠는 내 소풍날과 운동회날도 항상 함께였다. 그 시절에는 아이와 관련된 일들은 엄마가 하는 게 당연하던 때라 아빠는 언제나 청일점이었다. 내가 아빠를 별로 창피하게 여기지 않고 엄마한테도 별다른 불평을 안 한 걸 보면 아빠는 다른 아이들의 엄마들하고도 잘 어울렸던 듯하다. 하긴 아빠는 내가 도시락을 두 개 싸가야 하는 학년부터는 따뜻한 밥을 먹으라고 저녁 도시락을 늘 학교로 갖다 줬으니, 어쩌면 엄마들 사이에서 유명했을지도 모르겠다. 아빠의 다정함과 끝없는 사랑은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하고 늦은 결혼을 하면서도 변함없이 계속되었다. 내가 쉰 살이 넘어서 이삼십대에 같이 일했던 잡지사 후배를 만났는데, 그 후배가 말하길, 자기는 지금도 내가 야근하면서 아빠한테 전화해 “아빠, 세탁소에서 옷 찾아줘” 하고 말했던 게 기억난다고 한다. 내가 아빠하고 통화할 때 아빠, 라고 부르기 전까지는 모두 친구와 통화하는 줄 알았다고 한다. 그 시절의 부녀지간의 대화나 말투로는 들리지 않았나 보다.한없이 자상한 아빠였지만, 철이 들면서 아빠는 왜 글을 안 써서 엄마를 그렇게 고생시키나 하는 의문도 품었었다. 소설가가 왜, 도대체 글을 안 쓰는 것인가? 시대적 탄압, 옥중 생활, 병약한 몸 등 여러 가지 이유를 아빠를 인터뷰한 글에서 봤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아빠는 글 쓰는 걸 너무 힘들어했다. 술술 써 내려가는 작가들도 있겠지만, 아빠는 말 그대로 뼈와 살을 깎아서 글을 쓰는 스타일이었다. 그렇게 온 에너지를 다해 쓴 글도, 찢어버리기 일쑤였다. 내가 옆에서 하도 기가 막혀 거의 다 썼는데 왜 찢냐고, 웬만하면 그냥 가라고 얘기한 적도 있다. 하지만 아빠에게는 그게 용납이 안 됐나 보다. 그래서 아빠에게는 소설이 형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기꺼이 받는 형벌.아빠는 호기심도 무척 많은 사람이었다. 생활 속에서의 호기심은 얼리 어답터로 이어졌고 사람에 대한 호기심은 연민과 사랑이 되었다. 원고지에서 컴퓨터로 글 쓰는 방법이 바뀌던 시기에 아빠는 굳이 내게 타이핑을 해달라 했다. 하기 싫었던 나는 필자들 대부분이 원고지로 보낸다고, 괜찮으니 그냥 보내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아빠는 나를 계속 졸라 기어이 타이핑을 하게 했고, 그 이후에는 자판 두드리는 법을 배워가며 직접 타이핑을 했다. 재밌는 거 신기한 걸 보면 눈이 동그래져서 알려달라, 해달라 하며 날 괴롭혔던 기억이, 지금은 눈물 나게 그립다.아빠가 응급실로 실려 가서 의식이 없던 날, 병상에 앉아 아빠 다리를 만지며 처음으로 자세히 아빠 발을 보았다. 남편과 나는 동시에 “앗!” 하며 서로를 쳐다보았다. 몹시도 마르고 작은 발, 긴 발가락, 발가락 사이를 벌리면 영락없는 오리발이라고 남편이 종종 놀리던 내 발과 아빠의 발은 너무나도 닮아 있었다. 평생을 안 봤던 아빠의 발, 평생을 몰랐던 아빠의 발. 그 발을 계속 만졌다. 내게 유전자와 사랑을 준 유일한 남자가 사람에 대한 따뜻한 애정이 넘쳐나는 사람이었다는 게 자랑스럽다. 저자 최진섭에게 9월 초에 소설 「분지」 발표 60주년 기념행사를 할 계획이라는 말을 전해 들었다. 아빠가 그 자리에 참석하지 못하는 게 너무 애석하고 아쉽지만 그래도 60주년을 기념하는 모임이 있다는 게 위안이 되기도 한다. 그날 행사장에서는 「분지」의 주요 구절을 나누어서 읽는 시간을 가질 것이라 한다. 나에게도 기회가 주어진다면, 「분지」 주인공 홍만수가 마지막에 어머니에게 한 말 “자, 보십시오. 저의 이 툭 솟아 나온 눈깔을 말입니다. 글쎄 이 자식이 그렇게 용이하게 죽을 것 같습니까. 하하하.”라는 대목을 읽고 싶다. 홍만수의 그 모습에서 나는 살아계신 아빠의 웃는 얼굴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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