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유럽연합조세관측소 발표조세회피처에 개인 자산 10조 달러
전에 살던 동네에 야채 가게가 있다. 품질은 좀 떨어지지만 마트보다 싸 손님이 항상 끊이질 않았다. 카드는 안 되고 현금만 받았지만 불평하는 사람 하나 못 봤다. 농산물을 취급하는 부가세 면세사업자란 걸 뒤늦게 알게 됐지만 현금으로만 거래가 이뤄지니 종합소득세 신고할 때 소득이 누락되는 건 아닌지 의심이 가곤 했다. 현금을 들고 다녀야 하는 불편함은 싼값에 살 수 있다는 매력에 참을 만 했고 주인 또한 카드 수수료를 아꼈다. 야채 가게에서 그리 멀지 않은 전통시장에 가끔 들르는 짬뽕 맛집이 있다. 계산할 때 주인은 어김없이 현금으로 하면 몇천 원씩 깎아주겠다고 한다. 지갑에 돈이 있을 때는 무조건 거래에 응한다. 탈세 공범이 되는 순간이다. 매출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지만 줄을 서야 먹을 수 있는 가게여서 현찰로 거래할 때마다 카드 수수료를 아끼고 장부상 수입도 축소되겠구나 싶다. 목돈이 오가는 카센터에서는 ‘부당 거래’ 크기가 좀 커진다.
지난달 22일 유럽연합조세관측소가 발표한 ‘세계 탈세 보고서’를 보면 조세회피처에 보유한 가계 금융자산 규모가 전 세계 국내총생산의 10%에 이른다. 약 10조 달러로 우리나라 지디피의 6배나 된다. 부자들이 케이맨 제도, 버뮤다,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와 저지섬, 바하마, 파나마, 스위스, 룩셈부르크, 싱가포르 등 이른바 조세회피처에 왜 재산을 옮겨놓을까.답은 분명하다. 재산을 더 불리기 위해서. 탈세 산업의 도움을 받아 부자들은 천문학적인 세금을 아낄 수 있다. 전 세계 부자를 유혹하는 조세회피처는 소득과 자산에 세금을 거의 매기지 않는다. 부자들의 역외 금융자산 가운데 대략 27%가 세금을 회피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매뉴얼 사에즈와 가브리엘 쥐크만 버클리대 교수가 미 전체 가구를 소득 구간별로 내야 하는데 내지 않은 세금이 차지하는 비중을 분석했더니 1973년에는 모든 소득 집단에서 비슷하게 나타났다. 하지만 2018년 그 비중이 노동계급이나 중산층은 10~12%지만 상위 0.01% 부자들은 20~25%에 이르렀다. 부자에게 세금 회피가 더욱 도드라진다. 오마하의 현인으로 불리는 투자 귀재 워런 버핏은 지난 2월 포브스 기준 세계에서 다섯 번째 돈이 많은 부자다. 그가 설립한 버크셔 해서웨이는 시가총액 기준 미 10대 기업 안에 든다. 2011년 그는 소득 가운데 세금 비중이 17.4%로 자신의 사무실 직원 평균보다 더 작다면서 부자치곤 이례적으로 부자증세를 주장했다. 오바마 행정부가 그의 이름을 따 연 100만 달러 이상 소득자는 중산층 가구보다 세금을 더 적게 내선 안 된다는 ‘버핏 룰’을 입법화하려 했으나 좌초했다.
이익의 미실현은 억만장자들의 조세 회피 전략 가운데 하나다. 버핏은 버크셔가 이익을 내더라도 배당하지 않은 채 회사의 가치를 키워 세금을 거의 내지 않으면서 재산을 불릴 수 있었다. 버핏 모델을 따라 메타, 테슬라도 배당금을 지급하지 않는다. 자산을 증식해 법인이란 저장소에 보관해두면 세금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법인이 조세회피로 세금을 덜 내면 법인을 소유한 주주의 이익은 커진다. 하지만 기업 본사가 위치한 나라의 세입은 줄게 된다. 문제는 연쇄적으로 나타난다. 법인세 세수가 줄면 나라 살림 규모를 줄이지 않는 한 개인 소득세 부담이 커질 수 있다. 트럼프의 법인세 감세 정책으로 미 연방 법인세는 대공황 이후 가장 낮은 지디피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1980년까지 40%가 넘던 법인세 최고세율은 지금 20%대 초반으로 낮아졌다. 1950년대 이후 지디피 대비 법인세수가 줄어드는 가운데 감세를 할 때마다 소득세의 비중이 커지는 모습을 보였다. 세 부담의 이전으로 기업과 그 소유주는 더 부자가 되지만 노동자와 중산 계층 다수는 더 가난해진다.사에즈와 쥐크만 교수는 2년 전 함께 펴낸 책 ‘그들은 왜 나보다 덜 내는가’에서 미국의 조세체계가 ‘거대한 역진적 비례세’ 구조라고 정의했다. 세금을 다 합쳐 놓고 보면 모든 소득 계층에 거의 비슷한 세율이 적용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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