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사관학교 홍범도(1868~1943) 동상 이전 결정 과정에서 불거진 가장 큰 논쟁거리는 ‘독립운동...
육군사관학교 홍범도 동상 이전 결정 과정에서 불거진 가장 큰 논쟁거리는 ‘독립운동사상 최대의 비극’이라 불리는 ‘자유시 참변’이다. ‘홍범도 학살 개입’ 같은 단정적 제목을 단 보도는 동상 설치 때부터 등장했다.
6월 19일 한인 무장부대의 군 간부 전체회의가 소집된다. 고려혁명군정의회 중심으로 무장부대를 통합하겠다는 결정안이 통과된다. “홍범도를 중심으로 한 간도의 독립군부대들이 고려혁명군의 손을 들어주었던 사실이 대한의용군에서 고려혁명군으로 통합의 주도권이 넘어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은 명확하다”고 윤상원은 봤다.장세윤은 2021년 논문 ‘독립전쟁의 영웅 홍범도의 귀환, 그 시사점과 과제’에서처럼 “홍범도는 자유시사변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선택과 결정을 내림으로써 휘하의 독립군 세력을 온전히 보존할 수 있었다”고 평가한다. 다른 독립군에 대한 학살을 막지는 못했다. 독립군 한쪽은 홍범도를 ‘배신자’로 여겼다.사할린 의용대 출신 김창수와 김오남이 1923년 8월 하바롭스크에서 홍범도를 불시에 공격할 때 이유는 참변 당시 칼란다리쉬빌리 군대에 맞서 싸우지 않았다는 것이다. 홍범도는 레닌에게서 받은 권총으로 이들을 사살하고 감옥에 갇혔다가 레닌과 칼리닌 등의 증명서를 얻어 석방된다.
신주백은 ‘[자유시 참변 후 100년]독립전쟁과 1921년 6월의 자유시 참변’에서 민족 운동 세력 사이 다툼에다 통제권을 쥔 러시아 공산당 사람들의 일관되지 않은 무원칙한 편 가르기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라고 봤다. “더구나 현지의 러시아 공산당은 외국인부대인 독립군과 혁명 성공을 지원하는 빨치산부대에 대한 국제주의원칙을 저버리고 자기중심적인 태도를 취함으로써 참변이 확대되는 근본 원인을 제공하였다”라고 했다.홍범도는 1922년 1월 21~2월 2일까지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극동민족대회에 고려혁명군 대표자로 참석해 레닌과 회견했다. 권총과 친필 서명이 든 기념품을 선물로 받았다. 1922년 말 고려혁명군이 소련 적군 제76연대로 개편되면서 고려혁명군에서 제대했다. 나이 54세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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