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원주 아카데미극장 철거의 배경
지방 권력이 바뀐 이후, 전임 시정에서 추진한 문화예술 사업이 충분한 검토와 토론 없이 중단되거나 훼손되는 일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강원도 원주는 그 전형적 사례다. 이곳 문화예술 활동가들에게 지난 2년은 지자체장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지역 차원에서도 '블랙리스트'가 작동할 수 있음을 여실히 실감한 나날이었다.지난 지방선거에서 12년 만에 정권 교체에 성공한 원강수 원주시정은 출범할 때부터 문화예술계를 향한 칼바람을 예고했다. 시장직 인수위원회 보고서가 전임 시정 문화예술 사업 상당수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며 재검토를 권고한 것이다. 하지만 전문성에 기반한 근거는 찾아보기 어려웠고, 주관적 판단에 치우친 서술이 주를 이뤘다. 보고서를 두고"사실관계를 왜곡했다","편향됐다","전임 시정 색깔 지우기"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하지만 원강수 시장은 '막대한 예산이 든다'는 이유로 순조롭던 재생 사업을 뒤집고 작년 4월 돌연 극장 철거를 발표한다. 그 자리엔 야외공연장과 주차장을 짓겠다고 했다. 이미 인근에 잘 활용되지 않는 야외공연장이 있고 대형주차타워 건립도 추진 중이었다는 점에서 의문부호가 달리는 결정이었다. 무엇보다 충분한 숙의를 거치겠다는 원 시장 말과 달리, 제대로 된 여론 수렴은 없었다. 행정 절차도 엉망이었다. 극장 용도를 보존에서 철거로 바꾸는 공유재산심의위원회 안건은 긴급하다는 이유로 서면 심의해 통과시켰다. 시의회에도 사전 공고 없이 철거안을 제출해 절차 위반 논란이 끊이질 않았다. 당초 6억 5000만 원이라던 철거 비용은 나중에 16억 5000만 원으로 대폭 늘어 철거 명분을 위해 의도적으로 낮게 책정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공사 도중 산업안전보건법, 석면안전관리법, 문화재보호법을 위반했다는 지적도 잇따랐다.
하지만 '총체적 부실이 있었다'던 원주시 주장과 달리, 정작 경찰은 거듭된 수사에서 연거푸 '혐의없음' 결정을 내린다. 문화도시 사업을 관의 통제 아래 놓고자 원주시가 '짜맞추기 감사'를 했다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극장 보존 운동 초창기부터 긴밀히 결합한 원주영상미디어센터는 작년 11월 수탁기관이 시장직 인수위 자문위원 출신 인사가 운영하는 업체로 바뀌었다. 해당 업체는 눈에 띄는 실적이 영화 제작 한 편뿐이라 전문성을 두고 논란이 일었고, 민간위탁 심사위원 중에 업체 대표와 같은 대학 같은 과에서 활동한 인사가 있어 이해충돌 소지가 있다는 지적까지 나왔다. 측근·보은 인사 논란에도 원주시는 '문제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는 결국 관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않은 문화예술 사업은 언제든지 블랙리스트·화이트리스트에 휘둘리기 쉬운 구조적 한계를 내재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지자체장의 권력을 제대로 견제하기 어려울 만큼 지역 민주주의가 허약하고, 정책 결정 과정에 다양한 시민 목소리를 반영하는 공론장이 부재한 상황이라면, 더더욱 문화예술 사업은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흔들릴 수밖에 없다. 지난 2년 동안 일련의 사태를 경험하면서 뼈저리게 느낀 지점이다.이런 문제의식을 토대로, 아카데미의 친구들은 작년 10월 30일 이후에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극장이 사라졌다고 끝이 아니라, 문화예술계를 향한 탄압이 지역 사회에 남긴 과제를 고민하면서 권력에 좌지우지되지 않는 지속가능한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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