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평화 협상 추진, 유럽-러시아 가스관 다시 열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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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산 가스 수입 재개하면 유럽 GDP 0.5% 증가

2023년 2월 탐사보도의 전설이자 퓰리처상 수상자인 세이모어 허시가 자신의 블로그에 ‘미국은 이렇게 노르트스트림2 파이프라인을 파괴했다’라는 글을 올려 큰 논란이 일었다. 미국이 조 바이든 대통령의 직접적인 지시로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전인 2021년 12월부터 6개월 동안의 준비 끝에 2022년 6월에 노르트스트림2에 폭발물을 부착하고, 3개월 후인 9월에 원격으로 노르트스트림2를 폭발했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유럽이 사용하는 천연가스의 40% 이상이 ⓒ사진=뉴시스미국은 러시아의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전례없는 강력한 제재를 주도하며 동맹국들의 동참을 요구했다. 러시아 원유, 가스, 석탄 수입을 금지하고 주요 은행을 국제 결제망에서 배제했으며 첨단 기술 수출을 차단했다. 미국은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가 낮아 제재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었다. 또한 전략 광물 수입은 유지하고 일부 은행에 예외를 뒀다. 반면, 유럽은 러시아 에너지 수입을 줄이며 높은 인플레이션과 경기 침체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미국은 제재를 이용해 자국산 LNG 생산을 늘리고 유럽 수출을 대폭 증가시켰다. 2021년에는 유럽 LNG 수입의 28%였으나, 2023년에는 50%를 넘어서며 유럽 최대 공급국으로 자리잡았다. 미국산 LNG는 높은 가격에 팔려 에너지 기업들에 이익을 안겨줬고 미국은 제재를 주도하면서 경제적·지정학적 이득을 극대화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사실상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평화 협상을 시작하면서 러시아 제재가 풀릴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이것이 유럽의 에너지 전략을 또다시 바꿀 수 있다는 이코노미스트 기사를 소개한다.3년 만에 맞이한 추운 겨울이 에너지 논쟁의 불씨를 지폈다. 혹한이 닥치고 아시아 국가와의 공급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유럽의 가스 거래 허브인 네덜란드 TTF의 현물 가격은 2월 10일 MWh당 58유로로 치솟으며 2년 만의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러던 중 2월 12일, 도널드 트럼프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위한 협상을 ‘즉시’ 시작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금융시장은 이 발언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따라서 일부 유럽 관료들이 러시아산 가스 수입을 재개하는 문제를 고려하는 것이 놀랍지 않다. 에너지 요금이 낮아지면 침체된 유럽 산업이 활력을 되찾고, 가계 부담도 줄어들 것이다. 골드만삭스의 야리 슈텐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면 유럽 GDP가 0.5%가량 증가할 수 있으며, 이는 대부분 천연가스 가격 하락에서 비롯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러시아산 가스를 다시 수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나라는 그것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평화 협상을 추진하고 이행할 동기를 준다고 말한다. 헝가리와 슬로바키아가 대표적이다. 최근 이코노미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차기 독일 총리로 유력한 프리드리히 메르츠도 ‘당분간’ 러시아산 가스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지만 그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았다. 평화협정이 체결된다면 엄청난 반전이 될 것이다. 물론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의 공식 입장은 러시아산 가스 수입 재개와 우크라이나 평화 협상 사이에 ‘어떠한 연관성도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EU는 러시아라는 적대적인 이웃 국가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2027년까지 러시아산 가스와 석유 수입을 전면 중단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2022년 러시아가 유럽으로 향하는 주요 가스관인 노드스트림1을 폐쇄하면서 대부분의 공급이 끊겼고, 우크라이나를 경유하는 또 다른 수송관도 올해 1월 1일부로 가동이 중단됐다. 현재 EU의 러시아산 가스 의존도는 2021년 45%에서 10%로 급감했다. 한편, 러시아는 대체 시장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해 막대한 타격을 입고 있다. 2022년 가스 판매가 연방 예산의 13%를 차지했으나 현재는 8%로 줄어든 상태다. 2023년 국영 가스 기업 가스프롬은 1999년 이후 처음으로 적자를 기록했다. 결국 가스관을 다시 열 것인지 여부는 파이프라인 양끝과 그 경유지에 위치한 국가, 즉 러시아, 독일, 우크라이나, 그리고 몇몇 동유럽 국가의 결정에 달려 있다. 이들 국가는 외부의 강한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현재 EU는 정상 운영시 연간 약 3,200억 입방미터의 가스를 소비한다. 저장 용량은 약 1,150억 입방미터로, 이는 소비량의 3분의 1에 해당한다. 올겨울이 시작될 때 비축량은 거의 최대치에 가까웠지만, 한파와 공급 차질로 인해 예상보다 더 많은 가스를 소진했다. 현재 저장량은 지난해 같은 시기의 66%에서 48%로 감소했다. 높은 가격 탓에 화학 제조업체와 제련소 같은 대규모 소비자가 생산량을 줄이고 있고 이미 부진했던 EU 전역의 산업 생산이 더욱 위축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번 여름에 닥칠 것이다. EU 규정에 따르면 11월 1일까지 비축량을 90%까지 채워야 한다. 통상적으로 4월에서 10월 사이에 저장고를 다시 채우는데, 올해는 평소보다 더 많은 가스를 확보해야 한다. 그런데 아시아 수입업체도 같은 시기에 재고를 늘리려 하고 있어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추가 공급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미국과 카타르에서 대량의 액화천연가스가 유럽으로 유입될 예정이지만 대부분 내년에나 도착할 예정이다. 이로 인해 이번 여름 인도분 가스 가격이 다음 겨울 인도분보다 높은 이례적인 현상이 나타날 예정이다. 가스를 저장할 이유가 없어지는 것이다. 독일의 가스 규제 당국은 비축을 장려하기 위해 보조금을 검토 중이며, 일부 국가는 EU의 저장 목표를 완화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헝가리와 슬로바키아는 여전히 터키를 통해 러시아산 가스를 받고 있고 오스트리아를 포함한 몇몇 국가는 북유럽을 경유하는 재기화된 러시아산 LNG도 수입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들은 연료에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고 있으며, 공급 안정성도 과거만 못하다. 올해 초 중단된 우크라이나 경유 공급이 재개된다면 이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동시에 가스 공급을 둘러싼 경쟁이 완화되면서 유럽 전역의 가격도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의 평화 협상 발언 이후 TTF 가격이 이미 9% 하락했다. 콜롬비아 대학의 앤 소피 코르보는 우크라이나 가스관이 2023년에 수송했던 150억 입방미터만 다시 공급해도 TTF 가격이 최근 정점보다 3분의 1가량 낮아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MUFG 은행은 2026년까지 우크라이나를 통한 공급량이 2023년보다 늘어나면 가격이 다시 반 토막 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의 기존 계약을 갱신하지 않겠다며 단호한 입장이지만 우회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슬로바키아 국영 가스 기업은 우크라이나에 자회사를 설립하고 수송 면허를 신청 중이며 이를 통해 러시아산 가스를 다시 들여오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더 대담한 선택지도 있다. 연간 550억 입방미터를 유럽으로 수송했던 노드스트림1을 다시 가동하고 한 번도 운영되지 않았던 노드스트림2까지 활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넘어야 할 장벽이 만만치 않다. 과거 러시아 에너지에 대한 의존으로 이번에 큰 타격을 입은 독일이 이를 승인해야 한다. 또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공격으로 노드스트림의 네 개 가스관 중 세 개가 파손된 상태다. 옥스퍼드 에너지 연구소의 마이크 풀우드는 복구에 수억 달러가 소요될 것으로 예상한다. 그리고 러시아에 대한 경계심이 가장 강한 EU 국가들은 에너지 의존도가 다시 높아지는 것을 강력히 반대할 것이다. 여기에 트럼프 변수도 있다. 미국 대통령으로서 그는 유럽이 미국산 LNG를 더 많이 구매하길 원할 것이다. 이는 러시아 공급이 재개되지 않을 경우 현실화될 시나리오다. 반면, 러시아산 가스 일부를 되돌리는 것은 트럼프가 원하는 노벨평화상의 대가로 충분히 고려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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