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패착, 김구 곁 떠나 이범석의 족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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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석 장군은 1946년 6월에야 귀국했다. 해방 뒤 중국에 남아서 일군에 끌려간 한인 청년들의 귀환문제 등을 처리하느라 귀국이 늦은 것이다. 귀국한 이범석은 조선민족청년단(족청)을 조직하여 청년운동을 시작했다. 장준하가 참여하게 된 족청(族靑)에 대한 약간의 설명이 필요하겠다. 족청은 1946년 10월 민족정신의 ...

해방 뒤 중국에 남아서 일군에 끌려간 한인 청년들의 귀환문제 등을 처리하느라 귀국이 늦은 것이다. 귀국한 이범석은 조선민족청년단을 조직하여 청년운동을 시작했다. 장준하가 참여하게 된 족청에 대한 약간의 설명이 필요하겠다. 족청은 1946년 10월 민족정신의 전통을 계승할 청년운동의 모체가 된다는 명분을 내걸고 결성되었다. 초기의 면모는 단장 이범석·부단장 안호상·전국위원 김관식·김활란·이철원·현상윤·이용설 외 32명, 이사 백낙준·최규동 외 10명, 상무이사 김형원·노태준·박주병 등이다.

족청은 단지삼칙을 강령으로 내세웠다. ① 우리는 민족정신을 환기하여 민족지상·국가지상의 이념하에 청년의 사명을 다할 것을 기한다. ② 우리는 종파를 초월하여 대내자립·대외공존의 정신으로 민족의 역량을 집결할 것을 기한다. ③ 우리는 현실을 직시하며 원대한 곳을 바라보고 비근한 것부터 착수하여 건국도상의 청년다운 순감을 바칠 것을 기한다. 족청은 미군정의 지원으로 수원에 훈련소를 설치하고 1개월 과정의 청년간부 훈련에 착수하여 훈련지원자 2만여 명 중에서 200여 명을 선발하여 1946년 12월 제1기생 입소식을 갖고, 제7기생부터는 여성간부 훈련생도 입소시켰다. 강사진은 정인보·안호상·배성룡 등 20여 명이 강론을 맡고 이범석도 혁명적인생관, 혁명적민족관 등을 강의했다.장준하가 이범석을 존경해 온 것은 사실이었다. 그의 패기와 군인다운 결연한 행동 등은 장준하의 이상형이었다. 하지만 김구 주석의 곁을 떠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경교장을 포함하여 해방정국에서 지도자들의 모습에서 실망을 느낀 것은 사실이지만, 김구 주석에 대한 믿음과 존경심은 변함이 없었던 터였다. 이범석의 재촉은 성화와 같았다. 경교장은 당신이 없어도 다른 사람이 할 수 있지만 족청에는 당신이 꼭 필요하다면서, 주석에게 직접 말씀을 드리겠다는 것이다. 장준하는 고심 끝에 결단했다. 그리고 김 주석에게 꺼내기 어려운 사정을 말씀드렸다. 주석은 즉석에서 철기를 도와주라고 흔쾌히 양해했다. 김구 주석과 결별한 장준하는 1949년 12월 족청의 중앙훈련소 교무처장을 맡아 이범석의 솔하로 들어갔다. 중경에서 임시정부를 떠나 이범석이 주도하는 OSS 부대로 옮긴데 이어 두 번째로 그와 손을 잡은 것이다. 장준하가 김구 주석과 결별하고 이범석 휘하로 옮긴 데는 무엇인가 석연치 않는 부분도 있는 것 같다.이에 비해 이범석은 아직 두 사람의 반열에 오르기는 어려운 차하 순위의 지도자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준하와 같이 정의감과 민족정신이 투철하고 예리한 관찰력을 지닌 사람이 제1인자의 진영을 떠나 이범석의 족청으로 이적한 것은 얼른 납득하기가 쉽지 않은 일이다. 장준하는 이 대목과 관련하여 자서전에 어떤 설명도 남기지 않았다. 그의 비정치적인 성향도 작용했을 터다. 장준하의 결정은 실책이였음이 곧 현실로 드러났다. 족청의 중앙훈련소는 '단지삼칙'의 정신과는 달리 마구잡이식으로 청년들을 끌어들여 숫자의 확산에 열을 올리고,"이범석은 김구 주석 편이 아니라 이승만의 노선과 밀명에 따라 반공을 표방하며서 뒤로는 좌익세력과 타협하고 그들을 끌어들이기에 기탄이 없지를 않은가, 족청은 국내의 수 많은 정당·단체들과 하나도 다를 게 없는데 거기에 자신은 이범석만을 보고 뛰어 들어와 바보가 된 꼴이었다." 족청은 하부조직을 강화하여 막강한 조직이 형성되면서 독재운동 단체라는 비판을 듣게 되고, 1948년 정부수립과 더불어 이범석은 초대 국무총리와 국방장관을 겸임하였고, 1950년에는 내무장관을 역임하고, 1951년 이기붕 중심의 자유당이 결성될 때 별도의 '원외자유당'을 창당하는 등 이승만 체제의 일역을 맡게 되었다. 장준하는 이와 같은 이범석의 행태에 실망하고 족청을 떠났다. 그리고 다시는 정계에서 승승장구 영달하는 이범석을 만나지 않았다. 결국 백범을 떠나 철기의 족청에 들어간 것은 장준하의 패착이었고, 본인도 이것을 인정했다.덧붙이는 글 | 는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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