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은 밤 풍경 속, 기둥과 벽면에 살아 꿈틀대는 인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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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은 밤 풍경 속, 기둥과 벽면에 살아 꿈틀대는 인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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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것은 정신에서 창조되는 것이지 묘사되는 자연에서는 아니다.' - 들라크루아 예술은 '새로운 눈' 예술은 '새로운 눈'을 제시하는 것이다. 미술은 보이지 않은, 볼 수 없었던 이미지를 현실화 시켜주는 것이다. 그 이미지로 관람자의 가슴에 정서적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그 파장이 관람자의 삶의 기준을 흔들어놓...

예술은 '새로운 눈'을 제시하는 것이다. 미술은 보이지 않은, 볼 수 없었던 이미지를 현실화 시켜주는 것이다. 그 이미지로 관람자의 가슴에 정서적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그 파장이 관람자의 삶의 기준을 흔들어놓는다면 예술이라는 칭호를 갖게 된다. 그 새로운 눈은 관람자들을 놀라게 하는 것이다. 평범한 일상이라는 잔잔한 호수에 일으키는 파문이다. 즉각적이든, 은근하듯 순간적이든, 지속적이든 놀랍게 만드는 정서적 파장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이성훈 작가의 사진 작품은 분명 새로운 눈을 제시하는 것이고, 얼핏 보면 그냥 밤 풍경인 그 새로운 풍경은 우리에게 어떤 먹먹함 같은 감정을 불러오며 많은 생각들을 꼬리 물게 한다. 슥 보고 지나지 마시고 최소한의 빛으로 지탱하는 도시의 담벼락, 길바닥, 강 다리 기둥, 지하 보도의 기둥에서 보일 듯 말 듯 미세하게 일렁이고 있는 인체들을 발견해 보시라.작품에 등장하는 인체는 대부분 누드다. 이 인체들은 벽면과 기둥 안에서 욕망을 억제하고 있는 듯하다. 자신의 의지이든, 타인과 사회에 의해서든 자신을 침잠시키고 있다. 욕망하되 욕망하려 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분출하지 않는 의지는 내부로 향하게 돼 있다. 벌거벗은 육체는 정신과 교합을 이루는 것이다. 그 정신이란 영혼과 다름없는 말이다. 누드의 육체에 영혼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영혼과 육체가 뒤섞인 존재로 존재의 근원으로 달려가려는 것이다.인체들은 박제돼 있는 듯, 스며있는 듯, 각인돼 있는 듯, 아니 그 안에서 살고있는 듯하다. 동적인 자세도 움직이는 듯 보이게 하지만 둥글거나 곡면의 벽면, 기둥들이 살아있음을 더욱 회상시킨다. 회색 도시의 어둠 속에서 인간은 꿈틀거리고 있는 것이다. 마치 오래전부터 있었던 것처럼"이미 거기에 존재"하고 있었다. 풍경화나 인물화는 '사라짐', '죽음'을 붙잡아두는 것이다. 사진도 마찬가지다. 찍는 순간, 피사체는 과거로 흘러간다. 사라진다. 죽음, 없어지는 것이다. 그 '없음'을 자각하는 그 찰나에 '있음'을 자각하는 것이다. 사진은 비존재의 현장이자. 존재의 현장인 것이다. '있음'과 '없음'의 찰나를 '순간 멈춤' 하여 보여주는 것이다.사유의 강으로 인도하는 작품 하나의 이미지는 관람자의 경험과 인식에 따라 표피적으로 우리의 욕망을 자극하는 때도 있지만 그 이미지로 존재의 의미를 성찰하게 하고 깊은 사유의 강에 스며들게도 한다. 그 이미지가 우리의 존재 이유를 묻고 세상에 대한 인식을 바꾸어 결국 우리의 삶 자체와 사회 전체를 바꾸는 원동력이 된다면 그것은 예술이 가진 긍정적 의미를 왕성하게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성훈의 사진은 사회를 바꾸는 데까지는 몰라도 우리 내면에 깃들어 있는"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나는 잘 살고 있는 것인가?"라는 정도의 질문을 불러일으키는 역할은 충분히, 넉넉히 하고 있다. 그래서 이성훈의 밤 풍경 작업은 예술로서의 가치를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진정한 예술은 치유효과도 불러일으킨다. 마치 피안의 세계처럼 잡스러운 현실을 망각하게 하고, 불안이나 우울,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또 궁극적인 관점으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만듦으로써 자기 생각, 관점에 균열을 일으켜 자신의 삶을 변용시키고, 삶을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격상시킨다. 다시 말해 예술 치유는 심리적 위안뿐 아니라 감각과 사고의 재편도 가져온다는 것이다. 즉 인간의 삶이라는 통상의 원칙과 전혀 다른 관점에서의 새로운 형태와 의미를 생각하게 되고 그쪽으로 삶의 방향을 틀게 만든다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것도 그것을 볼 수 있는 눈이 없으면 가지지도 못하고 당사자에게 의미도 없다. 전시장에 가야 작품을 볼 수 있듯이 치유라는 것도 열린 마음으로 접근해야 얻을 수 있는 것이다.이성훈의 초기작업엔 에로스 열망이 더 강렬하였다. 지난 전시회 작품에선 '죽음'과 '욕망'이 함께 하기 시작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말한 타나토스와 에로스적 열망이 한 몸에서 일렁거리고 있는 자신을 드러냈었다. 삶과 죽음이 한 몸에 있는 그 현실을 보지 않고 외면하는 세상 사람들에게 외면하지 말라고 회피하지 말라고 외치는 작업이었다. 이번 작품에서 이성훈은 외치지 않는다. 라는 책 제목처럼 담담히 말하고 있다. 조용히 세상을 바라보며 동시에 자신의 내면을 걷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우리에게 던져진 그의 밤 풍경은 그의 내면 풍경이다. 어차피 예술은 '자기로부터의 출발'인 예술 제작 방법을 충실히 따른 듯하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난 작가가 타나토스와 에로스와 함께 일렁이며 살고 있지만, 삶과 죽음의 욕망을 제쳐도 보고 뒤집어도 보고 멀리 던져 놓고 보기도 하고, 제3자처럼 객관화시켜 보기도 하며 마치 삶을 관조하는 듯한 상태가 된 듯하다. 근래 수필을 많이 쓰면서 그의 삶이 한 단계 높은 삶으로의 고양된 것이 아닌가 한다.복제기술시대에 사진은 유효적절한 예술작업이다. 지상전시회란 책 형태로 사진집을 내는 것이다. 사람 키를 넘어서는 압도적 크기로 인화된 사진이 아니라면 책이 대중을 만나는 데에 오히려 유효적절한 방법일 수 있다. 이번 라는 사진집은 이성훈이 두 번째로 여는 지상 사진전이다. 자신이 살아온 삶에 대한 솔직한 고백 같은 글은 작품을 감상하는 데 도움을 주는 양념 정도이지 이 사진집의 본 목적은 사진전이다. 책으로 된 사진 전시가 좋은 것이 무엇인가? 언제든지 꺼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책장에 꽂아두었다가 무시로 꺼내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영혼과 육체가 버무려져 스며있는 밤 풍경'을 보면서 사유의 시간을 가지시기를 권해본다. 아쉬운 점은 32 작품이나 한 작품을 양 페이지 가득 차게 작품을 배치하였다는 점이다. 그럼으로써 책 가운데가 완전히 펼쳐지지 않기 때문에 작품을 온전히 감상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작품은 사방에 흰색 여백이 많을수록 작품에 더 집중하게 만들고 그 이미지가 강렬해지는 법이다. 전시장의 넓은 흰 벽면과 그림의 크기가 어떠한가를 고려해보면 알 일이다. 지상전시에도 그런 부분을 반영하여 흰 여백을 많이 살리면 작품이 더 인상적으로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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