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 미국 가짜뉴스 만들고 군경 작전 벌여 주민 1만 4천여 명 살해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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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의 진상은 미군 비밀자료 등에서 확인된 미국의 군사적 개입, 친일경찰과 군인들의 양민학살 등에 대해 제주4‧3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가 공개한 관련 자료 등을 통해 그 전모의 일부가 들어나는데 이를 2회에 걸쳐 소개한다. 제주 4.3의 발생 원인의 하나로 미국의 남한 단독정부 수립 추진 반대가 손꼽힌다. 따라서 제주 4.3을 다루기 위해서는 미국의 유엔을 통한 남한 단독 정부 수립 추진에 대한 설명이 우선되어야 한다. 미국은 소련과 협의하던 한반도 신탁통치 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한국문제를 1947년 9월 23일 유

제주 4·3의 진상은 미군 비밀자료 등에서 확인된 미국의 군사적 개입, 친일경찰과 군인들의 양민학살 등에 대해 제주4‧3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가 공개한 관련 자료 등을 통해 그 전모의 일부가 드러났는데 이를 2회에 걸쳐 소개한다.

유엔총회 본회의에서 11월 14일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의 감시 하에 한반도에서 총선거를 실시하자는 미국 측 안을 40:0이라는 압도적 다수결로 채택함으로써 모스크바협정이 규정한 5개년 신탁통치안이 묵살되었다. Syngman Rhee and American Involvement in Korea, 1942-1960: A Personal Narrative. Seoul, South Korea: Panmun Book Company. p. 149. OCLC 568651495). 제주 4·3 발생 후 이승만 정부가 수립되고 이어 1948년 10월 19일 전라남도 여수시에 주둔 중이었던 14연대 군인들이 제주 4·3 사건 진압을 위한 출동 명령을 거부하고 무장 반란을 일으켰다.

많은 제주도민은 교전 중 사망한 것이 아닌 집단 학살이라는 형식 속에 참변을 당했다. 미군정은 살해 현장에서 직접 개입하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배후에 숨는 식으로 지휘했다. 그러나 그 목적은 분명했다. 소련의 공산주의 영향력이 남한에까지 확산되는 것을 저지한다는 것이었다.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의 조사 결과에 의하면, 제주 4·3 사건 당시의 제주도 상황은 해방으로 부풀었던 기대감이 점차 무너지고, 미군정의 무능함에 대한 불만이 서서히 확산되는 분위기였다. 약 6만 명에 이르는 귀환인구로 초래된 실직난, 생필품 부족, 전염병의 만연, 대흉년과 미곡정책의 실패 등 여러 악재가 겹쳤다.

한편 경무부에서는 3만여 시위군중이 경찰서를 포위 습격하려고 했기에 불가피하게 발포했다고 해명하면서 민심이 들끓었다. 이에 남로당은 이런 민심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 조직적인 반경활동을 전개했다. 처음에는 전단지를 붙이는 일과 사상자 구호금 모금운동을 벌였다. 미군 보고서는 파업원인을 ‘경찰발포로 도민 반감이 고조된 것을 남로당 제주조직이 선동해 증폭시켰다’고 분석했다. 또한 “제주도 인구의 70%가 좌익에 동조자”라고 기술했다. 한술 더 떠 경무부 최경진 차장은 기자들에게 “제주도 주민 90%가 좌익색채”라는 발언까지 했다. 1948년 4월3일 새벽 2시, 한라산 기슭 오름마다 봉화가 붉게 타오르면서 남로당 제주도위원회가 주도한 무장봉기가 시작되었다. 350명의 무장대는 12개 경찰지서와 서북청년회 등 우익단체 단원의 집을 지목해 습격하였다.

평화협상 결과는 ①72시간 내에 전투를 완전히 중지한다 ②무장해제는 점차적으로 하되 약속을 위반하면 즉각 전투를 재개한다 ③무장해제와 하산이 원만히 이뤄지면 주모자들의 신병을 보장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를 토대로 평화협상 제안하는 제9연대장의 전단지 내용은 아래와 같았다.우리는 과거 반삭 동안에 걸친 형제 제위의 투쟁을 몸소 보았다. 이제부터는 제위의 불타는 조국애와 완전 자주통일 독립에의 불퇴전의 의욕을, 그리고 생사를 초월한 형제 제위의 적나라한 진의를 잘 알았다. 이에 본관은 통분한 동족상잔, 골육상쟁을 이 이상 백해무득이라고 인정한다. 우리 국방경비대는 정치적 도구가 아니다. 나는 동족상잔을 이 이상 확대시키지 않기 위해서 형제 제위와 굳은 악수를 하고자 만반의 용의를 갖추고 있다. 본관은 이에 대한 형제 제위의 회답을 고대한다. 우리가 회합할 수 있는 적당한 시일과 장소를하한 방법으로든지 제시하여주기 바란다.

5‧10선거를 반대하는 유혈 사태가 전국적으로 줄을 이어 발생하고 좌파 뿐만 아니라 대중의 지지를 받는 김구, 김규식 등 우익과 중도파 민족주의자들까지 선거 반대에 나서는 가운데 ‘단선‧단정 반대’를 기치로 한 무장봉기가 제주도에서 벌어지자 미군정은 크게 긴장했다. 브라운 대령은 당시 사태가 억압 때문에 민심이 폭발한 것이므로 그 원인을 치유하라는 여론이 높았으나 “원인에는 흥미 없다. 나의 사명은 진압 뿐”이라며 강경 진압 작전을 본격화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제9연대는 모든 중산간마을 주민들이 공공연하게 게릴라에게 도움과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는 가정 아래 마을 주민에 대한 대량학살계획을 채택했다. 1948년 12월까지 제9연대가 점령했던 기간 동안 섬 주민에 대한 대부분의 살상이 발생했다.

무장대는 1948년 11월 중순 이후 토벌대의 초토화작전이 벌어지자 자신들에게 협조하지 않는 마을을 습격했다. 이 때 남원리·위미리·성읍리·세화리 주민들이 크게 희생당했다. 이 같은 행위는 향후 주민들과 무장대를 갈라놓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1948년 12월 말, 경비대 총사령부는 대전 주둔 제2연대와 제주 주둔 제9연대를 맞교대시켰다. 제9연대장 송요찬과 마찬가지로 제2연대장 함병선도 일본군 지원병 준위 출신이었다. 제2연대는 여순사건 때 전투경험을 했고, 특히 제3대대는 서북청년회 출신으로만 구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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