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외전] 조선귀족이었던 김가진의 대변신... 죽기 전까지 임시정부서 항일투쟁
일본은 대한제국을 병합한 1910년 8월 29일 조선귀족령을 공포하고 76명을 조선귀족으로 선정한 뒤 10월 7일 작위 수여식을 열었다. 조선시대의 귀족이 아니라 '조선귀족'이다. 식민지 조선의 새로운 특수계급인 조선귀족을 창설한 이 조치에 관해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의 제3-1권은 이렇게 설명한다.
그러나 76명 전원이 작위를 수령한 것은 아니다. 공족과 후작·백작·자작에 이어 최하위인 남작으로 선정된 김석진·민영달·유길준·윤용구·조경호·조정구·한규설·홍순형은 거절했다. 김석진의 경우에는 1910년 9월 8일 아편을 먹고 자결하는 방법으로 조만간 부여될 작위를 거부했다. 조러밀약 시도는 남진하는 러시아와 저지하는 영국의 패권경쟁 속에서 조선의 고종이 뜻밖에도 러시아 편을 든 세계적인 빅뉴스였다. 이런 사건에도 관련됐으니 김가진은 구한말 조선 외교의 최일선에 있었던 인물이다. 위 논문은 1894년 3월 31일 자 이 조선 정계의 파벌 구도를 소개하면서"친일당으로는 박정양·김가진·이학규·김사철"을 거명했다고 보도했다. 논문은 이 시기의 일본 보도들을 종합해"그중에서도 일본이 주목한 중요 개혁당은 김가진·조희연·권영진·유길준·김학익·안경수였다"고 정리한다. 세도가문 출신의 외교관이라는 점 때문에도 주목했겠지만, 일본이 주목한 것에는 그의 개인 역량도 있었다. 위 논문은 이렇게 설명한다.
친일파인 일진회 이용구는 이완용 못지않게 일본을 도왔지만 조선귀족이 되지 못했다. 농민의 아들이고 동학교도 출신인 이용구는 김가진보다 훨씬 많은 친일을 했지만, 누구를 표창하는 게 식민지배에 더 유리한가 하는 기준에서 김가진에게 밀린 것이다. 만 73세에 각성한 김가진은 37세에 각성한 사람보다 훨씬 열정적이 됐다. 그때까지의 삶을 훌훌 털고 독립운동가로 나선 그는 무장 독립투쟁이라는 가장 강력한 방식을 선택했다. 이규수 논문은"김가진은 대동단 총재가 되어 국외로 탈출했다"고 한 뒤 이렇게 기술한다.
United States Latest News, United States Headlines
Similar News:You can also read news stories similar to this one that we have collected from other news sources.
7월 소비자물가 2.6% 상승…석유류·과일 '고공행진'(종합)(세종=연합뉴스) 박재현 기자=소비자물가가 넉 달 연속으로 2%대 오름세를 기록하면서 안정된 흐름을 이어갔다.
Read more »
한국 땅 밟은 필리핀 가사관리사 100명…'한국 생활 기대돼요'(영종도=연합뉴스) 최윤선 기자='필리핀에 있는 대학에서 마케팅을 공부했습니다. 한국에서 좋은 추억 많이 만들고 싶습니다. 기대가 큽니다.'
Read more »
'요양병원에 왜 있지?' 이런 환자가 14%요양병원 '묻지마 입원' 급증'식사도 잘 나오고 생활 편해'3년이나 머무는 환자도 있어건강보험 재정 줄줄이 누수
Read more »
[플랫 레터] 🍊사랑이 또 이겼다 🌈동성 부부도 '생활 공동체'로
Read more »
문화 | 연합뉴스문화 | 생활 실시간 전체기사입니다.
Read more »
'약세장 버텨라'…S&P지수 ETF로 피난이달들어 증시 급등락 지속에실적 안정된 경기방어株 인기S&P500 ETF 353억달러 유입기술주 편입 ETF는 매수 부진국내 주식 '빚투' 규모도 축소
Read mor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