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현충원에 묻힌 이야기] 조선어학회 사건 33명 중 10명이 대전현충원에 안장
1942년 10월 1일에 시작된 '조선어학회 사건'은 위와 같은 어느 조선 여학생의 일기장에 적힌 한 줄의 문장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일기장의 주인은 함흥영생고등여학교 학생 박영희. 당시 '국어'는 '일본어'였던 시절이었습니다.
경찰은 현직에 있어 도주의 우려가 적은 김학준과 최복녀의 신문은 뒤로 미루고, 학교를 그만둔 정태진에게 먼저 출두명령서를 발부했습니다. 정태진은 11년간 근무했던 영생고등여학교를 1940년 5월에 떠나 서울로 가서 조선어학회 사전편찬 일을 돕고 있었습니다. 1942년 9월 5일에 홍원경찰서로 연행되어온 정태진은 20여 일 간 계속된 고문으로 조선어학회가 독립운동단체라고 허위자백하고 말았습니다. 김법린·이중화·이우식·김양수·김도연·이인에게는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하고, 장현식은 무죄를 선고해 7명은 풀려날 수 있었습니다. 징역형을 선고받은 5명 중 정태진은 복역을 마치는 것이 오히려 상고보다 빠를 것이라 생각해 상고를 포기하고 7월 1일 출옥했습니다. 이극로·최현배·이희승·정인승 4명은 판결에 불복해 바로 상고했으나 8월 13일자로 기각되었습니다. 이들은 이틀 뒤인 8월 15일에 일제가 패망하면서 8월 17일에 풀려났지만, 실질적으로 3년간의 옥고를 치룬 것이었습니다.일제는 조선 땅을 강점했을 뿐 아니라 강력한 동화정책으로 조선인들에게 일본어를 쓰도록 강제했고, 일본 정신을 갖도록 강요했습니다. 조선의 한글학자들은 비록 나라를 빼앗겼지만 민족의 정신을 담은 우리말을 지켜야만 빼앗긴 나라도 되찾을 수 있다는 신념을 갖게 되었습니다. 우리 말과 글을 지키는 것은 또 다른 형태의 독립 투쟁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발생한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상당수 조선어학회 구성원이 투옥되고 모진 탄압을 받았습니다. 이윤재와 한징, 2명이 옥사했습니다. 말 그대로 우리의 말과 글을 지켜내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독립 투쟁이었습니다.조선어학회 사건으로 고초를 당한 33명 중 10명이 대전현충원에 안장되어 있습니다. 옥사했던 이윤재 선생과 한징 선생은 1962년에 독립장을 추서받았고, 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제1-1묘역 499번과 독립유공자 제1묘역 397번에 각각 안장되어 있습니다. 1990년 애국장을 추서받은 신윤국 선생도 독립유공자 제1묘역 173번에 안장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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