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①] '아시아 인권재판소' 설립 꿈꾸는 재일 3세 변호사 구량옥
벌써 30여 년 전인 1997년 늦가을의 어느 날이었다. 교토조선중급학교 3학년에 다니던 구량옥은"주위를 잘 살피고 조심하세요"라는 선생님의 당부를 뒤로 하고 집으로 향했다. 지하철역사 안으로 막 들어섰을 때 벽면에 붙어있는 종이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얼핏 보니 일본 극우가 재일조선인과 한국인을 향해 내뱉는 '구더기', '바퀴벌레' 같은 욕설이 눈에 들어왔다. 구량옥은 몸이 움찔했다. 이제는 대놓고 공공장소에 이런 선전물까지 붙인단 말인가. ▲ 치마저고리 칼질 사건은 연극으로도 만들어졌다. 재일동포 민족극단 '달오름'의 1인극이다. 주인공은 강하나. ⓒ 김지운제공구량옥이 이 호소문을 마주하기 몇 해 전부터 길거리에서 조선학교 여학생 교복에 칼질을 하는 테러가 일어났다. 남학생 교복과 달리 여학생 교복은 눈에 잘 띄는 치마저고리여서 표적이 되기 쉬웠다. 일본 극우의 이런 소행은 한 번으로 그치지 않고 여러 번 일어났다.
조선학교 학생들은 이런 일을 자주 당했다. 선배 한 명은 술에 취한 일본인이"너 조센징이지?"라며 계단에서 미는 바람에 크게 다칠 뻔했다. 겁에 질려 한동안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등하교를 했다. 또 다른 선배는 버스에서 우산으로 머리를 맞기도 했다.순간 중년 일본인의 눈빛이 흔들렸다. 호기심으로 쳐다보던 승강장의 사람들은 구량옥의 용기에 놀라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일본 남자를 역무실로 끌고 갈 때 소녀 구량옥의 가슴은 벌렁거리고 다리는 후들거렸다. '일본 사회에서도 우리 조선인을 존중하는 사람이 있구나, 역시 변호사는 다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구량옥은 이런 글을 쓴 사람을 만나보고 싶었다. 또한 변호사가 되고 싶은 마음이 솟구쳤다. 그날 구량옥은 변호사가 되어 재일교포의 처지에서 일본의 법을 다루고 동포 사회에 힘이 되는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했다.구량옥은 착실하게 준비했다. 일본의 고등학교에 해당하는 조선고급학교를 졸업해도 대입수험자격이 주어지지 않기에 고급학교 1학년 때 검정고시를 봐 자격을 갖췄다. 고급학교를 졸업하는 2002년 열심히 공부한 덕에 오사카시립대학 법학부에 붙었고 4년 장학금까지 받았다. 2006년에는 로스쿨에 진학했고 2008년에는 그 어렵다는 일본의 사법고시에 단 한 차례 응시로 합격했다.
구량옥은 터질 듯한 마음을 누르며 출근길에 오른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는 전철 승강장에서 이 소식을 듣고 두 팔을 하늘로 들어 올리며 비명을 질렀다. 그러고는 주저앉아 엉엉 우셨다.아버지는 재일 2세로서 험한 세월을 살아오셨다. 경상북도 달성군이 고향인 할아버지는 일본으로 건너와 규슈현을 비롯해 여기저기 많은 탄광을 거치셨다. 그 와중에 7남매를 낳았고 셋째인 아버지는 살림 맛이 매운 어머니를 만나 교토부 우지시 우토로 마을에 정착했다. 하지만 시련이 닥쳤다. 우토로는 사연이 많은 곳이었다. 우토로의 조선인은"강제로 끌고 와 부려 먹다가 내팽개칠 때는 언제고 40여 년이나 노력해 살 만한 곳으로 만들었는데 이제 와서 나가라는 게 말이 되느냐"라고 격렬하게 항의했다. 어린 구량옥은 부모님 손을 잡고 또 다른 손에는 풍선을 들고 우토로 마을에서 우지시까지 '토지 재판'의 승리를 위한 거리 행진에 나갔다.이 소식이 한국과 전 세계에 전해지며 일본 정부의 각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2001년 국제연합 사회권규약위원회는"우토로 지구 임시거처에서 나온 노숙자들과 우토로 주민의 강제퇴거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2006년 국제연합 특별보고서는"우토로 주민은 일제강점기 때 이 땅에 배치되어 일제의 전쟁을 위하여 일했고 60년간 거주를 용인받은 점을 감안해 이 땅에 거주할 수 있게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밝혔다.
마을 앞에 유리 가루를 뿌려놓은 것처럼 빛나던 실개천, 봄날이면 벚꽃잎이 함박눈처럼 내리던 동네 어귀, 학교 다녀오면 만나는 마을 할아버지 할머니의 은은한 미소. 모두 헤어져야만 했다. 고향을 잃은 슬픔은 구량옥의 가슴에 깊은 칼자국을 남겼다.갓난쟁이를 데리고 떠난 영국 유학구량옥의 인생에서 또 한 번의 뜻깊은 눈물은 2019년 영국에서 국제인권법을 공부할 때였다. 일본변호사협회는 미국의 뉴욕대학교, 영국의 에식스대학교 등과 협약을 맺고 소속 변호사가 법학 석사 과정을 밟을 수 있게 유학을 지원했다. 구량옥은 이 프로그램에 선발돼 뉴욕대학교 객원연구원으로 뉴욕에서 1년간의 연구 생활 후 국제인권법 석사학위를 따기 위해 다시 영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국제인권법 분야에서 가장 권위가 있는 에식스대학교에서 공부하고 싶었다. 세 살짜리 딸을 데리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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