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개헌 로드맵] 헤어질 결심: 헌법을 바꾸자
베네수엘라 혁명을 이끌었던 우고 차베스의 말로 알려진 이 말은, 지난 세기말부터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었던 헌법개정의 흐름을 가장 적실히 대변한다.과거처럼 정치적 쟁투의 결과를 확인하고 선언하는 문서로서의 헌법이 아니라, 낡은 질서를 혁파하고 새로운 삶의 방식을 일궈내고자 하는 국민들의 의지와 다짐을 담은 사회개혁의 프로그램으로서의 헌법이 등장한 것이다. 그래서 다양한 기본권을 보장하면서 그 실현수단 또한 적극적으로 제시하는 한편, 권력의 중심을 정치엘리트들에서 시민으로 이전하여 정치가 일상화될 수 있도록 하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지방분권이나 권력의 분점 또한 대세를 이루었다. 우리의 현행 헌법은 그 시기의 초입에 자리하였다. 하지만 그 1987년은 너무 빨랐다. 신군부와 자유주의 정치세력들의 타협으로 마련되었던 87년 헌법은 여전히 대의제에 고착된 48년헌법체제를 벗어나지 못한 채 그들만의 리그만 그려내었다. 모든 권력은 국가영역에만 집중되었고, 그조차도 대부분 대통령에게 할당하면서 제왕적 대통령제로의 길을 열었다. 그나마 절차적 민주주의가 실현되고 헌법이 국가 운영의 기본틀로 자리잡게 되기는 하였지만, 그것을 해석하고 선언하는 궁극적인 권한은 헌법재판소의 사법관료들이 전유하였다. 지방의회가 설치되고 자치단체장 선거가 실시되었지만, 여전히 주민자치권은 헌법상의 기본권으로 인정받지 못했고 지방자치단체는 지방정부가 아니라 법률상의 법인 수준으로 격하되었다.최근의 사태만 보아도 그렇다. 윤석열이라는 무도한 대통령이 폭력적인 비상계엄을 내세운 내란행위를 자행해도 우리 국민들이 헌법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전혀 없었다. 국회의 계엄해제 요구 의결을 기다려야 했고, 대통령의 계엄해제 조치가 있고 나서야 겨우 안도할 수 있었다. 대통령이 헌법을 유린한 내란 우두머리임을 모든 국민들이 다 알고 있었음에도 국회가 탄핵소추를 의결하기를, 그리고 헌법재판소가 탄핵결정을 하기를 학수고대하여야 했다. 광화문에서 남태령, 한남동을 거쳐 다시 광화문으로 우리의 광장을 이어가고 전국 각지에서 우리가 주권자임을 목 놓아 외쳤지만, 그럼에도 헌법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남겨두지 않았다. 오죽하면 윤석열을 탄핵한 헌재의 결정문에조차 우리의 이런 투쟁은"시민들의 저항"이라는 단 6글자의 상투적 문구만으로 기록되어 있을까.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사건 등에서 대통령과 그의 정부가 국민의 안전을 내팽개칠 때, 국회의 개혁입법에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고 시행령 통치를 자행하면서 입법권을 형해화시킬 때, 대통령과 그 주변의 비행비리를 수사하기 위한 특검을 대통령이 거부할 때, 운송노조를 비롯한 노동자들의 권리행사를 건폭이니 카르텔이니 하면서 정부가 범죄자 취급을 할 때, 수사통치×검찰정치로 일관하며 법치를 부정할 때 이미 헌법은 작동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무력한 헌법을 위하여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또한 전혀 없었다. 정녕 아쉽게도, 연이은 헌법 유린 사태를 극복한 지금에도 우리는 무력하다. 무력한 대통령은 파면되어 사라졌지만 그의 권력은 한 치도 국민의 것으로 되돌아오지 않았다. 모든 권력은 여전히 새 대통령과 그의 정부에 집중되어 있다. 내란 사태는 정리되었지만 내란 종식에 이르는 길은 여전히 사법권력의 손아귀에서 허덕인다. 검찰정치를 혁파하는 길은 국민의 정치, 시민의 정치를 향한 길을 여는 것이지만 아직도 세상은 양대 정당이 독점한 국회가 좌지우지하고 있다. 지방 소멸의 위기를 치유하기 위한 예산조차도 중앙정부의 결정에 휘둘려야 하는 상황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같은 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 사태를 겪고도 아이슬란드의 국민들은 프라이팬 혁명에 이어 시민주도의 헌법개정의 길을 열어 젖혔고, 아일랜드 시민들은 헌법개정의 절차를 일상의 것으로 만들며 동성혼 등 수많은 헌법적 결단에 나섰던 반면, 우리들은 금 모으기의 단기적 처방에 자족하는 데 그쳤다. 신자유주의적 침탈에 항거하였던 칠레 시민들은"이제 역사는 우리가 쓴다"며 새로운 헌법 만들기에 나선 반면, 각자도생의 참담한 현실로 내몰린 우리는 곧장 대선의 길에 들어서 새 정부의 출범에만 모든 기대치를 걸어두고 있을 뿐이다. 고통은 우리가, 권력은 그들이 각각 나누어 가지는 이 답답한 현실만이 우리의 것일 따름이다. 헌법개정은 이런 상황을 헤쳐 나가는 가장 강력한 돌파구가 된다. 그렇지 않아도 기후변화와 복합위기의 시대가 도래하고 인공지능을 비롯한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삶의 질적 변화가 예상되는 등 헌법개정을 불가피하게 만드는 요인들이 비일비재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우리의 삶을 바꾸어 낼 수 있는 시민적 역량을 확보하는 일이다. 광화문이나 남태령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생활공간, 그곳에 우리의 광장을 만들고, 우리의 의지와 목소리로 우리를 위한 정책들을 만들어 나갈 수 있는 헌법적 틀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발안이나 국민투표, 국민소환과 같은 직접민주제의 요소들은 그래서 이 시대의 필수과제로 등장한다. 국회가 만든 법률안을 우리가 거부할 수 있는 국민거부권 역시 마찬가지다. 더불어 시민의회나 시민배심제 등 시민들이 직접 필요한 의제를 설정하고 숙의를 이끌어 나가는 생활정치의 가능성도 헌법을 통해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원한다면 언제든지 공무원들에게 질문하고 그의 답변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우리들의 헌법적 상상력이 국가정책과정이나 행정과정의 핵을 이룰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이러할 때 1919년 미미하게 시작되었던 민주공화국을 향한 꿈은 창대한 현실로 다가오게 될 것이다. 현대 헌법은 플랫폼이다.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삶의 모습으로 함께 어우러지는 생활정치의 공간이다. 그것은 우리의 행동을 규율하는 법규범을 넘어 우리들이 헌법의 주체가 되고 우리들의 정치를 엮어 나갈 수 있게 하는 토대를 이룬다. 독일의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가 헌법애국주의를 말하며 헌법충성을 요구할 때, 그때의 헌법은 바로 이런 헌법이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그 헌법을 가질 때가 되었다. 아니, 그런 헌법을 통해 우리의 삶을 새로이 바꾸어 나갈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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