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폭염 속 숨진 코스트코 노동자 고 김동호씨, 그는 어떤 사람이었나
제법 아침저녁 바람이 서늘해졌지만, 여전히 무더운 여름 속 가슴 아픈 기억이 사는 사람들이 있다. 코스트코 노동자 고 김동호씨의 가족이다. 폭염주의보가 내린 지난 6월 19일, 동호씨는 35℃가 넘는 코스트코 주차장에서 일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9월 26일, 추석 연휴를 이틀 앞둔 그날은 동호씨가 세상을 떠난 지 백일이 되는 날이다.
장례식장에는 수많은 동료가 아들을 찾아왔다. 아버지 대신 장례식장을 지켰던 첫째 아들은 그들이 모두 자발적으로 와준 것이라고 말했다. 아버지는 그들을 만날 수 없었다. 장례식장에 가지 못했다. 차마 갈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언젠가 아들이 떠난 그 주차장에 서서 아들의 이름을 불러봤었다."동호야." 막상 불러보니 그러면 안 될 것만 같았다. 그곳에 갈 일이 있을 때마다 아버지는 눈을 감고 주차장을 지나친다. 눈을 뜨고 볼 수 없었다.동호씨는 어릴 때부터 드라마와 영화 보는 걸 좋아했다. 일하고 집에 돌아오면 항상 드라마를 봤다. 엄마와 드라마 이야기를 자주 나눴다. 다음 화는 어떻게 전개될지, 열띤 토론을 벌이는 것 같았다. 아버지는 드라마를 잘 보지 않는다. 하지만 아들은 요즘 이 드라마가 재미있으니 꼭 보라고 추천했다. 그런 아들의 꿈은 미국에 가서 특수분장을 배우는 것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미군이 될 생각도 있었다.
아버지는 아들 신발을 볼 때 아들 생각이 가장 많이 난다. 아들은 신발과 옷 사는 걸 좋아했다. 아버지는 사고 후로 아들 방을 딱 일곱 번밖에 들어가 보지 못했다. 방에 들어가면, 아들의 옷장을 열어 옷들을 가만히 만져 본다. 아들을 쓰다듬는 것처럼."잘 자. 자고 있지? 잘 자고 가."사촌 형들이 부모님에게 차 사주는 것을 보고 나중에 아버지에게 차를 사주고 싶다던 동호씨였다. 엄마와는 사이가 더 각별했다. 엄마에게는 자주 화장품이나 여러 선물을 했다. 다 떨어진 생활용품들도 손수 채워두는 아들이었다. 마음이 여렸던 아들은 욕도 잘 못 하고, 하고 싶은 말도 꾹 참았다.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있어도 바로 대응하지 않았다. 한참을 듣고 있다 나중에야 말을 꺼내곤 했다. 엄마와 아빠는 그런 아들을 생각하며 아직도 운다. 아들도 아버지를 닮아 눈물이 참 많았다.아버지는"일상이 무너져 내렸다"고 말한다. 눈을 떴을 때 아들이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조금 마음이 놓인다. '일하러 먼저 나갔겠지?' 어딘가에 있겠거니 싶다. 그러다 죽었다는 현실을 깨달으면, 그때부터 생활은 무너진다.
"누워 있다가도 아들 퇴근 시간이 되면 '아빠 나 왔어' 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요. 전화해도 받지 않으니 혼자서 대화를 주고받아요. 아들 생각 안 하려고 하는데도 불현듯 생각이 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