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정의 웰컴 투 아메리카] 이민자 입장에서 본 미국 조지아주 한국인 구금 사태... 지금 미국은 어디로 가고 있나
지난 6일 한국과 미국의 축구 국가대표팀 친선경기가 열리는 뉴저지주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트 스타디움에 들어서는데 후회가 밀려왔다. 요란한 마칭 밴드 악기들을 앞세워 미리 경기장 주변을 누비며 기선을 제압하고 있는 수백 명의 미국 응원단 무리를 보며 든 생각이었다. 훌리건은 유럽에만 있는 건 아닌 듯했다. 엄청난 폭우가 쏟아진 직후임에도 이날 전광판에 공개된 공식 집계 관중 수는 2만 4750명이었다.
오랜만에 꽉 찬 스타디움의 우측 관람석을 가득 메운 'USA 마크'의 쩌렁쩌렁한 응원단 북소리는, 경기 초반 한국 응원단을 넘어 우리 선수들의 기선을 제압하기에 충분해 보였다.조마조마했던 초반 몇 분이 지나고 한국팀의 전력은 금세 안정됐다. 패스는 환호가 나올 정도로 정확했고 슈팅은 절로 박수가 나올 정도로 위협적이었다. 그리고 누가 봐도 압도적인 손흥민. FIFA 랭킹 15위 미국 국가대표팀을 상대로 절묘한 패스와 드리블이 오가다가 어디선가 손흥민이 보이면 경기의 축은 어김없이 우리에게 넘어왔다. 내 양옆에서 미국 국가를 힘차게 부르던 젊은 미국인 커플들은 형광밴드를 팔에 찬 선수가 뛰기 시작하면 절규를 했다. 이동경의 추가골과 골키퍼 조현우의 선방까지 이어진 전반 중간부터, 미국팀 응원단이 내던 시끄러운 소음은 점점 줄어들었다. 대신 경기장 안엔"대~한민국""오 필승 코리아"가 리드미컬한 박수 소리와 함께 가득 찼다. 환상적이고 시원하고 아름다웠던 90여 분의 경기였다. 미처 자리를 뜨지 못하는 한국 응원단들에게, 주장 손흥민은 선수들을 데리고 큰 경기장을 한 바퀴 돌며 인사했다. 이미 경기 내용만으로도 감사한 관중들은, 선수들의 답례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조현우 골키퍼는 누군가 흔드는 노란색 유니폼을 보고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와서 사인을 해줬다. 어린 꼬마부터 90대 노인까지, 이런 기량과 인성의 선수들에게 환호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훌륭한 경기는 팬들의 수고로움쯤은 다 잊게 만드는 힘이 있다. 무엇보다 거만하고 시끄럽던 미국 응원단을 고요하게 만들어 준 선수들에게 감사의 마음이 들었다. 비록 FIFA 랭킹으로는 8단계 아래지만, 엄청난 플레이를 보여준 이날 한국팀의 승리엔 어느 누구도 이견이 없을 테니 말이다.최고 기량의 한국 국가대표 축구 경기를 눈앞에서 직접 봤다는 흥분이 가시지 않은 상황, 경기장을 천천히 빠져나가고 있는데 앞 사람이 하는 대화가 들렸다.지난 8일 조지아주 엘러벨에 위치한 현대자동차·LG 에너지솔루션 합작 전기차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이뤄진 불법 이민 단속 이야기다. 총 475명이 구금됐고 이 중 한국 국적자는 300여 명으로 알려졌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두 번째 임기 중 단일 사업장 기준으로는 가장 큰 규모의 단속으로, 지금 미 언론에서도 메인 뉴스다.오는 9일 멕시코 국가대표팀과의 친선경기가 열리는 테네시주 내슈빌은 그 건설 현장에서 차로 7시간 정도 떨어졌다. 대학 풋볼리그 결승전에 가기 위해 12시간 운전해 본 사람으로서, 이날 꽤 많은 이들이 차를 나눠 타고 경기가 열리는 지오디스 파크에 갈 계획을 했으리라 생각한다. 한국인 노동자뿐 아니라 멕시코 국적의 히스패닉 노동자들도. 오늘 훌리건 같던 미국 응원단들의 행동이 불편했던 이유가 이거였구나 싶었다. 같은 세금을 내고 같은 법규를 지키며 동등하게 사는 이웃이라 생각했는데, 어느 날 쇠사슬에 묶여 단속되는 '인종 프로파일링'의 타깃이 될 수 있다는 분노가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한국 기업들이 단기 비자나 무비자 입국 제도를 노동에 활용한 것은 '꼼수'고 이는 한국 기업과 정치권의 안이한 한미 동맹 인식의 결과다."미국 시사주간지 은 트럼프 행정부의 '모순된 정책'을 지적했다. 한국으로부터 대규모 투자를 유치하면서, 한편으로 이민 단속을 강화하는 것은 한국 기업들의 불안을 초래해 향후 대규모 투자 프로젝트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고 밝혔다. 도 이번 단속이 트럼프가 치적으로 내세웠던 제조업 투자와 일자리 창출 사업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역시 단기 비자로 들어온 숙련 기술자·엔지니어가 포함된 단속 대상자들이 미국 현지에서 부족한 기술을 설치·전수하고 있다며, 공장 건설 지연 및 생산 비용 증가와 같은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 조지아주 AFL-CIO도 이번 단속이 '테러 분위기'를 조성해 노동자 착취를 용이하게 만든다고 비판했고, 미국이민협의회도"노동자들에게 불안과 두려움을 키워 노동력 부족 심화와 경제 안정을 위협한다"라고 강조했다. 대부분의 미 주요 언론과 노동단체 등은 지금 미 이민당국이 보여준 무모함과 야만성을 성토하고 있다. 쇠사슬 수갑에 놀라고 분노하는 미국인들과 함께, 더 나은 대안을 찾아야 한다. 그 어느 때보다 당당히 한국의 요구를 관철시키는 계기로 만들어야 할 시기인 것이다. 호주와 미국 간엔 FTA에 따라 오직 호주 국적자만 신청할 수 있는 취업 비자인 ' E-3 비자'가 있다. 전 세계 다 합쳐 8만 5000개밖에 되지 않는 외국인 전문직 취업비자인 'H-1B 비자' 쿼터에 들어가게 해달라고 애원할 게 아니다. 미국 고용률을 높여줄 공장을 짓는 한국 노동자들에겐, 미국 정부가 E-3 같은 특별 비자로 보호해 줘야 할 의무가 있지 않을까?"우리 정부는 미국 정부와 무엇을 함께 협력할 수 있는지, 그리고 절대 협상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인지 명확히 알고 있습니다... 그중 '멕시코의 주권'은 협력 대상이 아닙니다." 지난 7월, 트럼프의 대멕시코 30% 관세 통보에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은 단호한 입장을 밝혔다. 그 대신 마약 밀매 단속 강화 등 실질적 조치를 하며 미국과의 협상에 당당하게 임했던 셰인바움 대통령은, 멕시코를 비롯한 전 세계의 박수를 받았다. 멕시코와 함께 북중미 축구의 양대 산맥으로 불리는 미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 마우리시오 포체티노는 아르헨티나 출신이다. 주장은 크로아티아계이며, 네덜란드와 라이베리아 출신도 있고 독일 출신 클린스만의 아들도 뛰고 있다. 다양한 국적과 인종의 실력 있는 선수들이 USA라는 이름하에 FIFA 랭킹 15위를 만들면서, 팬층을 넓혀 나가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미국 국가대표 선수들을 보며, 미국의 힘이 어디에서 오는지 생각했다. 미 이민당국에 의해 대규모 단속이 벌어진 다음 날,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전기차 배터리 공장 앞 도로 '제네시스 드라이브'에선 지역 주민들과 시민단체들이 모여 피켓 시위를 벌였다. 시민들이 들고 있던 팻말 속 문구들에 눈물이 났다.포용력 있는 기회의 땅이라는 매력으로 전 세계 인재들을 끌어모았던 미국, 그 미국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기울어져 가는 미국이라는 국가에 대해 우리는 지금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 걸까? 분노와 기쁨이 교차한 요 며칠간, 이민자의 심경은 복잡하다. #손흥민 #축구국대 #한인노동자체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