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찰청 112신고센터입니다.' '안녕하세요. 도로를 술에 취했는지 비틀거리며 걷고 있어요. 너무 위험해 보여서 신고했습니다.' '네, 신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사람의 인상 착의가 어떻게 될까요?' '20대로 보이고요. 남자입니다. 옷은 상의는 흰색이고 바지는 검은색입니다. 여기 편도 5차로인데 달리는 차랑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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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졸음이 쏟아진다. 함께 근무하는 동료 경찰관들도 마찬가지다. 그 시간에는 가급적 동료 경찰관들과 대화도 최대한 줄인다.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서다. 오롯이 112신고 처리에만 집중해야 한다. 선배인 내가 후배들을 위해서 해 줄 수 있는 것은 간섭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잘 알고 있다. 물론 말처럼 쉽지는 않다. 그래도 늘 고민하고 있다."이제 날도 풀리고 해서 아무래도 술 취한 사람 보호조치가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나는 그렇게 하소연하며 현장에 도착했다. 그리고 바로 보호 조치할 대상자를 발견했다. 그때는 다행히 도로에서 나와 인도 쪽 가로수를 붙잡고 있었다. 흰옷을 입은 상의는 어디서 넘어진 건지 흙과 오물로 얼룩져 있었다. 그리고 얼굴의 볼 쪽에는 작은 상처도 있었다. 아마도 넘어지면서 바닥에 긁힌 자국으로 보였다. 후배 경찰관이 말을 건다."뭐라는 거예요. 경찰관이에요. 경찰관."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그는 한참 동안 우리를 쳐다봤다. 그리고 주저앉는다. 큰일이다. 아예 대화 자체가 불가능하다. 소지품도 없다. 보통은 휴대 전화기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 가족이나 지인에게 전화해서 쉽게 인계할 수 있는데 그렇지 않다. 바지 주머니에 있던 것은 치약과 칫솔을 담는 플라스틱 통이 전부였다. 휴대전화기 없냐고 물어봤을 때 몇 번이나 그 칫솔 통을 휴대전화라고 말할 정도였다. 동료 경찰관과 함께 순찰차에 태워 지구대로 왔다. 그리고 30여 분이 지났다. 조금은 대화가 가능하다. 아니다. 어느 정도 말을 알아듣는 것 같다. 몇 번의 시도 끝에 이름과 생년월일이 확인되었다. 경찰 내부망 조회시스템을 통해 주소를 확인하고 가족도 확인되었다. 부모에게 전화했다."오늘 술을 너무 많이 마시고 위험하게 도로를 걷고 있다고 신고가 됐어요. 지금 지구대에서 안정을 취하고 있는데 오셔야 할 듯합니다."그리고 잠시 후 부모가 지구대에 도착했다. 그때가 되어서야 부모를 알아볼 정도는 술이 깼다. 다행이었다. 나는 112신고부터 지구대에서 보호조치를 하게 된 과정을 설명해 줬다. 그리고 앞으로 아드님이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범칙금 스티커를 발부해야겠다고 설명했다. 부모는 나의 설명을 듣고 난 후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리고 지구대를 떠난 후 일단락되었다. 그렇게 112신고 한 건을 처리한 것으로 끝난 듯했다. 다음 날 저녁에 사무실에서 전화가 왔다. 어제 근무 중이었던 신고와 관련해 아버지가 지구대로 찾아왔다는 것이다. 큰 과일 바구니를 사들고 말이다. 당시 지구대에 근무하고 있던 경찰관은 몇 년 전에도 나와 같이 근무했던 경찰관이었다. 누구보다 나를 잘 알고 있었다. 지금은 근무가 아니고 과일은 받지 않을 거라는 말과 함께 정중히 거절하고 돌려보냈다고 연락했던 것이다. 나는 잘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며칠 뒤 사무실에 출근했다. 메모지 두 장을 붙여 쓴 포스트잇이 내 사물함에 붙어 있었다. 그때 술에 취했던 20대 아무개가 쓴 것이었다. 알고 보니 아버지가 다녀간 뒤 며칠 있다가 다시 왔던 것이다. 별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나는 미안했다. 두 번씩이나 보러 왔는데 내가 거절한 꼴이 되었기 때문이다.'안녕하세요. 박승일 경감님. 지난 새벽 술에 많이 취해 신세 졌던 아무개라고 합니다. 죄송스러운 마음에 꼭 뵙고 인사를 드리고 싶어 찾았는데 계시지 않아 메모 남겨 드립니다. 그날 절 보호해 주신 은혜 잊지 않고 앞으로 몸 조심히 다니겠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별것이 아닌 일이라고, 생각했던 일에 이렇게까지 하다니 나는 감사했다. 아니다. 솔직히 내가 경찰관이라는 사실에 상당히 뿌듯했다. 그리고 한참을 고민했다. 예의상 전화라도 한번 해 주는 게 좋을까. 아니다. 그럼,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게 될 것이다. 그럼 아무개 군은 상당히 민망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나는 문자를 보내기로 했다. 발신자의 연락처는 사무실 일반 전화번호로 남겼다. 개인적인 번호를 남기지 않은 건 다시 연락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었다. '아무개 군! 서울경찰서 박승일 경감입니다. 며칠 전 아버지께서도 방문하셨는데 오늘 다시 아무개 군이 방문했다는 전달 내용을 듣고 예의상 문자를 주는 게 맞는 것 같아 남겨요. 이번 기회에 좋은 경험 했다고 생각하시고 앞으로 부모님께 더 효도하면 될 듯하네요. 멋진 분들이시던데요. 참고로 본인의 술버릇은 자꾸 누구랑 악수를 심하게 하려는 버릇이 있으니 조심했으면 좋겠어요. 아, 그리고 범칙금 영수증은 꼭 지갑에 넣어 다니고 선배든 누가 술 마시라고 하면 그거 보면서 적당히 마셔요. 가벼운 말처럼 들릴지 몰라도 충격요법이 된다고 봐요. 본인도 심성이 착하고 좋은 사람이니 자신에게도 격려해 주세요. 아버지께서도 재차 방문했는데 만나 뵙지 못해 죄송했다고 전해 드렸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방문해 줘 감사합니다' 도로교통법 제68조 누구든지 다음 각호에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술에 취하여 도로에서 갈팡질팡하는 행위, 도로에서 교통에 방해되는 방법으로 눕거나 앉거나 서 있는 행위 등.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스토리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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