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전개와 결말을 알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되었습니다. 독특한 작품세계로 유명한 알랭 기로디 감독의 신작 는 이 영화가 그린 가을 숲의 안개 같은 비밀스럽고 신비한 매력으로 관객을 옭아맨다. 옛 고용주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1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남자 제레미(펠...
독특한 작품세계로 유명한 알랭 기로디 감독의 신작 는 이 영화가 그린 가을 숲의 안개 같은 비밀스럽고 신비한 매력으로 관객을 옭아맨다. 옛 고용주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1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남자 제레미를 주인공으로 한 이 영화는, 필름 누아르의 관습을 빌려와 그 그늘 속에서 기상천외한 사랑의 서사를 그린다. 일반적 상상력의 범위를 벗어나지만 그렇다고 요란스럽지는 않고 기이하게 차분하다.
한 남자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스토리는 미스터리 스릴러의 외피를 두른 채 장르의 통념을 어이없이 배신하고 필름 누아르의 유산을 창의적으로 상속하며 낯선 로맨스를 피워낸다. 이 로맨스는 한 인간이 자신에게 걸쳐진 타인들을 헤쳐나가는 '욕망의 대화'이자, 욕망과 대화의 지평에서 자신을 발굴하는 '실존의 춤'이 된다. 또한 냉담한 일상을 의연하게 돌파하는 가운데, 타자와 관계하는 자아를 새롭게 자각하며 자신을 만들어나가는 성장 우화이기도 하다. 기로디 감독은 관객에게 이 청년의 비루하지만 고양된 실존을 둘러싼 낯선 윤리적 질문을 대면하게 만든다. 어떤 관객에게는 어색하고 불편한 경험이고 또 어떤 관객에겐 흥미롭고 신선한 경험일 것이다.기로디 감독은 필름 누아르의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영화감독이자 평론가인 폴 슈레이더가"필름 누아르는 장르가 아니다"라고 정의한 것은, 필름 누아르가 고정된 형식을 의미한다기보다는 '누아르'의 느낌과 분위기를 특징으로 한다는 얘기다. 엄격한 장르가 아닌 영화 스타일로, 어둡고 냉소적이며 비관적인 느낌을 드러낸다. 종종 범죄, 부패를 다루며 도덕적으로 모호한 캐릭터를 등장시킨다. 이 설명을 염두에 두고 를 보면 영화에 필름 누아르의 정수가 녹아있다는 생각이 들 법하다. 베일에 싸인 과거를 지닌 주인공 청년, 그를 대하며 경계심을 드러내는 마을 사람들, 예기치 못한 시점에 느닷없이 일어난 살인 사건, 이어진 뜻밖의 로맨스 등은 염세적 태도, 인간 소외, 도덕적 모호함이라는 누아르 특유의 채색 안에서 펼쳐진다. 기로디 감독은 이 누아르 채색에다 자신의 물감을 훌뿌려 장르적 쾌감을 훌쩍 넘어선다."위대한 필름 누아르는 위대한 로맨스 영화이기도 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누아르의 어두운 껍질 아래서 은밀하게 요동치는 사랑과 욕망을 어느 순간 전면에 위치시킨다. 의문의 남자 제레미는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탐정 역할을 맡지 않았다. 욕망의 대상이자 동시에 주체로서 욕망의 그물망을 영화 한가운데로 던진다. 말하지 않고 눈빛으로, 의미 경계가 뚜렷하지 않은 행동으로 타인의 욕망을 추동하는가 하면 선제적으로 반응하며 말하자면 '욕망의 대화'를 끊임없이 나눈다. 영화는 필름 누아르라는 비장르적 형식을 통해 사랑과 욕망이라는 인간관계의 원초성을 깊이 파고든다.욕망의 대화는 실존의 춤으로 비약한다. 제레미는 '욕망의 대화'를 거쳐 삶의 플로어로 나가선 '실존의 춤'을 춘다. 장 폴 사르트르가 그의 주저 '존재와 무'에서 해명한 실존주의를 복습이라도 하듯이 자신에게 내민 타인의 손을 주저하지 않고 잡는다. 사르트르에게 인간은 확정된 본성 없이 세계에 홀로 내던져진 채 타인과 관계 속에서 대타존재로 스스로를 형성한다. 극중 제레미의 행각은 사르트르의 실존을 증명한다. 그에게 정해진 도덕적 궤도가 없다. 본능의 안내로 자신만의 스텝을 밟아가며 위험한 '실존의 춤'을 춘다. 독무가 아니다. 제레미는 손을 내민 모든 이의 댄스 파트너가 된다. 형식상 손을 내밀지는 않았지만, 내용상 손을 내민 이는 제레미다. 누아르 형식에 욕망을 내용으로 채워 넣은 영화 구조를 답습한다. 사장 미망인이자 친구 어머니인 마르틴과는 유혹과 연민이 뒤섞인 탱고를, 표면상 적대관계이지만 과거의 양상은 감정의 여지가 많은 뱅상과는 서로를 밀어내는 격한 콘택트 댄스를, 감시자이자 보호자인 신부와는 고백과 심판 사이를 오가는 파드되를 춘다. 제레미는 즉자적 태도와 모호한 행동으로 춤을 추면서 동시에 안무가가 되고, 혼란 속에 스텝을 따라오는 파트너들과 또한 자신의 반응을 통해 계획 없이 다음 스텝과 동작을 만들어간다. 개별 파트너들과 만들어간 하나하나의 춤은 이어 마을 전체가 참여하는 괴이쩍은 군무로 확장된다. '타인의 시선'이라는 지옥이 열리면서, 자신의 실존을 검증할 수 있는 지옥의 유일한 무대로 제레미가 뛰어 올라간다. 실존은 검증되어야만 했다.'실존의 춤' 경연이 펼쳐지는 무대는 핵심적인 상징과 전복적 장치로 꾸며놓았다. 영화의 주된 배경인 숲은 물리적 공간으로 영화 성격을 규정하면서 동시에 캐릭터들의 억압된 또는 그래서 더 집요한 욕망과 도덕적 혼란이 뒤엉킨 심리적 공간으로 기능한다. 숲을 덮은 안개는 설명이 부가되지 않아도 무방한 그 자체로 은유이다. 인물들이 숲속에서 행하는 버섯 채취 또한 은유이다. 독버섯일지 식용버섯일지 모를 잠재한 위험을 땅에서 캐내는 욕망의 행위는 급기야 시체에서 버섯이 자라고 그 버섯을 캐고 그것을 요리해 함께 나눠 먹는 장면으로 치달으며 정점을 찍는다. 숲은 절제와 규범이 희미해지는 문명 밖의 장소이다. 제레미에겐 자신의 실존과 욕망을 마주하고 금기를 실행하는 해방의 무대다. 가장 전복적인 성향의 캐릭터는 신부다. 초반에는 얼핏 전통과 규범의 수호자로 제레미의 적대자로 보이지만, 신부로서 제레미에게 역으로 고해성사를 한 후 제레미의 활로를 열어준다. 구애자이자 조력자이며, 아버지 부재의 구도에서 아버지를 대리하는 역할까지 맡는다. 제레미의 살인을 묵인하고 심지어 은폐하면서 영화 제목이기도 한 '자비'를 베푼다. 그의 자비는 죄를 묻는 대신 존재 자체를 긍정하는 급진적 윤리로서, 제레미를 새로운 삶의 주인공으로 거듭나게 하는 데 결정적이다. 신부의 자비가 자신을 위한 이기적인 자비라는 점에서 이 말은 반어일 수도 있고, 절대 긍정일 수도 있다. 후자라면 동성 청년을 향한 욕망에 미쳐서 살인까지 은폐한 신부를 통한 신성의 구현이란 흥미로운 접근이 된다.안개 낀 숲에서 펼쳐진 격렬한 실존의 춤은 블랙코미디와 결합하며 묘하면서 발랄한 비극으로 변주된다. 기로디 감독은 극중 인물들의 냉담한 반응과 무심한 유머를 통해 사건의 비극성에 의도적으로 거리를 둔다. 살인이라는 극단적 사건 이후에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을 이어가는 인물들의 모습은 관객이 인물들에게 감정적으로 동조하는 것을 차단한다. 비윤리적인 상황을 명확히 하지만 비판적 거리를 설정함으로써 윤리의 잣대를 들이대는 대신 관조하게 만드는 장치이다. 결론적으로 제레미는 친구 살해를 거쳐 어머니를 차지하고 그리하여 자신이 아버지를 대체하기에 이르는데, 아버지를 사랑한 과거와 어머니를 욕망하는 현재를 통합하여, 실제 아들을 제거한 후 자신을 중심으로 새로운 관계망을 구축한다. 여기에 신부까지 포함돼 그는 자신만의 욕망의 왕국을 완성한다. 이성애와 혈연 중심의 전통적인 가족 관계를 해체하고 자신을 중심으로 새로운 욕망의 관계를 구축한 결말은 일반적인 퀴어 서사 또한 뛰어넘는다. 예상할 수 있기도 하고 다소 충격적이기도 한 결말은 성장 우화로도 해석된다. 제레미가 친구 뱅상을 살해한 행위는 유사 부친살해로 이 '유사'의 성격으로 인해 아들의 자리와 남편의 자리를 동시에 찬탈한다. 마르틴의 역할 설정 또한 흥미로운데, 오이디푸스 신화 속 이오카스테가 진실이 밝혀진 후 파국을 맞는 것과 달리, 마르틴은 사실상 비극이 끝난 후, 즉 살해가 완료되고 진실이 암묵적으로 드러난 후에야 또는 은폐된 후에야 이 신화에 진입한다. 그녀가 진실을 외면했다고 볼 수도, 제레미가 만든 새 질서를 수용하는 공모자가 됐다고 볼 수도 있다. 그녀의 마지막 행위는 진실을 그녀가 인지했는지와 무관하게 모든 행위를 사후에 승인하고, 그를 가족의 새 주인으로 인정하는 가부장제의 인장과도 같다. 비극이어야 할 신화는 기이한 해피엔딩처럼 봉합되며, 발랄하고도 전복적인 신화 다시 쓰기 또한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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