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국민참여재판 아시죠?' 어린이와 어른이 함께 꾸려나가는 공연 대사의 일부다. 서울 대학로 아르코꿈밭극장. 작은 무대 위에 재판장이 차려진다. 그날의 피고는 전래동화 에 나오는 조연인 사슴이다. 이름은 원래 '코코'. 하지만 슬픈 사연이 붙고 나니, '코딱...
어린이와 어른이 함께 꾸려나가는 공연 대사의 일부다. 서울 대학로 아르코꿈밭극장. 작은 무대 위에 재판장이 차려진다. 그날의 피고는 전래동화 에 나오는 조연인 사슴이다. 이름은 원래 '코코'. 하지만 슬픈 사연이 붙고 나니, '코딱코'라는 별명이 생겼다. 그는 이제 관객들 앞에서 죄를 심판하는 재판에 섰다. 아이들은 배심원이 되어 손을 번쩍 든다.단순히 객석에 앉아 무대를 관람하는 방식이 아니다.
아이들은 나름대로 입장을 내세우고, 의견을 나누는 순간에 무대는 관람에서 '놀이'이자 '질문'으로 확장된다. 코딱코가 유죄일지 무죄일지를 판가름하는 은 오는 7월 4일부터 5일까지 이틀 동안 바로 이곳에서 공개된다.익숙한 전래동화 속 한 장면이 새로운 질문으로 바뀌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코로나로 세상이 멈췄던 그 시절, 오준석 연출가는 아이들과의 하루를 함께 보내며 책을 읽었다. 이야기를 덮고 나면 아이들은 물었다."그다음에는 어떻게 돼요?"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그는 아이들과 함께 이야기를 지어가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유독 살아 움직이던 것이 바로 '사슴' 이야기였다. 사슴이 선녀의 정보를 넘긴 게 과연 잘못일까. 그는 아이들을 재판관으로 삼아 즉석 재판을 열었다. 당시 8살이었던 둘째와 6살이었던 셋째는 전혀 다른 판결을 내렸다. 그날 밤, 오 연출가는 생각했다. 이 질문을 무대에 올려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면 어떨까? 은 그렇게 아이들과의 잠자리 동화 놀이에서 태어났다.딸 셋을 키우며 일상 자체를 창작의 자원으로 살아온 그는, 이 공연을 통해 '육아'라는 삶의 현장을 '예술'이라는 질문의 장으로 바꾸었다. 실제로 어떤 장면은 아이와 함께 썼고, 어떤 캐릭터는 아이가 이어준 상상에서 탄생했다. 매일 아침 학교에 데려다주고, 밥을 먹이고, 놀이터에서 뛰노는 그 순간들 속에서 주워 온 말과 표정, 그리고 질문들.그의 연출 경력은 일찌감치 관객 참여형 공연의 실험으로 채워져 있다. 에서는 배우들이 무대와 객석을 넘나들며 이야기를 주고받았고, 에선 아이들이 물총을 들고 유령을 함께 물리쳤다. 그에게 공연은 늘 '지금, 여기, 함께' 있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예술이었다. 그래서 그는 언제나 관객, 특히 어린이 관객들과 더 가까이 호흡하는 형식을 고민했다. 이 '재판극'이라는 형식을 택한 것도 이 연장선에 있다. 그는"공연은 결국 배우와 관객이 눈을 맞추고 호흡하며 만들어내는 생생한 교감이에요. 그 교감을 더 적극적으로 만들기 위해 관객과 무대의 경계를 허무는 거죠"라고 말했다. '사슴에게 죄가 있을까'라는 질문은 단순한 윤리 문제가 아니다. 아이들이 자기 생각을 정리하고, 타인의 의견을 듣고, 다시 자기 판단을 되돌아보는 과정. 그것이 곧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장치다. 게다가 '법'이라는 주제가 내포한 양면성도 그는 놓치지 않았다.더 깊은 관객 참여 이후 그는 더 깊은 관객 참여를 향해 나아갔다. 관객이 팀을 나눠 게임을 하듯 사건을 판단하고 선택을 이어가는 게임 시어터 , 공간을 함께 이동하며 경험하는 는 몰입형 공연의 실험이자 확장이었다. 그는 어린이와 청소년 관객의 능동성, 창조성, 놀이성이야말로 이머시브 형식에 가장 잘 어울린다고 느꼈고, 그 가능성을 키워가기 위해 현재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향후 3년간 청소년 이머시브 뮤지컬 프로젝트를 단계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시대의 어린이에게 그는 어떤 질문을 던지고 싶은 걸까. 오 연출가는 어린 시절 읽었던 동화들을 떠올린다. 그 속에는 종종 고정관념이 숨겨져 있다. 그는"세상에 좋은 새엄마가 얼마나 많은데, 동화 속 새엄마는 늘 나쁘게만 나오죠. 무도회에 가는 여자는 모두 왕자를 꾀러 가는 것처럼 그려지고요"라고 설명했다. 그런 통념 속에서 은 반문한다. 날개옷을 잃고 하늘나라로 돌아가지 못한 선녀는 과연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는"책 속에는 없는 외로움과 무력감을, 아이들과 함께 읽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지난 공연에서는 한 70대 관객이"아이까지 낳았으면 그냥 살아야지"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오 연출가는 그 말이 시대의 시선을 보여주지만, 지금은 그 말이 또 다른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함께 느꼈다. 그래서 그는 아이들에게 질문한다."우리가 알고 있는 이야기가 정말 전부일까? 그 인물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내가 그 상황에 있었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그가 말하는 감수성이란 바로 그것이다. 환경 감수성, 성인지 감수성, 인권 감수성 등. 결국은 타인의 입장을 상상하고 경청하고 끌어안을 수 있는 힘. 그는 그걸 '예술의 핵심 능력'이라 믿는다."진짜 아름다움이 뭔지, 진짜 진실이 뭔지, 진짜 사랑이 뭔지를 알려주는 것이 예술가의 몫이라면, 저는 모든 어린이가 예술가가 되어야 한다고 믿어요." 이쯤 되면 이 꽤 진지한 공연일 것 같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는"우리 공연, 진짜 재밌어요. 더 많이 웃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게 우리가 가장 많이 하는 고민"이라며 웃으며 말했다. 진지함은 공연을 만드는 태도일 뿐, 무대 위는 늘 생기 있고 유쾌해야 한다는 것.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이야기 속으로 들어오고, 한바탕 웃으며 무언가를 느끼고 돌아갈 수 있도록. 그의 무대는 오늘도 그런 질문과 웃음을 품은 채 아이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이 열리는 아르코꿈밭극장은 이번 무대를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2024년, 대한민국 아동청소년극의 요람이라 불리던 학전소극장이 폐관한 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대학로 소극장 소멸 위기에 대응해 이 공간을 리모델링해 지난해 7월 '아르코꿈밭극장'으로 개관했다. '꿈밭'이라는 이름은 국민 제안과 투표를 통해 정해졌는데, 어린이와 청소년의 꿈이 자라는 공간이라는 뜻을 품고 있다. 꿈밭펀딩을 통해 모금된 예산으로 객석, 분장실, 공연장 등을 정비한 아르코꿈밭극장은 단순한 공연장을 넘어, 어린이와 청소년의 공연 발전과 직접 이용하는 관객과 단체들에게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 운영 노하우를 접목한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여 어린이 중심극장으로 거듭나고 있다. 은 바로 이 꿈밭에서, 아이들이 질문을 던지고 어른들이 멈춰 서는 시간을 함께 만들어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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